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2년차' 50대男 "농사 수익? 작년에 날린 종자값만…"

머니투데이 이해인 기자 | 2014.06.19 08:29

[직장인 로망과현실⑩-끝] 초보농부, 수익창출 어려워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귀촌인구는 총 5만6267명(3만2424가구)로 사상최대치를 기록했다. /자료사진=이미지비트
#은행에 다니다 퇴직한 5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귀농' 대열에 합류한 초보 농부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해가 지날수록 북적거리는 도시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3개월간의 끈질긴 설득 끝에 부인의 'OK사인'을 받아낸 A씨는 모아둔 노후 자금을 털어 지난해 3월 강원도 원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러나 귀농생활은 A씨가 생각한 것과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처음해보는 농사는 매일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 일하던 A씨에게 강도 높은 '육체노동'으로 다가왔다. 땅만 사면 될 줄 알았는데 종자와 농기구 등 이래저래 돈도 많이 들어갔다. 비료만 잘 주면 잘 클 줄 알았던 농작물은 '가뭄'이라는 변수에 까맣게 타들어갔다.

A씨는 "10년 이상 묵혀둔 땅 정리에만 포크레인 대여 비용으로 300만원 이상을 투자했다"며 "첫해에는 항암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개똥쑥과 깨 종자 400만원 어치를 구매해 심었는데 가뭄 탓에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수확물이 거의 없었다"고 털어놨다.

◇ "귀농은 생활, 낭만은 없다"

각박한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향하는 '귀농'이 직장인들의 '로망'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귀농·귀촌 인구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귀농·귀촌인구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도 했다. 은퇴를 앞둔 일명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는 물론이고 '무한경쟁'에 지친 40대 이하 젊은 층도 귀농 대열에 합류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귀촌인구는 총 5만6267명(3만2424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2만7008 가구를 기록했던 2012년의 약 1.2배 수준이다.

그러나 먼저 농촌으로 떠난 '귀농 선배'들은 "귀농에 낭만은 없다"며 "잘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A씨는 "그림 같은 전원주택을 짓고 여유롭게 생활하는 것을 꿈 꿨다면 절대 귀농을 선택하면 안된다"며 "귀농은 그야말로 농사를 업으로 삼는 생활이다. 행복한 순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낭만은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평생을 사무직 회사원으로 살아온 사람에게는 특히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라고 권한다"며 "나이 50에 처음 접한 농사는 세월에 빼앗긴 체력과 위기 상황 대처능력 등을 평가하는 일종의 시험 같았다"고 고개를 저었다.

'귀농 선배' 들은 삶의 터전을 바꾸는 만큼 '기반 잡기'도 힘들다고 토로한다.


올해로 귀농 4년차에 접어든 50대 B씨는 "사내 정치와 뒷담화 등 사람에 치이는 게 싫어서 귀농을 택했는데 시골도 사람 사는 곳이라 그런지 별반 다를 바 없었다"며 "지역 커뮤니티에 끼지 못하면 각종 혜택을 놓치는 것은 물론 각종 의사결정에서 소외되는 등 일종의 '왕따'가 된다"고 말했다.

◇ 수익 창출 어려움…도시로 되돌아 가기도

수익 창출이 어렵다는 문제점도 있다. A씨의 경우처럼 종자 구매, 농기구 구매 등에 꽤나 많은 비용이 소요되지만 이제 막 배우는 실수투성이 '초보 농부'는 사실상 '본전치기'도 어렵다.

A씨는 "깨가 잘 자라지 않아 선배에게 물으니 비료를 물에 타서 주라는 조언을 들었다"며 "그런데 0.3%로 희석해서 주라는 말을 30%로 잘못 알아들었고 그해 수확물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귀농인 50대 C씨는 "자연이 좋아 귀농을 택했지만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사실상 생활이 불가능하다"며 "은퇴자금을 털어 가게를 열었는데 손님이 없어서 만날 돈을 까먹는 것과 비슷하다"고 조언했다.

경제난 때문에 다시 도시로 되돌아가거나 자살을 택한 사례도 있다. C씨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1~2년 내에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꽤 많이 봤다"며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택한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실제 지난 2월에는 조류인플루엔자(AI)로 닭과 오리의 출하가 불가능해지면서 2년 전 귀농한 50대 농장주가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시도, 끝내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

B씨는 "사업 준비단계에서 1년 동안 버틸 수 있는 돈을 미리 준비해 놓는 것처럼 귀농도 한동안 수입이 없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한다"며 "사업을 하듯이 미리 생길 수 있는 변수들에 대해 고민하고 대비책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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