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 "넌 천재, 난 바보"

머니투데이 미래연구소 강상규 소장 | 2014.05.11 11:00

[행동재무학]<60>호모 이코노미쿠스 vs. 호모 사피엔스?

편집자주 |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은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잘 파악하면 소위 알파(alpha)라 불리는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림=김현정 디자이너
“당신과 나의 차이는, 당신(전통 재무학)은 사람들이 당신처럼 똑똑(smart)하다고 여기지만, 난(행동재무학) 사람들이 나처럼 멍청(dumb)하다고 믿습니다.”

1990년대초에 열린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한 컨퍼런스에서 행동재무학의 거장 리차드 테일러(Richard Thaler) 교수가 전통 재무학자인 로버트 배로(Robert Barro) 교수에게 한 말이다. 아마 행동재무학과 전통 재무학의 차이를 비교하는 말 가운데 가장 유머스런 표현이 아닐까 생각된다.

전통 재무학에선 주식 투자자들은 완벽하게 이성적인 결정을 내리는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고 가정한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새로운 정보가 주어지면 기대효용이론(expected utility theory)에 따라 최적의 선택을 한다. 기대효용이론이란 인간은 불확실성하에서 기대효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이론이다.

반면 행동재무학은 주식 투자자들이 감정적이고 실수를 범하기 쉬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에 가깝다고 여긴다. 호모 사피엔스는 보다 현실적인 모습의 인간이다.

전통적인 재무학에선 호모 이코노미쿠스인 개별 투자자들이 오류(error)를 저지를 수는 있지만 이 오류들간에 서로 상관관계가 없다고 가정한다. 쉽게 말하면, 내가 한 오류를 다른 투자자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개인 투자자의 오류가 특정 주가나 증시 전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한 개인의 오류는 너무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동재무학은 주식투자자들이 서로 똑같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가령, 나에게 주가가 떨어진 종목은 너무 오래 들고 있고 주가가 오른 종목은 너무 일찍 팔아버리는 나쁜 습관이 있다면 행동재무학에선 이런 습관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서도 똑같이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행동재무학에선 이런 습관을 처분효과(disposition effect)라 부른다.

그리고 급락을 거듭하는 주가를 지켜보다 공포를 이기지 못해 내가 투매에 나선다면, 남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반대로 급등하는 종목을 보고 내가 추종 매수를 한다면 남들도 똑같이 안달하며 매수에 동참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행동재무학은 특정한 행동 편향이나 오류가 나 혼자에만 국한되지 않고 집단적으로 발생하여 결국 주가와 증시 전체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주장한다.

테일러 교수의 얘기를 빌자면, 행동재무학은 매우 겸손한 학문이다. 나 자신 스스로 바보(dumb)라고 인정하고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동재무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보가 할 수 있는 오류를 반복하지 않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가르치기 때문이다.

전통 재무학은 모든 투자자들이 똑똑하기 때문에 주식시장에서 어떠한 '꼼수'를 부려봐도 초과이익을 낼 수는 없다고 말한다. 마켓 타이밍, 종목 분석, 챠트 분석 등등이 모두 헛수고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내가 열심히 분석해서 알아낸 정보를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알아 내어 이미 주가에 반영해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 전통 재무학도 겸손한 학문이다. 왜냐하면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똑똑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 천재들만 모인 주식시장에서 나홀로 더 똑똑하여 초과이익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런데 주식시장엔 전통 재무학(모두 천재)도 아니고 행동재무학(모두 바보)도 아닌 또 다른 학파가 존재한다. 다름아니라, 나는 천재이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바보로 여기는 학파다. 매우 오만한 생각이다.

그럼 이들은 주식시장에서 이익을 보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게 많은 재무학 연구의 결과이다. 지금이라도 나 스스로 내가 누군인지 물어보자. 호모 이코노미쿠스, 호모 사피엔스, 아니면 나만 천재?

겸손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호모 사피엔스든 호모 이코노미쿠스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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