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0여건 '펑펑'‥첨단기술 연구실 안전은 '뒷걸음'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 2014.06.06 07:44

["잊지 말자 4·16" - '안전이 복지다' <2부>"안전은 시스템이다">]<8-1>위험천만 연구실

편집자주 | 세월호 참사로 대한민국이 침몰했다. '안전'에 대한 기본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탓에 여전히 '안전불감증'에 빠져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빠른 성장을 이뤘지만, '안전'에는 둔감했다. 안전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가치란 인식이 사회 구성원 사이에 확산되지 못한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일터에선 9만2000명이 재해를 당했다. 이중 2100여명이 사망했다. 희망과 꿈을 일궈야 할 일터에서 매일 250여명이 다치고 6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연간 18조원이 넘는다. 이 모든 게 '안전'이 비용에 불과하다는 국민적 인식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물질적인 것들을 뛰어넘어 문화적으로도 선진화를 이뤄야 한다. 행복한 가정과 번영하는 기업, 풍요로운 사회를 위해 '안전'이 복지체계로 정착돼야 한다. 선진 복지문화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생각하고 행동해야 만들어진다. 머니투데이는 '안전'을 비용으로만 여기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안전이 복지다'란 기획을 마련했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거대한 시스템부터 우리 생활속 작은 부문까지 들여다보고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고 해결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본다.

"유해물질을 매일 다루지만 보안경, 마스크 등의 안전장비를 매번 착용하기가 거추장스럽고, 선배들도 착용하지 않는 분위기에요"(K대 신소재학과 A 학부생)

"안전 교육 받았다고 사인은 하지만 형식적인 절차에요"(S대 식물생명과학과 B 대학원생)

"시약보관용 냉장고가 있지만 자리가 없으면 일반 냉장고를 이용하기도 해요"(S대 동물생명자원학부 생명공학 C 학부생)

지난해 5월 세종대 공대 건물에선 브롬화수소가 누출된 사고가 발생했다. 이어 두 달이 채 안 돼 자연대 건물식품공학과에선 폭발사고가 터졌다. 총 7명의 학생들이 피부괴사까지 초래할 수 있는 화상을 입었다. 뉴스를 접한 학부모들은 "그때 이공계 진학을 좀 더 신중하게 고민했어야 했다"며 "학교 보내기가 겁난다"고 토로했다.

국내 대학, 연구기관 등의 안전 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실 안전사고는 매년 약 100여건 씩 발생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140건, 2010년 129건, 2011년 157건, 2012년 108건으로, 연구실 안전이 '후진국 수준'이란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연구현장 안전교육과 관련 사전 예방·관리, 조직, 예산 등 3박자 모두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취급자 부주의로 자칫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유해화학물질 관리도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곳이 많은 것으로 미래부 조사결과 드러났다.

안전 전문가들은 정부가 R&D(연구개발) 사업 예산을 증액하는데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연구실 안전을 담보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R&D 예산은 17조1000억원인데 반해 연구실 안전 환경 구축지원 예산은 27억원에 그쳤다. 성과 추구에 안전이 뒷전으로 밀렸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어려운 유해화학물질 용어..화학사고 현장 혼선
미래부가 최근 종합대학(92곳), 전문대학(64), 정부출연연구기관(45), 기업부설연구소(10) 등 211개 기관 1042개 연구실을 대상으로 한 연구실 안전관리 현황 점검결과, 안전관리와 관련해 총 1520건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자료에 따르면 대학(원)생 및 연구원 대상 안전교육이 미흡한 연구실이 417곳으로, 안전 조직체계가 미흡한 곳도 368곳에 달했다. 또 △보험가입·건강검진·안전예산 확보 미흡 322건 △안전점검 미실시 305건 △비상연락망 구축 등 긴급대처방안 미흡 108건으로 조사됐다.

화학과 전기, 소방, 가스등 연구실 안전관리 현황 점검에서도 총 3226건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특히 231개 연구실은 화학시약에 명칭을 붙이지 않았고, 177곳은 물질별 안전보건정보(MSDS)를 비치하지 않았다. 비상세척설비를 갖추지 않은 곳도 179곳이나 됐다.

화학 사고는 그 증상이나 후유증이 중장기적으로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한 번 터지면 피해 규모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대형사고로 번질 수 있다. 하지만 유해화학물질 용어가 모호해 소방 공무원들이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연구실에서 쓰는 불산 가스는 '플루오린화수소산'으로 표기돼 있다. 이처럼 전문용어로 표기된 탓에 관련 지식이 없는 소방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혼선을 일으키기 일쑤다.


전문가들은 화학 전문지식이 없는 소방 공무원들도 연구실 화제에 즉각 대응 할 수 있는 화학물질사고 대응 매뉴얼과 동의어 사전 등의 제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임신하면 그만둬야죠"…여성 연구원이 위험하다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실험실 연구원에 대한 안전관리도 시급히 개선될 사항으로 꼽힌다. C대 원예학과 대학원생 A씨는 "실험실은 발암물질을 많이 사용해서 임신하면 일을 그만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A씨처럼 임신 전부터 연구를 계속 할지말지를 두고 고민하는 여성 연구원을 대학 연구실에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제18조 4항 및 시행규칙 제10조)에 따라 유해물질·인자를 취급하는 연구활동 종사자는 건강검진을 필히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연구재단이 지난해 실시한 '2012 연구실 안전관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반대학 44%, 전문대학 61%, 기능대학 12%가 건강검진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은 있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미래부는 뒤늦게 '제2차 연구실 안전관리 종합계획(2013~ 2017)'에 이 같은 문제를 반영키로 했다. 종합계획에 따르면 화학·생물학적 유해인자에 대한 안전관리를 통해 임신 및 모유수유 여성 연구원의 모자보건이 더욱 강화된다.

미래부 관계자는 "실험실 내 임신, 모유수유 등 자녀를 육아중인 여성연구원이 유해인자를 취급해 발생할 수 있는 본인 및 자녀의 건강(이상) 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유해인자에 따른 특수 건강검진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안전 전문가들은 연구실 안전관리 수준을 높이기 위해선 규제보단 지원책을 보다 더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안전 관련 정부 지원금 남용을 막기 위한 현물지원방식 투자가 더 효과적이란 설명이다.

이에 미래부는 지난해 대학 및 연구기관 등 56개 기관을 선정, '밀폐형 환기 시약장' 159대를 지원한 바 있다. 연구실 안전환경 개선지원 사업에 선정된 기관을 중심으로 기관별 최대 1000만원 한도내에서 필요수량을 파악해 보급했다.

미래부 관계자는 "연구실 안전관리 취약기관으로 분류된 13개 기관을 우선 선정했다"며 "그간 환경개선사업비 50%이내 매칭펀드 형태의 현금지원방식의 한계를 개선해 연구실 안전장비 품목을 선정·지원하는 현물보조방식을 통해 최대한 많은 기관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래부는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연구실 안전관리 체계를 한층 더 강화하기로 했다. 먼저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연구실 안전환경 관리를 위해 전문기관을 단계적으로 설립·운영한다. 창의·도전적 연구 증가에 따른 새로운 위험요인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사전 유해인자 위험분석·예측 정보시스템'도 마련키로 했다.

유해화학물질 등에 대한 이력관리 및 기준을 개발하고 연구원 맞춤형 건강검진 등도 실시한다. 또 연구책임자가 연구수행 과정에서 연구실 안전관리 시행을 의무화하며, 사용 화학물질명, 유해위험성, 비상조치 요령, 인체접속시 응급처치 사항 등을 종합한 유해화학물질 안전정보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밀폐형 시약장 설치 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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