"주가 오르면 사장 덕, 빠지면 내 탓" '주담'의 비애

머니투데이 김도윤 기자 | 2014.08.17 09:30

[직딩블루스 시즌2 "들어라 ⊙⊙들아"] '24시간 오픈' 주식 담당자들 하소연

편집자주 | '⊙⊙'에 들어갈 말은, '상사'일수도 있고 '회사'일수도 있습니다. 물론, 선배 후배 동료 들도 됩니다. 언젠가는 한번 소리높여 외치고 싶었던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독백형식을 빌어 소개합니다. 듣는 사람들의 두 눈이 ⊙⊙ 똥그래지도록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봅니다.

내 이름은 '주담'(주식담당자). 내 얘기 좀 들어볼래?

상장기업의 주식담당자(주담)는 24시간 편의점입니다. 국내·외 기관과 개인 투자자로부터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 문의에 대응해야 하죠. 하루에 수십통 전화는 기본입니다. 투자자뿐이겠어요. 회사에서도 무슨 일만 일어나면 저를 찾아요. 오늘 주가는 왜이래, 거래소에서 뭐라고 하던데 무슨 일이야, 시장에서 이런 소문이 돌던데 어떻게 된 거야 등등.

먼저 하소연 좀 하겠습니다. 제가 상장사 주담을 10년 이상 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첫째 아들이 태어날 때였습니다. 회사에 연차를 내고 산부인과를 지키고 있었죠. 그 때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떨리고 기쁘고 무섭고 긴장되던지요. 그런데 전화기가 계속 울리는 거에요.

몇 번을 무시하다가 받았습니다. 상대방은 대뜸 욕부터 하더라고요. 지금 회사 주가가 이 모양인데 주담이라는 사람이 휴가를 내고 놀러갔냐고. 회사 안 지키고 뭐하냐며 언성을 높이고, 제대로 하는 일이 뭐냐고 화를 내더라고요. 저 역시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참았습니다. 전 주담이니까요. 회사의 현황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렇게 일하는데도 회사에서 인정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2~3번은 기관투자자나 증권사 및 언론사 사람을 만나 저녁을 먹는데, 회사 임원 중 일부는 제가 놀러다니는 줄 알아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자주 술을 먹어야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실 겁니다. 전 오히려 출근 시간은 있어도 퇴근 시간은 없는 제 업무가 힘들 때도 있거든요. 업무 특성상 외근이 잦은 건데도 회사를 나갈 때마다 눈치가 보입니다. 업무 때문에 술을 마시거나 골프를 치는 경우도 있는데 회사에 눈치가 보여서 비용처리 하기 쉽지 않을 때도 있어요.

해외 출장도 가끔 가는데요. 월요일에 컨퍼런스가 잡히면 일요일부터 부랴부랴 출발해야 합니다.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은 그나마 가까우니 괜찮은데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등 먼 나라를 가면 많이 피곤합니다. 함께 가는 임원은 비즈니스 석을 타지만 제가 그럴 수 있나요. 영국, 뉴욕 찍고 국내로 돌아오는 동안 2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지만 항상 이코노미 석이죠. 회사가 바쁠 때는 시차 적응도 못하고 새벽에 한국 도착해서 바로 회사로 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도 잘 놀고 왔냐며 핀잔을 주는 상사도 있다니까요.


회사 주가가 오를 때는 기쁘죠. 뿌듯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CEO(최고경영책임자)는 주가 오르는 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 CEO가 경영을 잘하고 회사를 성장시키고 있기 때문에 주가가 오른다고 생각해요. 저의 노력을 별로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건 이해할 수 있어요. 결국 주가는 회사 가치를 따라갈 테니까요. 하지만 주가가 떨어지면 제게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저 기관은 왜 자꾸 매도하냐, 넌 밖에서 뭐하고 다니길래 그런 거 하나 못 막냐"며 혼을 내죠.

그래도 전 자긍심이 있습니다. 회사 IR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직이라는 뿌듯함도 있고요. 저 만큼 회사 내부와 외부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더구나 국내외에서 많은 미팅을 진행하면서 제가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주가가 오르면 인센티브나 보너스가 나오냐구요? 그렇지도 않아요. 제 능력과 노력이 빛을 발했다는 자기만족이죠. 오늘도 전 회사를 대표해서 투자자를 만나러 갑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 회사의 가치를 더 많이 알아주길 바라며 오늘도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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