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가격에 볕드는 12평 집...'사회주택' 실험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 조득신 이로운넷 소셜리포터  | 2014.08.02 08:39

[쿨머니, 소비는 투표다]<청년주거>민달팽이유니온

달팽이집 앞에 선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운영진. 왼쪽부터 임소라 경영지원팀장, 권지웅 이사장, 이강희 운영지원팀장. 사진제공=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사진=이우기 작가


110명이 모였다. 8200만 원을 모았다. 서울시 남가좌동에 12평(40.39㎡)짜리 집 2채를 장기임대했다. 깔끔하게 인테리어하고 드럼세탁기와 책상 따위 필수 집기를 갖춰 넣은 다음, 공고를 냈다.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20만 원(2인실 기준).'

이건 주변 시세의 75% 수준이다. 월세 20만 원이면 서울에선 딱 한 명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고시원, 혹은 볕 안 드는 반지하방 정도 구할 수 있는 돈이다. 이 가격은 임대수익 자체를 포기했다는, 즉 밑지는 장사를 한다는 뜻이다.

대체 어떤 이들이기에 이렇게 밑지는 임대사업을 시작했을까. 비영리주거공급 협동조합 '민달팽이'의 110명 조합원들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변기 물소리에 잠 깨고 원거리 출퇴근하는 '민달팽이들'

지난달 16일 열린 서울시 남가좌동에서 열린 '달팽이집' 설명회에는 여러 사연을 지닌 9명의 지원자가 왔다.

제주도에서 서울로 일하러 온지 3년째인 26세의 한 조합원은 지금 고시원에 살고 있다. 새벽마다 그는 잠을 설친다. 그의 방 오른쪽은 화장실, 왼쪽은 부엌. 다른 이의 생리현상으로 일어나는 소음을 어찌 막을 것인가. 방음 안 되는 벽을 원망할 뿐.

25세의 한 조합원은 2년째 매일 천안과 서울을 오간다. 서울역 근처 대학에 다니지만 주거비가 비싸 천안의 부모 집에서 나올 엄두를 못 냈다. 휴학하고 상암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하면서 출퇴근에 드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이들은 민달팽이 같은 처지다. 달팽이들과 달리 민달팽이들한테는 집이 없다. 그래서 민달팽이 협동조합이 공급하는 임대주택 이름은 ‘달팽이집’이다. 민달팽이 같은 주거 빈곤 청년들에게 달팽이집 같이 작더라도 안정적인 집을 주자는 뜻을 담았다.

서울시 남가좌동의 달팽이집 내부 전경 . 사진제공=김상준 작가(재능기부)


◇"서울 청년 36%가 주거 빈곤층...지하방, 고시원 등 최저 조건에 살아"

민달팽이 협동조합의 권지웅 이사장은 "서울의 1인 청년 36%가 주거 빈곤 상태"라고 말했다. 이들은 지하방, 고시원 등 최저 주거기준 미달 주택에서 산다. 서울시 거주 대학생의 월 평균 소득이 79만7000원인데, 서울에서 원룸 평균 월세는 41만 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139만 명의 청년이 주거빈곤층이다.

민달팽이 협동조합은 주거 빈곤에 빠진 청년 세입자들을 위해 지난 3월 설립됐다. 비영리민간단체인 민달팽이 유니온(www.minsnailunion.org)이 모체다.

2011년 창립된 민달팽이 유니온은 지하방 생활자들이 모여 처음엔 제습제를 공동구매하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한테 주거 보조금을 장학금으로 줬다. 그러다 점차 세입자들을 위한 정책 제안, 청년 주거상담사 양성까지 활동범위가 넓어졌다. 그만큼 열악하게 사는 청년들이 많았다.

그러나 힘겨운 노력들은 정책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삶은 바뀌지 않았다. 권 이사장은 "아예 우리가 필요한 집을 우리가 돈을 모아 직접 공급해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전세 얻으려면 월 100만원 씩 모아도 10년은 모아야 해요. 주거 문제는 나 혼자 겪는 게 아닙니다. 혼자서 풀려고 하면 풀기 힘듭니다."

서울시 남가좌동의 달팽이집 내부 전경 . 사진제공=김상준 작가(재능기부)


◇다 함께 마련해 여럿이 살게 하는 '사회주택'

그래서 나온 해법이 소셜 하우징(Social housing) 즉 사회주택이다. 사회주택은 한 사회가 함께 주택을 마련해 여럿이 함께 산다.

권 이사장은 "주택 하나를 마련해 여럿이 사는 주거형태를 뜻하는 셰어하우스(Share house)와 달리, 사회주택은 집을 마련하는 과정에 한 사회가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해외의 사회주택 사례를 보면 정부는 건축기금을, 지자체는 빈 땅을 장기로 빌려줍니다. 청년들의 주거 빈곤문제 해결엔 민간뿐 아니라 공공 부문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국가 전체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니까요."


민달팽이들이 바라는 지원은 크지 않았다. 정책금리 2%, 장기 상환 프로그램. 정부가 공동임대사업을 위해 건축업자들한테 제공하는 것 정도다. 이런 자금이 있으면 더 많은 주택을 장기임대해 청년세입자들한테 낮은 임대료로 공급할 수 있다.

“달팽이집이 편의점 개수만큼 생기길 바란다"는 그가 최근 눈여겨보고 있는 곳이 있다. 서울시가 혁신파크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한 옛 국립보건원 자리다.

그는 "현재 텃밭으로 쓰이고 있는 테니스장 옆 나대지에 사회적경제 조직에서 일하는 청년활동가를 위한 사회주택을 세우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침 이 자리엔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청년일자리허브가 들어와 있다. 사회적경제는 관계의 회복, 사람 중심의 경제활동을 지향한다.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같은 곳이 바로 사회적경제조직이다.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의 권지웅 이사장이 이강희 운영지원팀장(왼쪽)과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이들은 '삶의 공간'으로서의 집을 회복하고 싶다며 사회주택을 만들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사진=이우기 작가


◇"삶으로서의 집, 사는 재미가 있는 집 회복이 목표"

달팽이집 마련엔 110명의 조합원이 참여했다. 그러나 그 집에 들어가 살 수 있는 건 6명. 나머지 104명은 자신이 살 수 없는 집에 돈을 댄 셈이다. 이들이 바란 건 돈을 좀 더 버는 게 아니다. 삶을 좀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다. 그게 자신의 삶이 아니더라도.

권 이사장은 "110명이 모두 다 당장 들어가 살진 못할지라도 우리가 함께 만든 공간에 우리 중 누군가가 주거 안정을 꾀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삶으로서의 집을 찾아주기 위해서"다.

"다들 워낙 바쁘고 돈 벌기가 쉽지 않아서 집답게 못 쓰고 있잖아요. 일기를 쓰기도 하고 친구랑 놀기도 하는 기능을 모두 잃은 느낌이 들어요. 샤워하고 자는 곳이 되어버린 거죠. 공부는 카페에서 하고 친구도 다른 곳에서 만나고, 밥도 집에서 못 챙겨 먹고. 그래서 삶의 공간으로 집을 회복하고 싶은 게 제일 큰 목표입니다."

이강희 운영지원 팀장은 누구든 찾아올 수 있는 집, 사는 재미가 있는 집을 꿈꾼다.

“삶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달팽이집은 언제든지 마음 놓고 찾아올 수 있는 집이 됐으면 좋겠어요. 가장 바라는 건 누군가 '나 달팽이집에 살아' 했을 때 그 얘기를 들은 사람이 '너 좋겠다' 아니면 '너 참 재밌겠다'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좋겠어요.”

이들의 아름다운 꿈,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권 대표는 역설적인 답을 내놨다. '그런 우려와 기대 덕분에 달팽이집이 생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게 될까 관심 가져준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첫 달팽이집이 생겼어요. 다음 집들도 그렇게 만들어질 거라 생각해요.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문제의식을 행동으로 옮겨주시면 좋겠어요. 달팽이집이 아니더라도 좋아요. 청년 각자가 자기 지역에서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주체가 되길 바랍니다."



청년 주거 빈곤, "선진국에선 수요자에 지원금"

주택산업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청년세대 주거실태 점검 및 지원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에서도 청년들은 주거가 불안정하다.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고용불안 때문이다. 이들은 독일에선 '인턴세대', 스페인에선 '낙타세대'라 불린다.

영국의 청년 세대를 뜻하는 '아이팟(IPOD)'은 한국 청년 세대가 처한 현실 또한 그대로 반영한다. 불안(Insecure)과 압박(Pressured) 속에 이전 세대보다 많은 세금부담(Overtaxed)과 빚(Debt-Ridden)을 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선진국은 이러한 청년들 즉 수요자를 직접 지원한다. 네덜란드는 정부가 소득수준이 낮은 청년들에게 임대료의 50% 가량의 '독립지원금'을 제공한다. 덴마크는 18세 이상 학생들에게 소득을 기준으로 주택 임대료와 기본 생활비의 일부를 지원한다. 미국은 연령과 관계없이 소득 중심으로 주거복지를 제공한다.

반면 한국은 공급자를 지원한다. 행복주택, 행복기숙사, 공공임대주택 등 건설에 역점을 둔다. 그럼에도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비중은 전체 주택공급량의 약 5%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평균인 11.5%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주거복지 선진국 네덜란드는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35%에 이른다.

이 보고서를 쓴 김지은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저소득층 청년들의 월세 부담 경감을 위해 주거비 일부를 지원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셰어하우스형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고 학생주거협동조합을 육성하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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