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황후'의 실제 주인공 충혜왕…패륜과 막장, 그 비극적 운명

딱TV 권용철  | 2014.06.14 11:08

편집자주 | 권용철의 역사 이야기 - 우리와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고 있었던 사람을 조명합니다. 잘 알지 못했던 그들의 치열한 삶을 보기 위한 과거로의 여행.

각종 패륜과 기행을 일으켰던 고려 '충혜왕'. 너무나 악독한 행동으로 드라마 '기황후'에서는 캐릭터가 가상의 인물로 바뀌었을 정도다. 하지만 충혜왕의 삶을 살펴보면 이미 그의 운명에는 '비극'이 깔렸다.

패륜과 막장행각으로 유명한 '충혜왕'…그의 성장 배경은?

얼마 전 종영된 ‘기황후’는 시작 전부터 역사 왜곡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중의 하나는 배우 주진모가 역할을 맡았던 고려왕이 ‘강간’ 등 각종 비행을 일삼았던 충혜왕을 전혀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논란은 충혜왕이 ‘왕유’라는 가상 캐릭터로 대체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우리에게 ‘충혜왕’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충혜왕은 자신의 욕망에 심취했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예쁜 여자들이 눈에 띄면, 신하의 아내라고 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버지의 후비, 즉 자신의 어머니 뻘 되는 여자까지 건드리기도 했다.

문란한 성생활 때문에 충혜왕은 임질에 걸려 항상 치료약을 복용하고 있었고, 충혜왕과 관계를 맺은 여성들이 이 병에 옮아 고생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충혜왕을 단지 패륜과 강간 등의 자극적인 단어로만 설명하기엔 무언가 부족하다.

1315년에 태어나 1344년에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충혜왕. 그가 살았던 시절은 원나라가 고려에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때였다. 원나라의 허락이 없으면 고려국왕이 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원나라에 복속한 이후 고려국왕들은 원나라의 눈치를 봐야만 했고, 원나라는 마음대로 고려국왕을 바꾸기도 했다. 심지어 원나라는 고려국왕의 자손들을 불러들여 원나라의 생활 방식을 익히게 해 원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키우게 했다.
충혜왕 역시 1328년에 14세의 나이로 원나라에 들어갔다가 당시 원나라의 정국을 주름잡고 있었던 연철목아(드라마 기황후에는 ‘연철’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의 눈에 띄게 되었다.


↑ MBC 드라마 '기황후'에서 연철역을 맡았던 전국환


아버지와의 갈등, 그리고 후원자의 죽음

충혜왕은 연철목아의 강력한 후원을 받아 아버지 충숙왕을 몰아내고 1330년에 고려국왕이 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충숙왕-충혜왕 부자 사이의 갈등 관계가 더욱 커지게 됐다. 한번은 충혜왕이 아버지 충숙왕을 영접하고 있었는데, 충숙왕이 “너의 부모는 모두 고려 사람인데, 어찌 나에게 오랑캐의 방식으로 인사를 하느냐?”고 꾸짖었고 충혜왕은 이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던 적도 있다.

충혜왕이 이후 고려국왕이 됐지만, 아버지 충숙왕의 견제는 심했다. 결국 1332년에 원나라는 다시 충숙왕을 고려국왕으로 삼고, 충혜왕을 원나라로 도로 불러들였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원나라에서 연철목아가 죽었다. 충혜왕은 후원자를 잃게 된 것이다. 연철목아 집안을 박살낸 백안이라는 사람은 충혜왕이 연철목아의 사람이라고 생각해 극도로 혐오하고 있었다.


백안은 충혜왕을 억지로 고려로 돌려보냈고, 충숙왕이 죽고 난 후에는 충혜왕이 절대 고려국왕이 될 수 없다며 다시 그를 잡아들였다. 충혜왕은 원나라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고려와 원나라를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그런데 때마침 백안의 조카 탈탈이 숙부를 쫓아내면서 충혜왕은 운좋게 다시 고려국왕이 될 수 있었다. 이때가 1340년으로, 8년 만에 다시 되찾은 고려국왕 자리였다.




이때 원나라에서는 고려에서 공녀로 끌려와 고생하던 한 여성이 황후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바로 기황후다. 기황후의 위세는 갈수록 커져 갔고, 그 여파는 고려에도 미치고 있었다. 기황후의 오빠들이 세력을 점차 키워갔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이 화근이 되어 1343년에 충혜왕은 고려국왕에서 밀려났다.
1343년 10월에 고룡보라는 이름의 환관이 고려에 왔다. 고룡보는 고려 출신 환관으로 기황후의 총애를 받아 상당히 높은 지위에 올라 있던 사람이었다. 고룡보가 고려에 온지 얼마 안 있어 원나라에서는 계속 사신의 명목으로 사람을 보냈다.
어느날 이들은 충혜왕을 갑자기 끌어내 발로 차면서 포박했다. 갑작스러운 원나라 사신들의 행동에 당황한 충혜왕은 고룡보를 불렀는데, 고룡보는 도리어 충혜왕을 큰 소리로 꾸짖었다. 이를 신호로 원나라 사신들이 칼을 빼 충혜왕을 모시던 사람들을 죽였다.

기황후의 은밀한 지시가 예상되는 사건이다. 결국 충혜왕은 또 다시 원나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고, 유배를 가던 도중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비운의 군주 '충혜왕'

그래도 한 나라의 국왕이었다. 아무리 고려국왕이 원나라의 눈치를 보는 신세라지만 원나라 사신이 발로 차고 포박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충혜왕의 이러한 운명은 14살에 원나라로 갔을 때부터 이미 정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연철목아, 백안, 탈탈, 기황후의 순서로 원나라에서 실권자가 바뀔 때마다 충혜왕의 지위도 요동쳤고, 그 결과 패륜의 군주라는 불명예였다. 그 불명예는 지금까지도 충혜왕을 상징하는 단어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충혜왕은 비운의 군주였다. 어린 나이에 연철목아의 후원으로 고려국왕이 됐지만 아버지와의 정치적 갈등과 폐위, 계속된 아슬아슬한 상황과 처참한 죽음은 원나라의 속박 아래 이리저리 끌려다녔던 충혜왕의 슬픈 운명을 보여준다.


☞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6월 14일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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