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를 위한 가난한 교회…교황의 메시지 읽어야"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4.07.16 05:40

[저자를 만났습니다]'교황과 나' 펴낸 해방신학자 김근수…"왜 한국천주교는 거꾸로 가나"

해방신학자 김근수.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일상적인 농담이 오가며 분위기가 부드러워졌지만, “가난한 사람을 위해 교회가 죽어야한다”는 신념에 찬 멘트는 이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곧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이라고 덧붙였다. “보수적인 한국 천주교계에 ‘공공의 적’이 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되레 큰소리로 웃으며 받았다.

“개혁파 신부들은 제게 더 한발짝 나아가달라고 주문해요. 당신은 이미 다친 사람이니까, 더 나아가도 된다면서요. 물론 보수파는 비꼬죠. 그걸 두려워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국내 유일무이한 해방신학자 김근수(54)의 어조(語調)는 자장가 같았으나, 말의 내용은 단호함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천주교 신앙을 200여년 지켜온 가정에서 태어나 신학, 그 중에서도 해방신학만 10년 이상 공부해온 그가 최근 교황의 개혁 의지를 담은 인문서 ‘교황과 나:개혁가 프란치스코와 한국’을 내놓았다.

소설처럼 읽히는 이 책은 재미로 시작하다 감동이란 코너를 돈 뒤 반성이란 종착역에 이르는 변화무쌍한 체험을 맛보게 한다. 교황 관련 책들이 교황의 미덕을 칭송하는 쪽에 주로 맞춰져 있다면, 김근수의 그것은 교황을 사례로 ‘개혁’이라는 화두를 한국 천주교 사회에 날카롭게 던진다.

예수회, 프란치스코, 해방신학…모두 '가난한 이'를 위한 명명

현 교황은 예수회 소속 첫 출신 교황이면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교황이고, 해방신학을 몸소 실천하는 교황이라는 점에서 기존 보수파 교황과 전혀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

“예수회 출신이면 로욜라(예수회 창설자)라는 이름을 쓸 것으로 예상했지만, 교육 사업에 몰두한 예수회보다 가난한 교회를 꿈꾸었던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이름을 사용하는 파격을 단행했잖아요. 그리고 행동은 정치적 억압에 시달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는 것을 최고의 원리로 삼는 해방신학으로 보여주고 있고요.”

김근수는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광주가톨릭대학과 독일 마인츠대학에서 신약성서를, 엘살바도르 중앙아메리카대학에서 해방신학을 공부했다.

독일과 남미에서 10여년 간 해방신학을 공부해온 김근수는 "교회는 기본적으로 가난한 이의 편에 서야한다"고 강조한다.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신약성서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역사의 예수’(개혁파)였다. 부활 이후의 예수를 믿는 ‘믿음의 그리스도’(보수파)와 달리, 역사의 예수는 실제 이스라엘에 살았던 예수의 삶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는 “역사의 예수 연구에서 얻은 핵심 주제는 예수와 가난한 사람과의 관계”라고 했다.

“가난한 사람이 적었던 독일은 실제 연구하기 좋은 조건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가장 처절한 현실이 있는 곳을 찾다보니, 내전과 독재, 빈민이 모두 존재한 엘살바도로가 눈에 띄었죠. 거기서 해방신학의 권위자인 소브린노의 첫 아시아 제자가 됐어요.”

요한 바오르 2세부터 지난해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할 때까지 37년간 전세계적으로 100여명의 해방신학자들이 처벌받았다. ‘낮은 곳으로 향하라’며 교회의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던 진보 세력들은 보수 교황청의 억압에 눌려 힘을 잃고 사라졌다.

김근수는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화하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전세계 경제 흐름을 쥐어잡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교회의 역할은 달라야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의 구원·치유·축복보다 자유·평화·정의의 실현 등 공적인 행동 철학이 앞서야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존재 이유…'밖으로 나가서 행동하는 것'


“예수는 윤리교사가 아니었어요. 그랬다면 공자처럼 장수했겠죠. 프란치스코 교황의 의식도 예수와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도 프란치스코는 교회 밖으로 나가라고 행동을 강조하지 않나요? 갈등의 현장으로, 역사의 희생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번도 자신을 ‘해방신학자’로 표현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해방신학의 원칙과 행동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추상적인 어휘를 사용하며 해당인을 지칭하지 않는 두루뭉술한 ‘교황식 어법’의 탈피다. 프란치스코는 ‘마피아는 파문됐다’ 식의 직접 화법을 통해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성직자 중심주의를 전면에서 비판하며 바티칸 금융감독기구인 금융정보국(AIF)의 이사를 전원 해임하는 등 직접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김근수는 “이런 직접 화법을 사용한 교황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김근수는 또 책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끄는 21세기 교회의 모습은 예수사후 루가복음 공동체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진단한다. 루가복음에선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살고 있는 상황에서 가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가난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편드는데서 찾는데, 지금의 교회도 그 원칙에 따라야한다는 설명이다.

“성직자 입장에선 ‘서로 잘 지내야한다’는 말이 가장 인간적인 답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성서를 믿고 있는 한 해답은 전혀 다른 곳에 있어요. 교회는 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가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교회 자체가 아예 가난해져야하는 겁니다.”

이것은 김근수가 이 책을 쓴 동기이기도 하다. 개혁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등장을 계기로 부를 축적하고 교회 개혁에 나서지 않는 한국 천주교의 뿌리깊은 수구의식에 대한 일침인 셈.

김근수 해방신학자가 묘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출신으로,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이름을 지닌 해방신학자의 행동 철학을 담고 있다.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프란치스코의 진정한 개혁의지를 한국 천주교는 대부분 ‘편집’해서 전달하고 있어요. 교황의 개인적인 성품이나 신앙심만 강조하고, 사회나 교회 개혁에 대해선 침묵하니까요. 십일조를 의무적으로 내는 개신교에 부담을 느낀 신자들이 비교적 자율 헌금이 보장된 가톨릭으로 몰려들면서 천주교 재산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것뿐인가요. 한국 천주교 신부들의 절반 가량이 골프장에 나가는 현실을 보면, 암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교황은 계속 가난한 교회를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에 반하는 일들이 한국땅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어요.”

'부 축적'에만 관심있는 한국 천주교…'예수의 메시지' 되돌아봐야

김근수에 따르면 한국 천주교는 늘 두가지 노선에서 충돌한다.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자는 주의와 교회 조직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대한 주의가 그것이다. 그는 “정치적으로 탄압받지않고 경제적으로 독립하기위한 안정성 때문에 예수의 메시지는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라며 “신도들의 내부 구성 대다수가 상류층인 것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가난한 자는 자연스럽게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남미 해방신학자들은 부귀영화나 입신양면을 노리지 않고, 오로지 옳으냐, 그렇지 않으냐만 보고 살았어요. 그게 신앙이죠. 옳으면 그냥 따르는 겁니다.”

김근수는 이 책을 탈고한 뒤 지난 6월 10일간 로마에 다녀왔다. 책의 내용 검증과 교황에 대한 일부 의혹(아르헨티나 군사독재에 편승)을 확인하기위해서였다. 거기서 그는 우연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스승인 스칸노네 신부를 만나 군사독재 시절 교황의 행적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언을 들었다. 그리고 한 현지언론사 대표의 제안에 따라 교황에게 스페인어로 편지를 적어 보냈다.

‘우리 한국인에게 필요한 것은 강력한 사회 비판입니다. 우리는 백성의 편에 선 교회를 느끼고 싶습니다. 교회의 강력한 목소리가 우리에게 필요하며 그것이 교황님의 목소리이기를 빕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상황을 제가 개인적으로 교황님께 설명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편지가 교황님 마음에 가닿기를 빕니다.’

신앙없는 현실은 두려움을 재촉하고, 현실없는 신앙은 생존을 위협한다. 김근수는 가장 밑바닥에 꿈틀거리는 인간의 ‘생존’을 말하기위해 교황을 끌어들였다. 한국 천주교는 ‘가난’을 이고 생존에 관심을 쏟을 것인가, ‘부자’를 자처하며 구원을 외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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