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Chutes and Ladders'가 됐고, 떨어지는 뱀을 미끄럼틀로 바꿔서 높은 수준의 아트웍을 추구했다. 이후 이 게임은 세계 어린이들의 일종의 통과 의례가 됐다. 교육 종사자들도 숫자 1~100 개념을 익히기 좋은 도구라고 인정하는 편이다.
국내에는 군사정권 시절, 마분지에 인쇄해 20~30원에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뱀주사위놀이'라는 제품이 등장했다. 주사위, 게임 말, 패키지를 생략해 가격을 혁명적으로 낮췄는데, 오늘날에도 보드게임 퍼블리셔 중 ‘Cheapsss’라는 회사가 이 같은 방식의 출판을 주로 하고 있어 유명하다.
20원짜리면 너무 싼 것이 아닌가 싶을 것이다. 나이 지긋한 분들은 눈깔사탕 여러 개를 10원에 살 수 있었던 시절이라 그렇게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리고 사라져버렸는데, 현재는 인터넷 등에서 이미지를 찾을 수 있고 인사동에 가면 마분지 인쇄를 재현한 버전을 구입할 수 있다.
'뱀과 사다리 게임'이 게임 내에 메시지를 담기 좋다고 언급했는데, 우리나라의 뱀주사위놀이는 가히 프로파간다라 할 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보너스 전진을 하는 칸은 모두 선행을 한 결과로 그려져 있고, 페널티를 받는 칸은 모두 악행을 한 결과로 그려져 있다. 또한, 상승하는 이벤트가 사다리 대신 고속도로로 바뀌어 있다.
“야당의 반대에도 경부고속도로를 밀어붙여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됐다. 야당은 반대 밖에 모르는 것들이다”라는 당시의 강력한 프로파간다를 어린이 놀이에서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야당은 경부고속도로를 긍정적인 사회간접자본 확충으로 생각했으나 서울과 영남 사이의 철도 등이 비교적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영남 지역으로의 교통 인프라 집중보다는 강원, 호남 지역의 교통 인프라가 더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 세부 이벤트를 살펴보자. 먼저 주목할 점은 각자 분야에서 노력해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 저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체육으로 성공한 사람이 얻는 보너스는 4칸(8-12)에 불과하고, 의사가 되는 사람이 얻는 보너스는 12칸(24-36), 축산업을 일으켜 알부자가 된 사람이 받는 보너스가 12칸(34-46)이다.
이공계열 성공자는 10칸(76-86)의 보너스를 주는데, 이공계의 푸대접은 이때부터 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열심히 싸운 군인이 받는 보너스 2칸(90-92)에 비하면 감지덕지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노인에게 길을 잘 가르쳐준 어린이의 선행은 전문 분야 성공과 대등한 평가(12칸, 4-16)를 받는다. 산에 나무를 심은 행동은 20칸(18-38)의 평가를 받으며, 열심히 공부해서 학사모를 쓴 사람은 34칸(32-56)을 올라가 버린다. 정점은 간첩 신고로 표창장을 받은 사람으로 무려 52칸 상승의 인생 역전을 보여준다.
페널티들은 지나가는 개를 발로 차서 물리거나 친구를 때렸다가 깽 값을 물어주는 등 도덕 교과서를 보는 듯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게임 최대 패널티(66–14)가 성희롱을 하다가 감옥에 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불장난으로 마을 하나를 태우고 불법 무기를 만들어서 버섯구름을 일으킨 것보다 페널티가 크다. 성희롱에 대한 당시 사회통념을 생각할 때 이는 매우 진보적인 생각이었다. 그 외의 이벤트들과 비교하면 더욱 이질적이다. 딸 가진 부모의 마음이 느껴진다.
군사 정권 시대 사회상을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과 성희롱에 대한 진일보한 생각을 뺀다면 이 작품은 그다지 건전하거나 교육적이지는 않다. 추억도 좋지만, 아이와 놀아주고 싶다면 마트나 완구 매장 등에서 스머프나 자두 캐릭터로 만들어진 작품이 있으니 그쪽을 사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보너스. 추억의 뱀주사위놀이의 이벤트 그림을 싹 날려버리고 그 자리에 원하는 멘트를 적어서 커스텀화할 수 있게 한 특별 파일을 기사 부록으로 제공한다. A3로 출력하면 딱이다.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편집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내려받아 다양하게 만들어보자.
☞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6월 18일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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