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피아' 환원주의와 '레고 정부'

머니투데이 세종=박재범 기자 | 2014.05.26 07:15
지난주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는 강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34일간의 고민이 담겼다. 정부 조직의 해체, 취업제한 확대, 행정고시 단계적 폐지 등은 관료 사회를 ‘패닉’에 빠트리기 충분한 내용들이다. 화두가 된‘관피아 척결’에 대한 박 대통령의 답안지인데 여론은 일단 긍정적이다. 언론이 제기한 모든 것을 수용했으니 딴지 걸 게 별로 없다. 국적 불명의 신조어인‘관피아’라는 단어까지 박 대통령은 세 번이나 언급했다.

국민들도 대체로 비슷한 반응이다. ‘이참에 공무원의 철밥통을 깨부숴야 한다’‘공무원의 자업자득’ …. 마음 한켠에 있던 공무원에 대한 감정까지 합쳐지면서 박수를 보낸다. 예상했던 바다. 이전 칼럼에서 지적했듯 공무원은 무능했다. 사명감없는 공무원과 기자가 양아치에 불과하듯 말이다.

손질은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그 칼질이 너무 거침없다. 환부를 도려내는 수준을 넘는다. 관피아는 여러 구조적 원인중 하나가 아니라 유일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적됐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서 시작해 민관 유착으로 거슬러갔다. 모든 문제의 주범은 민관유착으로 정리됐다. 끼리끼리도 있다. 대한민국 병의 근원이다. 한달전 언급한 ‘적폐’도 같은 의미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근본적’, ‘근원적’해법을 강조하는 식으로 담화는 전개됐다.

공직사회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나치게 단순화된 진단과 논리의 비약은 왜곡을 낳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박 대통령은 일부에 국한된 비리가 아니라 공직 전반을 유착의 토대로 인식했다. 그리고 이를 관피아로 칭했다. 그 순간 ‘공직 사회 = 관피아’가 됐다.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이 섞인 집단이 아니라 나쁜 이들만 모인 그런 집단이 됐다. 한 관료는 “대통령의 담화를 보고 있는 동안 얼굴이 화끈거렸다”면서 “죄인의 심경”이라고 말했다.


관피아가 대한민국 문제의 근원이라면 여기에 올인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여러 구조적 문제 중 하나라면, 약이 너무 세다. 세월호와 행정고시 폐지의 인과를 찾기 위해선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여기에 환원주의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 환원주의는 개인을 분석 단위로 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집단, 사회 국가의 특성으로 추론한다. 변수를 지나치게 한정하거나 한가지로 환원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공직사회 개혁을 강조하는 것과 이들 전체를 범죄자로 몰아붙인 뒤 해법을 내놓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문제다.

처방에 담긴 오류 가능성도 적잖다. 조직 해체와 축소는 박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예이지만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정부의 가벼움을 대통령 스스로 인정한 예이기도 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형 사고를 수습할 때마다 정부 조직을 붙였다 뗐다 하는 나라는 선진국과 거리가 멀다. 오죽하면 빈번한 정부조직 개편을 빗대 ‘레고(LEGO) 정부’라는 비아냥까지 나왔을까.

환원주의와 레고를 연상케 하는 조직형식주의는 제법 화끈하고 그럴 듯 해 보이지만 문제를 단순화해 왜곡과 오류를 낳는다. 지금의 근원적 원인이 관피아만이 아니라면 우리는 다른 처방을 하지 못한 채 손을 놓고 있는 셈이 된다. 사실 관피아보다 더한, 무시무시한 조직들이 적잖다. 공직 개혁은 ‘one of them’은 될 수 있을지언정 ‘all’은 아니다. 관피아 척결 쏠림 현상이 너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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