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이 상위 1%에 못 든다면

머니투데이 미래연구소 강상규 소장 | 2014.07.20 15:30

[i-로드]<22>‘치킨공화국’ 한국 사회에서 튀게 사는 법

편집자주 | i-로드(innovation-road)는 '혁신하지 못하면 도태한다(Innovate or Die)'라는 모토하에 혁신을 이룬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살펴보고 기업이 혁신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알아보는 코너이다.

/그림=임종철 디자이너
-자식의 장래가 학교 상위 1%에 달려있는 세상
-일찍 공부 포기하는 게 현명한 세상
-더 이상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말 못하는 세상

# “어차피 상위 1%에 들지 못하면 서둘러 다른 걸 시킬 겁니다.”

며칠 전 만난 교육계에 있는 한 후배는 자식의 공부 얘기를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이렇게 답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미 중학생 아이와 이렇게 약속까지 했다고 했다.

그는 아이가 현재 국어와 영어는 잘 하지만 다른 과목은 별로라며, 1년 안에 상위 1%로 올라가지 못하면 공부를 포기시키고 일찌감치 다른 길을 찾아 볼 거라고 말했다.

이 후배는 “학교에서 상위 1%에 들지 못하면 커서도 3류 4류 인생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게 지금의 현실”이라며 “세상의 어느 부모가 소중한 자식이 3류 4류 인생을 살도록 방치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자식을 위해선 자신과 같은 결정을 하는 게 현명한 부모가 아니겠냐고 강조했다.

# “그나마 부모가 능력이 되니까 자식에게 공부 아닌 다른 걸 시키지...”

그렇다고 아무나 자식에게 예능이나 체육 등 공부 외 특기를 가르치는 걸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부모가 그럴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세상이다.

아이들만 학교에서 상위 1% 등급을 가르는 게 아니다. 예능이나 운동으로 일찌감치 특기를 키울 만한 여유가 없는 부모는 한국 사회에선 능력없는 부모로 취급받는다.

부모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없는 아이들에게 남은 유일한 길은 죽어라 공부해서 제 힘으로 상위 1%에 오르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하위 등급으로 지내거나.

# “(수능) 1~3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4~6등급은 튀기고, 7~9등급은 배달한다.”

한 고등학생이 대학 수능 등급에 따라 향후 인생이 결정된다는 얘기를 치킨 집 주문에 빗대어 풍자한 글이 SNS에서 화제가 됐었다(관련기사: 당신의 치킨인생, 시킬 것이냐 튀길 것이냐).


이미 어린 학생들마저 학교에서 상위 1%에 들지 못하면 나중에 고작 치킨 집에서 튀기거나 배달하는 인생으로 그치고 만다는 걸 믿고 있다는 게 충격이다. ‘치킨인생’의 패배의식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아이들이 더 이상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반문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허탈하다 못해 분노가 치미는 건 왜일까. 학교 성적이나 수능 등급에 상관없이 인생은 역전될 수 있다는 기대가 부모와 아이들 모두에게서 사라져 버린 걸까.

# “큰 애는 군의관이고 둘째는 삼성OO에 다녀.”

오랜만에 만난 처가쪽 친척분에게 자식의 근황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아마 ‘치킨공화국’ 한국 사회에 사는 모든 부모가 가장 선망하는 답변일 것이다. 친척분의 말엔 ‘결국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랑이 배어 있었다.

누구나 커서 상위 1%의 인생을 살고자 원한다. 학교에서 상위 1%에 들려고 기를 쓰는 이유도 여기 있다. 공부가 안 되는 자식을 위해 일찌감치 특기를 키우려는 부모를 현명하다고 부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학교에서 한번 등급이 정해지면 커서도 그 등급을 탈피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이게 사실이면 한국 사회는 정말 심각하다. 커가면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가 부모나 아이들에게 없다면 한국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 “좋은 대학을 나와서...연봉과 복지가 보장돼 있는 대기업에 취직해야지 스타트업이 뭐냐?”

포항공대를 졸업하고 헤어스타일 북, 헤어숍 모바일 커머스를 제공하는 부킷이라는 스타트업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박은빈씨는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스타트업을 선택하는데 많이 망설였다고 고백했다. 박 씨는 상위 1%의 보장된 ‘치킨인생’을 박차고 주위의 많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을 과감히 선택했다.(관련기사: [토요클릭]여자인 내가 스타트업 선택한 이유)

지난 5~6일 서울 한복판 광화문 드림엔터엔 박 씨와 같은 청년창업가들 100여명이 모여 무박2일로 ‘도심 속 창업캠프’를 가졌다. 여기엔 박 씨와 같이 포항공대, 서울대, KAIST, 연세대 등 소위 학교 상위 1%에 드는 많은 청년들 뿐만 아니라 수능 등급에 따른 ‘치킨인생’의 운명을 거부한 또 다른 부류의 청년들도 가득찼다. 밤을 꼬박 새워가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주저 없이 도전하는 이들에게선 ‘치킨인생’이란 걸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은 '치킨공화국' 한국 사회에서 튀게 사는 법을 분명히 보여줬다. 창업캠프엔 ‘치킨인생’을 거부하는 도전적인 청년들의 열기가 새벽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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