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미망인, 수천만원 벌게한 '무관심 투자'

머니투데이 미래연구소 강상규 소장 | 2014.05.22 10:15

[행동재무학]<62>재미없는 주식투자가 돈을 부른다

편집자주 |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은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잘 파악하면 소위 알파(alpha)라 불리는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림=김현정 디자이너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넘었다고?"

70대 중반의 미망인 A씨는 최근 관할 세무서로부터 종합소득 확정신고 안내 통지문을 받고 깜짝 놀랐다. 통지문의 내용은 A씨의 지난해 연간 금융소득(이자 및 배당)이 2000만원을 초과해 올 5월말까지 종합소득 확정신고를 하라는 것이었다.

A씨는 무척이나 당황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한번도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넘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초과하게 되면 종합과세가 돼 소득세를 더 내고 또 건강보험료도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A씨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A씨는 특별한 소득없이 금융자산 전부를 은행에 예치하고 있는 평범한 70대 미망인이다. 주식투자를 직접 해 본 적은 평생에 한번도 없고 그저 은행 PB가 추천한 펀드나 신탁, 예금 등에 분산해서 투자하는 게 전부다.

따라서 A씨의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초과했다면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PB가 골라준 투자상품들이 너무 많은 수익을 안겨다 준 것. 은행 PB에게 확인해 보니 A씨의 추측이 맞았다. 그중에서도 ELT(특정금전신탁)가 주범(?)으로 확인됐다.

ELT(주가연계신탁, Equity Linked Trust)는 증권사와 은행, 보험사 등이 증권사에서 발행한 ELS(주가연계증권)를 편입해 만든 특정금전신탁 상품이다. A씨가 가입한 ELT는 코스피지수, 항셍지수, S&P500지수와 같은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기 때문에 특정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거에 비해 위험성이 적다.

사실 A씨는 ELT가 뭔지도 잘 모른다. 은행 PB로부터 설명을 들었지만 무슨 얘기인지 잘 이해도 안됐고 솔직히 상세한 내용까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수익률이 얼마나 높은지, 얼마나 안전한지만 체크하면 충분했다.

그런데 A씨가 지난해 높은 투자수익을 거둔 진짜 이유는 ELT 자체에 있기 보단 A씨의 독특한 투자방식에 있었다. A씨는 70대임에도 불구하고 주식투자를 회피하지 않았다. 비슷한 나이의 다른 70~80대가 위험하다며 주식시장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 때 A씨는 은행 PB의 권유를 듣고 ELT를 통해 주식시장에 간접투자했다.


그리고 다른 주식투자자와 달리 주식시장에 매일 어떤 등락이 있는지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A씨는 자신이 어떤 ELT상품을 투자하고 있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그저 한 ELT가 청산되면 투자금을 회수하고 다시 새로운 ELT에 투자한다는 정도만 확인할 뿐이었다.

주가가 급락이나 급등해도 은행 PB에게 전화를 걸어 수익률을 체크하거나 조기청산 여부를 한번도 묻지 않았다. 사실 자신이 투자한 ELT가 언제 조기청산되는지 일일이 기억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지난해 ELT에 가입한 사람들이 모두 A씨와 같지는 않았다. 은행 PB가 추천한 똑같은 ELT에 투자했더라도 A씨보다 훨씬 적은 수익을 거둔 고객들도 부지기수다. 게다가 지난해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각각 0.72%와 0.74% 오르며 사실상 제자리에 머물렀다. 그럼 A씨는 왜 똑같은 ELT에 투자해서 그토록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을까?

많은 주식투자자들은 간접투자이건 직접투자이건 매일매일 주식시장을 쳐다보고 또 해당 종목의 등락을 일일이 따진다. 매일매일의 주식시장의 등락에 초연해지려고 하지만 말이 쉽지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 투자금액이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신경이 쓰인다. ELT가 청산되기 전까지는 마음이 편하지 않고 '괜히 투자했나', '투자시기가 잘못된 거 아닌가'라며 후회도 여러번 한다. 반면 A씨는 마치 주식에 전혀 투자하지 않은 사람 같다. 한마디로 재미없게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1970년 미국인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 MIT 교수는 "올바른 주식투자는 매우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이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 시대 최고의 투자자인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이 극찬했던 밥 커비(Bob Kirby) 펀드 매니저도 "주식을 산 뒤엔 그 주식증서를 캔 속에 집어넣고 수년 동안 건드리지 않는 투자"가 올바른 주식투자의 모습이라고 제시했다. 워렌 버핏도 주식투자를 "정말 좋은 기회가 올 때까지 아무것도 안하고 마냥 기다려야 하는 (무척 재미없는) 일"이라고 묘사한다.

A씨가 ELT를 통해 주식에 투자한 방식도 새뮤얼슨이나 커비, 버핏이 말하는 재미없는 주식투자 모습과 가까왔다. 그렇기에 주식투자의 ‘주’자도 모르는 A씨가 주식시장에서 예상치 못한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주식투자가 재미없는 일이 될수록 돈이 더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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