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건강은 국가 책임" 영국 무상의료, 개혁 수술대로

머니투데이 런던(영국)=나윤정 기자 | 2014.05.02 06:41

[의료개혁 모델 영국 NHS 현장을 가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무상의료' 영국왕실보다 높은 인기
정부, 금융위기 후 재정부담에 NHS 조직 간소화 등 추진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NHS 테마공연. 영국인들은 비틀스, 셰익스피어, 해리포터, 제임스본드 등 영국의 문화·예술적 자부심을 드러내는 요소들과 함께 NHS를 전세계에 자랑할 '영국의 자부심'으로 선택했다./사진=유로스포츠 방송 캡처
무상의료.' 건강보험료가 과도하다고 느끼는 월급생활자나 상당한 치료비를 내는 환자들에게는 귀가 솔깃할 얘기다. 국고 부담과 서비스 저하 등을 둘러싼 논란에도 영국은 60년 넘게 무상의료시스템인 '국민건강보험'(National Health Service·NHS)을 운영해왔다. 이는 질병 앞에선 빈부격차가 없도록 하는 사회안전망이어서 영국 왕실보다 인기가 높다는 반응도 적잖다.

하지만 이들 도입하려면 추가 증세, 공공병원의 운영효율성 제고 등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영국에서조차 개혁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다.

2007년 영국으로 이주한 최석훈씨(39)는 3년 전 일을 떠올리면 영국 정부가 여전히 고맙다고 했다.

"평소 병치레 없이 건강하던 어머니가 저녁식사를 준비하다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쓰러지셨죠. 곧바로 가까운 의원에 갔으나 통증이 가시지 않아 이튿날 큰 병원으로 옮겼고 정밀검사 끝에 위암진단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초기단계라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고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최씨는 어머니가 진단부터 수술을 받을 때까지 한 푼도 부담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다. 퇴원을 했는데도 처음 한 달은 간호사가 매일 집으로 찾아왔고, 주치의는 사흘에 한 번 들러 어머니의 치료경과를 챙겼다. 관할구청은 보조금까지 지급했다.

"당시 '한국에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병에 걸려도 돈이 없다면 치료를 받을 수 없지 않나요? 영국 정부는 어느 경우든 무상으로 치료를 도와줍니다. 그래서 내가 늙고 아파도 국가가 책임져줄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한 것같습니다. "

가입자 보험료가 아니라 전액 세금으로 운영되는 NHS는 영국 국민은 물론 6개월 이상 체류자격을 가진 외국인, 심지어 잠시 머물다 가는 관광객에게도 문이 열려있다. 그 밑바탕에는 피부색깔이나 빈부, 국적 등을 떠나 합법적으로 영국 땅에 거주하는 이들의 질병은 무상으로 구제한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영국 무상의료시스템인 NHS 안내 페이지.
NHS는 '지급능력이 아니라 필요가 있을 때 모두 이용 가능한, 이용시점에서의 무상의료'를 원칙으로 1948년 7월 도입됐다. 잉글랜드 지역 고용인원만 170만명, 지난해 예산이 1089억파운드(약 186조원)에 달한 세계 최대규모의 공공기관이다. BBC방송에 따르면 산하 10만여개 병원에서 무상으로 진료받는 환자가 하루 50만명 정도다.

짐 폴스 NHS 보건정책전략국 부국장은 지난달 8일 한국여기자협회 '이슈포럼' 참석자들에게 "NHS는 원칙적으로 치료비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임상적 필요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영국에 살고 있는 이들은 누구든 개인의 능력과 관계없이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 NHS의 기본정신"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무상의료에 따른 서비스품질 저하 우려도 종종 제기된다. 지난해 NHS 산하 스탠퍼드병원이 의료진의 직무유기 등으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최대 1200명의 환자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감사보고서가 나오면서 의료품질 조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NHS는 이용자들의 신뢰가 확고하다는 입장이다. 2011년 BBC 설문조사에서 10명 가운데 7명(69%)이 영국의 자랑스러운 대상으로 NHS를 꼽았다. 1위가 셰익스피어(75%)였고 NHS는 영국 왕실(68%)이나 비틀스(51%)보다 높은 지지율로 6위에 올랐다.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2년째 영국에 살고 있는 윤형원씨(39)는 "한국 의료보험과 NHS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NHS를 고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환자를 대하는 의료진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한밤중에 열이 나는 아이를 들쳐업고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죠. 주치의는 진찰을 한 후 상당시간을 할애해 갑자기 열이 난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열이 갑자기 올랐을 때 집에서 간단히 처치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었는데 처방 대신 괜찮을 거라며 돌려보냈습니다. 이튿날 아이는 열을 이겨냈습니다. 약이나 주사보다 더 훌륭한 처방이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고 있죠."

윤씨는 "한국에 있었다면 응급실에 들어가 아픈 아이를 달래가며 이런저런 검사를 받은 후 결국 주사를 맞고 처방전만 받아 퇴원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NHS는 특정질환을 진단받으면 전국 어디서나 균일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당뇨진단을 받으면 도시 병원이든 농촌 병원이든 치료절차가 같다. 특정질환의 치료·간호·사후관리 절차를 정한 국가 가이드라인이 산하 모든 의료기관에 전달되는 시스템이 구축된 때문이다.

암과 같은 중증질환의 경우 환자는 물론 환자가족이 겪는 신체적·정신적 고통에 대한 완화치료도 제공된다. 폴스 부국장은 "100병상 이상 규모의 병원은 대부분 (통증 등) 완화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며 "가족 가운데 누가 큰 병을 앓아도 경제적으로 가정이 파탄나는 경우는 없다"고 강조했다.

진료를 받기까지 대기시간이 길다는 것 등은 단점으로 꼽힌다. 2012년 기준으로 입원까지 평균 대기시간은 5.7주다. 이와 관련, 현지 교민들은 작은 병을 키울 수 있어 개선할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도 NHS와 같은 무상의료체계를 갖출 수 있을까. 김 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우리 현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의료체계가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근간으로 짜여 있으나 전국 의료기관 병상 수의 90% 가까이는 민간 의료시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의 경우 일반재정이 의료비를 부담하고 병상의 95%는 국가가 보유한다.

김 교수는 다만 "개원의들이 NHS와 계약해 환자를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주치의제도는 1차 진료뿐 아니라 만성질환, 노인환자 진료를 위해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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