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항공모함’ 델이 ‘쾌속정’이 된 이유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 2014.08.07 07:00
스타벅스 창업자 하워드 슐츠의 비유다. 창업 초기 경영자는 쾌속정 선장과 같다. 배를 몰 때 마치 내 몸을 움직이는 것 같다. 배의 모든 부분에 내 신경이 바로 닿아있어서 문제를 바로 감지하고 처리한다. 암초가 코앞에 보여도 급히 키를 꺾어 피할 수 있다. 몇 안 되는 선원들과 실시간으로 대화하면서 지휘한다. 선원들의 성격과 장단점을 속속들이 알고 움직임도 바로 눈에 보이기 때문에 통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기업이 성공해서 대기업이 되면 경영자는 항모의 함장과 같아진다. 항모의 함장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일한다. 배 한쪽에서 문제가 생겨도 눈에 바로 보이지 않고 한참 후 보고를 받는다. 수천 명의 부하가 모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자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소통과 현황파악이 어렵고 상관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잘 움직이게 하는 전혀 다른 차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자신의 회사가 항모가 되었는데도 쾌속정 시절의 성공 경험을 유지하다 좌절하는 경영자는 자신의 변화에 자신이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반대로 쾌속정 시절의 성공이 항모의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회사 규모가 커져도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영자가 진짜 실력 있는 경영자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책임감, 부하직원과 거래처를 직접 감복시키는 화려한 대인관계기술 같은 것들이 항모에선 큰 효과가 없다. 오히려 시스템 구축과 유지관리, 부문별 책임관리 유도, 성과보상체계 정비, 위기대응 매뉴얼 정비와 가상훈련 등과 같은 소리 없는 내용의 덕목들이 중요하다.

함장은 배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게 일이 돌아가길 기대할 수 없고 끊임없이 크고 작은 사고가 날 것도 감안해야 한다. 사실 이는 대기업 경영자, 대형 금융기관 수장이라면 익히 아는 것들이다. 지구상의 그 누구도 글로벌 규모의 금융기관업무를 직접 속속들이 파악할 능력은 없다. 항모 한국 대기업과 금융기관 함장들은 매뉴얼을 들고 함교로 올라가 디지털레이더 화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해야 한다. 큰 배가 어디로 가는지 회사 안팎의 모든 사람이 알게 해줘야 한다.

항모인데 쾌속정과 같은 초심과 순발력을 발휘할 비법이 있을까? 사모펀드 바이아웃이 그 답일 수 있다. 2013년 업계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은 바이아웃거래는 델(Dell)이다. 델은 고객의 주문에 의한 PC 제작·판매를 통해 유통채널을 생략하는 전략으로 성공한 회사다. 2012년 포스코와 같은 크기의 공개기업이었던 델은 이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비상장회사다.


2005년에 들어서면서 PC시장의 포화로 델이 66%를 차지하던 시장의 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2006년 델은 HP에 1위 자리를 내주는 충격을 받아 대대적인 인력과 사업의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그러나 델의 새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고 2011년 레노버의 부상과 함께 업계 3위로 떨어진다. 회사가 5년 연속 정체상태에 처하자 2013년 초 창업경영자 마이클 델은 사모펀드 실버레이크와의 합작으로 바이아웃으로 위기를 타개하기로 결정했다. 공개기업인 상태로는 이행하기 어려운 장기전략의 실천과 보다 과감한 구조조정을 위해서였다. 이 딜은 총 244억달러 규모였고 150억달러의 부채를 동원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20억달러를 지원했다.

거래가 종결된 후 마이클 델은 회사가 25년 전 창립됐을 때와 비슷한 체질과 잠재력을 다시 가지게 되었다고 자평했다. 실버레이크는 앞으로 사모펀드라기보다 벤처캐피탈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클럽 딜과 자본시장의 위력으로 지금은 큰 기업도 바이아웃을 통해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 델 사례가 다시 한 번 이를 보여주었다. 국내 기업들은 차입매수가 형법상 배임죄에 해당될 수 있다는 법원 판례로 제약을 받지만 위법하지 않은 거래구조를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대형 상장회사들이 바이아웃을 활용할 수 있는지, 실제로 투자은행과 사모펀드들이 그를 지원할 수 있는지는 좋은 연구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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