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전과 전무한 '아마추어'가 계획살해 성공하기까지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 2014.06.29 09:00

'범죄초보' 3개월이나 추적…담배꽁초 숨기고 택시 수차례 갈아타며 도피

지난 3월3일 새벽 2시45분쯤 팽모씨(44)가 인천의 한 사우나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 가방 안에 범행도구와 옷 등을 넣고 불태우기 위해 인근 산으로 이동 중인 모습. '범죄 초보' 팽씨는 현직 시의원인 김모씨(44)로부터 살해 지시를 받은 후 김씨와 함께 1년 3개월 동안 범행수법과 도주방법 등을 치밀하게 계획해 살해에 성공했다. /사진=서울 강서경찰서 제공

지난 3월 발생한 '내발산동 수천억대 재력가 살인사건'은 철저한 계획범죄로 밝혀졌다. 살해 교사부터 실행까지 1년 3개월 기간 동안 '범죄 초보' 피의자는 어떤 준비를 했기에 3개월 넘게 수사기관을 따돌릴 수 있었던 걸까.

◇살해 교사부터 실행까지 1년 3개월간의 '예행연습'

팽모씨(44)는 2012년 12월 말 처음 현직 서울시의원 김모씨(44)로부터 살해 지시를 받았지만 바로 실행하지 못하고 1년 넘게 망설였다. 팽씨는 살해 경험은커녕 폭력 전과도 없는 '초보'였기 때문.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1년 3개월의 '망설임'의 기간이 단 한 번의 살해시도를 성공으로 이끈 준비기간이 됐다. 팽씨는 평소 피해자 송모씨(67)를 잘 아는 김씨로부터 송씨의 규칙적인 하루 일과와 동선 등의 정보를 반복 습득했다.

또 팽씨는 김씨가 살해 압박을 가할 때마다 50~60차례 송씨 사무실 근처를 배회하며 김씨에게 '노력의 증거'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과정을 통해 팽씨가 범행 예정 장소에 익숙해지는 등 '예행연습'이 됐을 것이라고 경찰은 보고 있다.

실제로 팽씨는 범행을 성공한 지난 3월3일 일주일 전 건물 화장실까지 들어갔다가 용기가 부족해 살해를 실행하지 못했지만, 이때의 실패를 발판으로 다음 주 계획대로 살해를 성공할 수 있었다.

팽씨는 철저한 준비만큼 실행도 치밀했다. 경찰이 확인한 범행당시 CCTV를 보면 팽씨는 범행과정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다수 목격되지만 담배꽁초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팽씨가 담배꽁초를 의도적으로 남기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담배꽁초가 없이 담뱃재만 있으면 DNA 검사가 불가능해 피의자 특정이 불가능하다"며 "팽씨가 추적을 피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를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팽모씨의 도주경로. /사진=강서경찰서 제공

◇치밀하게 사전 계획된 도피 수법

살해 후 도피경로도 김씨의 지시에 따라 오랜 기간 치밀하게 계획됐다. 팽씨는 범행 직후 강서구 내발산동에서 인천 옥련동 소재의 사우나로 가기까지 택시를 4대 갈아탔다. 빠른 길을 놔두고 통상적인 동선과 동떨어진 영등포, 송내역 등의 목적지를 찍으며 이동해 동선 추적을 어렵게 했다.


이후 사우나에서 옷을 갈아입고 도보로 편의점에 이동한 뒤 한 차례 택시를 더 갈아타고 청량산에서 범행도구를 불태워 유기하기까지 범행 장소로부터 총 60km를 이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팽씨는 자신의 거주지인 인천에서 범행장소로 올 때조차 수차례 택시를 갈아타고 온 것으로 조사됐다. 사무실 건너편에서 내려 뒤쪽으로 건물을 끼고 돌아 무단횡단해서 건물 내로 진입하는 등 주변 CC(폐쇄회로)TV를 피해 동선 추적이 어렵게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팽씨는 살해 당시 위아래 검은 옷을 입어 핏자국이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했다. 경찰은 팽씨가 이용한 택시를 발견한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했지만 어디에서도 혈흔을 발견하지 못해 더욱 애를 먹었다. 팽씨는 이후 사우나복으로 갈아입는 등 변복해 수사에 혼선을 입혔다.

경찰은 CCTV와 택시 GPS 등으로 팽씨의 도주 경로를 추적해 청량산에서 팽씨가 소각한 범행 도구 잔해 등 증거물을 발견했다. /사진=서울 강서경찰서 제공

◇경찰의 끈질기고 신중한 수사로 '덜미'

경찰은 지난 3월3일 사건 직후 현장 주변의 CCTV와 택시 GPS 등을 끈질기게 추적해 같은달 18일 팽씨를 특정했다고 밝혔다. 구속까진 총 3개월이 넘게 걸렸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이 심야시간대 발생해 CCTV가 있어도 별 도움이 안 됐고 서울시내 택시 중 GPS가 장착된 택시도 많지 않아 추적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결국 일일이 택시 회사를 찾아다니며 기사들을 면접해 팽씨가 맨 처음 탄 택시를 찾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택시 기사들은 대부분 손님을 내려준 지점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경찰은 "택시를 한 대 한 대 갈아타는 것을 확인하는 데 애를 먹었다"며 "옷까지 여러 번 갈아입어 수사하는 입장에서는 범인의 흔적이 계속 사라진 꼴"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팽씨가 10년여간 다닌 단골 사우나 종업원을 통해 팽씨가 사용한 휴대전화번호를 알아내 덜미를 잡았다. 경찰은 지난 3월18일 팽씨를 특정한 이후 통신·금융추적 등을 통해 곧 김씨의 연루 사실을 알아냈지만 팽씨가 5월22일 중국에서 체포되고 6월24일 국내로 인도받기까지 조용히 김씨의 동향을 파악하며 때를 노렸다.

경찰은 경찰서 바로 앞에서 버젓이 김씨가 선거사무실을 차리고 선거운동하는 것을 보면서도 신중히 김씨의 주변을 조사하다 결국 지난 24일 오전 8시43분 김씨 주거지 앞에서 주범 김씨를 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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