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선의 잠금해제]상상력 없는 사회의 SW 의무교육

머니투데이 신혜선 정보미디어과학부/문화부 부장 | 2014.07.26 08:36
학력교사 세대, 평준화 세대, 수능 세대, 한자어를 공부하지 않은 세대. 대한민국의 세대 구분에 한 가지가 더 추가 된다. SW(소프트웨어) 교육을 받은 세대. 정부가 내년 중학교 입학생부터는 SW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SW 교과 내용은 어떻게 구성될까. 컴퓨터, 하드웨어(HW), 운영체계(OS) 이런 개념부터 시작할까. 이제부터 구체 실행 계획을 짜겠지만 "운전을 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여름휴가 계획이 달라진다.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느냐에 따라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와 활용 능력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공무원의 설명을 들으면 정책 추진 의미가 나름 쉽게 이해된다.

하지만 모든 게 시험으로 통하는 교육 현실을 생각하면 긍정적 취지에도 우려가 든다. '시스템(HW)에 대한 이해 없이 SW만 따로 이해가 가능할까', 'SW를 가르칠 교사들은 준비가 돼있나'라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단순한 프로그램을 짜는 행위조차 평가가 적용되고 등수가 매겨진다면 극단적으로 아이들에겐 시험 과목 하나 더 늘어나는 일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5, 6학년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미리 익혀야한다는 전단지가 뿌려지고, 초등, 중등 과정에 새로운 사교육, 선행학습 시장이 형성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더군다나 컴퓨터 영역은 수학적 논리적 사고를 필요로 한다. 아무리 간단하다해도 모든 아이들이 즐겁게 재미를 갖고 도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건 무리다.

정부는 SW 교육이 단순 프로그램을 짜는 기능이 아닌 '디지털 브레인' 마인드를 심어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을 자동화하고 지능화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최적화하고 유연화 할 수 있는 행위이자 접근법을 몸에 익힐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다.

그렇다면 SW 교육의 목표는 궁극적으로는 기계(하드웨어)를 움직이는 실무적 힘(SW)을 갖춘 이들의 양성을 넘어 'SW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 학교의 '모둠 활동'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 모둠별 간단한 게임이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어보자는 과제가 부여된다면 이를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기능은 모둠에서 한두 명이면 된다. 스토리를 만들고 디자인을 하는 역할도 필요하다. 아니 어쩌면 프로그램을 짜는 일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상상력과 스토리가 없다면 도구는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SW는 상상력을 현실화할 수 있는 힘"이라고 이번 정책의 의미를 강조한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의 말을 듣고도 맥이 빠지는 이유다.

게임은 어떤가. 게임은 스토리(문학)와 디자인(캐릭터), 음악(전문영역으로 확대되는 수준이다) 그리고 전략전술까지 모두 포함된 결과물이다. 종합예술의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는 어른들은 드물다. 게임에 심각한 '중독 딱지'를 붙여놓고 게임하는 아이들을 우려하기만 한다. 막으려고만 한다.

SW 의무화 교육 소식에 "게임을 무작정 하는 것보다 개발할 수 있다면 좀 다르지 않겠냐"라는 어른들의 기대감이 형성됐다는 얘기가 들린다. 하지만, 이런 사고야말로 '지극히 대한민국다운 접근법'이다.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선 프로그램을 알아야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게임을 해보고 그보다 더 많은 공상과 상상을 통해 스토리를 짜고 캐릭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SW 교육 의무화 소식을 접한 한 교사는 "아이들은 원하는 게 다 다르다. 필요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더 빨리 찾아 한다. 인센티브 같은 것을 통해 자율적으로 하게 하도록 해야지 일률적으로 의무화하는 게 효과적일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기능인 양성이 국가적 목표는 아닐 것이다. 상상할 줄 모르는 기능인들이 주도하는 사회라면 지금보다 결코 행복하지도 안을뿐더러 경쟁력이 있는 사회라고 볼 수 없다. SW의무화 교육이 왜 필요한지, 성공하기 위해 뒷받침돼야할 것은 무엇인지 'SW적으로' 함께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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