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하는 할머니 VS 대출받는 손녀

머니투데이 오정은 기자 | 2014.06.20 06:06

[창간기획-저성장·저금리, 삶을 뒤흔든다]<2회>①달라진 사회상 "현금 10억보다 9급 공무원"

이미지=김지영 디자이너
#2013년 2월 한화투자증권 실전 투자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주인공은 20대 젊은이가 아닌 박모씨(73)였다. 박씨는 투자기간 동안 114.3%의 수익률을 기록했는데 그것도 스마트폰 리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박씨는 특히 단타 매매로 큰 수익을 냈다.

#9급 공무원으로 입사해 35년 근속한 뒤 6년전 퇴직한 김모씨(66)는 요즘 들어 월 300만원씩 받는 연금이 자랑스럽다. 시중금리가 2%대로 주저앉자 이자로 월 300을 받으려면 최소 13억은 있어야해서다. 김씨는 "사람들이 저보고 13억 있는 남자라고 불러요"라며 웃었다. *(단 2009년 공무원연금법 개정으로 공무원 연금 지급액은 상당 부분 삭감됐다. 아울러 정부는 내년부터는 공무원연금 지급률을 현재보다 20% 축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저성장·저금리가 한국인의 삶을 바꾸고 있다. 준비 없이 은퇴한 베이비부머를 공격적 투자로 내모는 한편, 에코세대의 취업·재테크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2008년 1월 5.0%에서 2014년 6월 현재 2.50%로 7년 만에 반토막났다.

◇대학생 손자보다 할머니가 '주식'="주식투자를 하겠다고 70대에 돈을 싸들고 오시는 분이 있어요. 젊을 땐 여력이 없어서 투자를 못 하다 이제 돈 좀 모았는데 저금리라 주식 좀 해보겠다는 겁니다"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이 고수익을 위해 고위험 상품에 손을 대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고령자 중 주식에 투자하는 인구는 꾸준히 늘어 100만명에 육박한다. 60세 이상 주식투자인구는 2004년 54만8000명에서 2013년 94만1000명으로 10년 만에 72% 증가했다.

조태형 신영증권 청담지점 부장은 "어릴 때 공격형 상품에 투자하고 나이가 들수록 안정적인 상품 비중을 늘려야 하는데 거꾸로 가고 있다"며 "20~30대는 금융상품에 투자할 돈이 없고, 뒤늦게 목돈이 생긴 60~70대가 주식에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뒤늦게 고위험상품에 투자하다보니 리스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소중한 노후자금을 날리는 안타까운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동양 기업어음(CP) 사태나 저축은행 후순위채권 피해자 대부분이 60~70대인 것도 고금리를 좇다 파산한 세태의 한 단면이다.

하지만 여유자금으로 투자를 하는 경우는 차라리 행복한 편. 순차적인 은퇴를 시작한 베이비부머 세대의 대부분은 준비 없이 '저금리의 벼랑'에 내몰리고 있다. 월 140만원 이자로 돌아오던 3억원의 퇴직금이 월 70만원짜리로 전락해서다.

목돈 없이 노후에 저금리에 직면한 베이비부머의 선택은 자산 비중이 가장 큰 부동산을 유동화하는 것이다. 그 결과 부동산 시장에서는 월세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서 부동산을 하는 이승명씨(55)는 "전세금 1억 더 받느니 그냥 월세받는 것이 낫다며 반전세로 돌리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다"며 "보증금의 약 0.5%를 월세로, 즉 연 6% 정도의 이자를 추구하는 것이 통상적이다"고 설명했다.


집도 없는 사람은 최대한 일을 오래 하는 수밖에 없다. 월 100만원만 벌어도 금리로 따지면 그 가치가 대단히 높아진 것. 한국보다 일찍 초저금리 시대에 돌입한 일본은 1년에 100만원만 벌어도 10억원 예치(금리 0.1%)와 비슷한 효과를 누리게 됐다. 저금리 시대 '시니어 일자리'가 금값인 이유다.

이미지=김지영 디자이너
◇SK텔레콤·은마아파트 신화는 끝났다=80년대 두 자릿수 경제성장기를 보낸 베이비부머는 사정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고성장기를 향유하며 취업도 쉬웠고 인생을 바꿀 기회도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1989년 주당 2만원에 상장해 약 100배 오른 SK텔레콤 주식이나 1990년 중반 1억원에서 15년 만에 14억원이 된 서울 은마 아파트 같은 '대박의 꿈'은 이제 사라졌다. 기업이 성장을 멈추자 일자리가 고갈됐고 베이비부머의 부동산 신화는 부메랑이 돼 20~30대를 강타한다.

20대의 사회진출은 취업난으로 호된 신고식을 치르며 시작된다. 취업준비생 박한창씨(28·서울 강동구 금촌2동)는 "어떤 기업이든 경쟁률 100대 1은 기본이다"며 "취업 기회는 적은데 지원자는 구름처럼 넘쳐나 '양질의 일자리'에 취업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고 말했다.

대기업에 다니며 착실하게 5억쯤 모아도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아는 에코세대는 공무원 시험에 '올인'한다. 5년째 7급 공무원을 준비 중인 전모씨(32)는 "35세 전에만 합격하면 손익분기점이다"고 말했다. 공무원으로 정년보장받고 연금 받는 것이 대기업에서 20년 일하고 3억 받고 은퇴하는 것보다 낫단 얘기다.

겨우 취업과 결혼에 성공해도 삶은 팍팍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1982년 33.6%였던 25~29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12년 71.2%로 급증했다. 미혼 남성의 80%는 이제 맞벌이를 원한다. 가장 1인의 소득이 3~4인 가족을 먹여살릴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맞벌이로 빠듯하게 모은 돈은 저축은커녕 학자금과 전세자금대출 상환에 투입된다. 집값이 오를 거란 기대가 없으니 집을 사는 사람이 줄고 전세값만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저금리에 내몰린 베이비부머가 전세를 월세로 돌리며 부동산 시장에서 전세도 사라진다. 시중금리보다 훨씬 높은 월세는 고스란히 20~30대의 몫이다.

맞벌이 주부인 양승연씨(32·성남시 수정구 복정동)는 "내년에는 전세금을 6000만원 정도 올려서 이사해야 할 것 같다"며 "2년 만에 6000만원 저축이 쉽지 않아 여름 휴가를 취소하고 전세금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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