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렇게 모두 '쏠림현상'의 노예들이 됐다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 2014.06.20 05:44

[머니투데이-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기획] '루저' 없는 사회를 향해

편집자주 |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누구나 고통스러운 입시전쟁, 스펙경쟁, 취업경쟁에 직면합니다. 하지만 목표를 이룬 이는 극소수이고, 대다수는 이른바 '루저(loser, 패자)'로 전락합니다. 도대체 왜 대한민국에는 이토록 루저들이 넘쳐나는 걸까요. 머니투데이는 오랜 시간 해법을 고민한 끝에 우리 사회 '성공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때마침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같은 의견을 주셨습니다. 이에 머니투데이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뜻을 모아 '성공의 기준을 바꾸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강지원 변호사를 시작으로 앞으로 매달 인터뷰를 통해 소중한 경험과 의견을 공유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존속살인'

평범한 사람들은 떠올리기조차 두려운 단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되어가고 있다.

2011년, 전교 1등을 할 만큼 뛰어난 성적을 유지했던 고3 모범생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시신과 함께 8개월을 함께 지내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다. 패륜적이고 엽기적인 이 사건의 이면에는 어머니의 학대가 있었다. 전교 1등이 아니라 전국 1등을 강요하며 골프채 등으로 상습적인 폭력을 가해왔던 것. 2000년에는 서울대 입학에 실패했다는 이유 등으로 엄청난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아오던 고려대생이 부모를 살해하고 시체를 토막 내 유기하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일일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존속살인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 돼버렸다. 경찰청에 따르면 존속살인은 2008년 이래 해마다 50건 이상 발생했다. 한 달에 평균 4건 꼴이다. 전체 살인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과거에는 부모의 재산이나 보험금을 노린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 그릇된 양육방식에 따른 정신분열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존속살인 외에도 대한민국은 '불명예 통계 1위'를 많이 갖고 있다. 자살률 세계 1위, 이혼율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위, 청소년 불행지수 OECD 1위, 성형수술 비율 세계 1위……. 스트레스와 갈등이 증폭된 사회는 '출산파업'을 불러와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 중이다. 출산된 아이들조차 '더불어 사는 능력'은 세계 '꼴찌' 수준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높은 사교육비는 부모 세대의 노후대비까지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됐을까. 청소년보호위원회 초대위원장, 자살예방대책추진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으며 '청소년 수호천사'의 길을 걸어 온 강지원 변호사의 분석은 폐부를 찌르고도 남음이 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르고, 더 많은 명예나 인기를 누리는 것이 성공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목표로 살아갑니다. 부모는 명문대 입학이 그걸 보장해 준다고 믿고, 자녀와 함께 오로지 명문대만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립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쏠림현상'이 심각해집니다. 명문대 쏠림, 대기업 쏠림, 수도권 쏠림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젊은이들은 나쁜 현실에 부딪혀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쏠림 현상'에 순응해 갑니다. 온갖 스펙을 쌓아가며 입사원서를 내지만 '높은 연봉'의 일자리는 극히 소수에게만 돌아갑니다. 1%의 승자만 남고 99%는 패자(loser)로 주저앉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개발연구원 등은 '좋은 직업(decent job)'의 기준으로 '돈(높은 연봉)과 안정성(정규직)'을 공통분모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돈과 안정성'이 보장되는 일자리, 즉 30대 대기업과 공기업, 금융업이 한 해 신규로 고용하는 정규직 인원은 2만명 안팎에 불과하다. 한 해 취업희망생이 60만명이 넘는 점을 감안하면 약 97%의 사회 초년생들이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루저'로 전락하는 셈이다.

'좋은 일자리' 2만개를 차지하기 위해 국민들 대다수는 태어나면서부터 치열한 경쟁에 뛰어든다.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명문대에 들어가야 하고,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 특목고에 들어가야 하고, 특목고에 들어가기 위해 국제중·사립초·영어유치원에 들어가야 한다는 식이다. 뱃속 태아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는 '영어 태교' 유행이 식지 않는 걸 보면 경쟁은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성공의 기준으로 '돈과 안정성'을 삼게 되면 평생 동안 상위 1%에 들기 위해 경쟁해야 합니다. 실제로 많은 부모와 자녀들이 이 '1%의 성공 확률'을 위해 막대한 돈과 에너지를 투입합니다. 산업화 시대의 관성으로 '무엇이 돼야 한다(what to be)'는 목표지향적인 삶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근간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목표 지향적인 사회는 지나친 경쟁과 갈등으로 높은 자살률 등 너무나 많은 병폐를 잉태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1% 안에 들더라도 '행복'이 보장되지는 않죠. 오히려 삶이 피폐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송인수·윤지희 공동대표의 말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무엇이 돼야 한다'는 목표 지향적인 사회에서 벗어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how to live)'의 가치 지향적인 사회로 변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 출발점은 '성공의 기준을 바꾸는 것'입니다. 시험 점수에 맞춰 대학과 직업을 선택하고,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면 모두가 불행해집니다. 이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합니다. 적성에 따라 진로를 선택하고, 그 직업을 통해 사회에 기여해 보람을 경험하며, 경제적으로 자립생활을 할 수만 있으면 '성공한 인생'으로 봐줘야 하지 않을까요? 이 세 기준을 만족시키면 모두 좋은 직업이고, 이런 직업을 선택하면 행복해진다는 의식전환이 필요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런 기준이 일반화 돼 있습니다."

2011년 어머니를 살해했던 지 모 군은 현재 3년째 수감생활 중이다. 그가 어렵사리 써내려간 옥중편지는 우리에게 한 가지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공부를 잘 해야 성공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달라고.

"다만 한 가지 아주 작은 소망이 있다면 그건 학업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학생들을 향한 것입니다. 뉴스에서 어느 학생이 그런 이유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애끊어지는 아픔으로 통곡하며 저는 바랍니다. 그들이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든 상관없지만 저처럼 극단적이지 않은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포기하는 것도, 남을 포기하는 것도, 모두 처절하도록 슬픈 일이기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진로 전문가 28인이 밝혀낸 잘못된 진로 정보 12가지를 담은 <찾았다 진로!> 소책자를 출간하고, 학급 아이들에게 소책자를 보내는 시민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아래 링크를 열어 자세한 내용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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