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 이같은 스웨덴 정부의 노력은 연금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스웨덴의 국민연금인 국가연금펀드(AP)는 2001년 연금개혁의 일환으로 AP의 기금운용 조직을 5개로 쪼개는 파격적인 실험을 했다. AP가 스웨덴 경제를 너무 크게 소유하고 있다는 지적 등이 이어졌기기 때문.
◇'분할'로 분산·독립·경쟁 모두 잡은 AP=2001년 당시 AP는 4개 기금운용 조직에 각각 1340억 SEK(크로나, 약 20조원)씩을 배정하고, 벤처펀드 성격의 AP6를 설립했다. 네 개의 AP는 각 펀드별로 완벽하게 독립성을 유지하게 만든 것이 가장 큰 특징였다.
5개 기금운용 조직의 독립성을 보장한 이유로는 '리스크 관리'가 우선 꼽힌다. 기금을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운용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5개의 펀드로 분산투자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투자 다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
정부로부터의 독립성 확보에도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연기금의 책임자가 한 명밖에 없다면, 정부가 해당 기금에 입김을 행사하기 더욱 용이하기 때문. AP측 역시 기금운용 조직을 나눈 후 정부의 '입김'이 크게 줄었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분할 전에는 스웨덴 정부가 AP에게 특정 주택채권을 매수하라는 압력도 넣었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없어졌다는 설명이다.
각 AP펀드 간에 경쟁이 일어남에 따른 수익률 제고 효과도 있었다. 실제로 AP펀드들의 지난해 운용수익률은 모두 10%를 돌파했다. AP4가 16.4%로 가장 높았고 AP3(14.1%), AP2(12.7%), AP1(11.2%)이 뒤를 이었다.
오시안 엑달(Ossian Ekdahl) AP1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는 "단수 기금운용본부 시절에는 채권 등 안전자산 위주로 투자해 수익률이 2~3% 수준에 그쳤다"며 "기금운용조직 간 경쟁체제를 도입하지 않았을 때 AP는 명백하게 '배가 불러' 나태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복수운용조직이 수익 극대화..이어갈 것"=국민연금 역시 AP의 이같은 시도를 눈여겨보고 있다. 최광 이사장은 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기금 규모가 800조원이 되면 400조원씩 기금운용본부를 2개로 나누는 방식을 구상 중"이라며 "경쟁 운용 방식을 도입하면 효율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언급했었다.
실제로 AP의 기금운용조직은 조만간 3개로 통합된다. AP펀드가 5개로 나눠짐에 따라 증가한 기금운용 비용을 줄여야 할 필요성이 현지 정치권 등에서 제기됐기 때문.
하지만 기금운용조직을 한 개로 완전히 합치는 것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 복수기금운용본부 운영에 따른 이득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이번 개정안도 유명무실했던 AP6를 폐지하는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1개의 기금운용조직만 없애는 것이다.
국내 일각에서는 기금운용본부를 분할하면, 국민연금의 투자유치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기금규모가 세계 4대 연기금 수준으로 크기 때문에 글로벌 우량투자 상품이 국민연금으로부터 투자받기를 원하고 있는데, 이를 분할해서 이같은 '유인효과'를 약화시킬 필요가 있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AP측은 기금규모가 작아질수록 우수한 투자대상을 발굴하기 쉽다는 점을 강조했다. 큰 돈을 맡아 줄 수 있는 운용사가 세계적으로 많지 않기 때문에 기금규모가 클수록 효과적인 분산투자를 하기 어렵다는 것. 특히 기금의 국내시장에 대한 지배력이 지나치게 비대할 경우에는 기금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좁아진다고 조언했다.
헤시우스 CEO는 "비용절감만 말하는 사람들은 (복수기금조직을 통해) 어느 정도의 수익이 더 발생하는 지에 전혀 관심이 없다"며 "AP의 현재 시스템은 아주 효과적으로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장이 안 난 제도(복수기금조직)를 고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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