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부석처럼 기다리던 아내 "아이야, 아빠가 왔어…"

머니투데이 진도(전남)=박상빈 기자 | 2014.04.24 17:37

[세월호 침몰 9일째]실종자 부인 A씨의 말라버린 눈물

전남 진도해상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엿새가 지난 21일 진도군 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무사한 모습으로 아이들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2014.4.21//사진=뉴스1
기다리다가 지쳤다. 남편이 여객선 세월호와 함께 바다에 묻힌 지 9일째,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아내 A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사고 이후 일상은 우는 게 전부였다. 눈물도 이제 다 말라버렸다. 기다리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몸을 가누기 벅찰 만큼 지쳤다. 앉아 있는 것도, 누워 있는 것도, 잠시 밖을 걷는 것도 힘들었다. 잠시 가족과 이야기를 할 때도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했다. 잠시 눈을 붙이는 것 이상의 잠은 A씨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지난 23일 밤 10시30분쯤. A씨의 눈은 체육관 앞쪽 대형 스크린으로 향했다. 한 보도채널의 뉴스가 흘렀다. 지난 8일째 보던 것과 다를 게 없다. 이틀 전보다 실종자 가족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부분이다.

정적을 지키던 실내의 공기는 새로 인양된 희생자 정보가 공지될 때 잠시 동요했다. 가족들은 저마다 공지되는 희생자 정보를 꼼꼼히 읽었다. '165cm 보통 체형, 눈썹 짙은 편…" A씨도 잠시 집중했지만 남편의 차례는 아직 아니었다.

밤 11시45분 A씨의 옆을 지키던 아들은 잠 들었다. 엄마는 아들을 잠시 바라봤다. 이내 쓰레기봉투를 비우러 자리를 일어섰다. 걸음은 털레털레 힘이 없었다. 자정이 넘어 잠을 청했다. 졸았다 깼다를 반복했다.

24일 오전 8시쯤. A씨는 또 다시 눈을 떴다. 햇살이 체육관 창문으로 들어왔다. 오늘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억지로 다시 잠을 청했지만 채 30분을 이어 잘 수 없었다. 몸을 일으켰다.

가족들과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눴다. 잠시 웃음도 나왔다. A씨는 늦잠을 자는 아들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오전 10시쯤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갔다. 복도에 마련된 희생자 게시판에 눈길이 갔다. "또 한 명 늘었네."


오전 11시쯤. 9일을 함께 지낸 옆 가족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A씨는 흐느끼고 있는 할머니에게 "왜 우세요"라고 물었다. "불쌍해 죽겠어"라고 답했다. 내성이 생긴걸까. 울음은 전염되지 못했다.

낮 12시가 넘었다. A씨 가족은 식사를 하지 않았다. A씨는 복도에서 잠시 쪽잠을 잤다. 20여분 후 자리로 돌아온 A씨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A씨는 '○○○번째 수습된 희생자'라는 스크린 화면을 숨죽여 바라봤다.

오후 1시40분쯤. 한 뉴스에서 세월호 선원의 음성이 나왔다. 수많은 승객을 남겨 놓고 도망간 그는 "죄송하다"고 말했다. "아, 저 XXX들" 욕이 나왔다. 가족들은 A씨를 부축했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밖을 향했다.

A씨는 30여분 후 자리로 돌아왔다. "○○야" 잠자던 아들을 나즈막히 불렀다. "일어나, 아빠 나왔어." 시간이 멈췄다. 가족들은 일제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A씨와 가족은 자리를 치웠다. 들고 왔던 이불을 접었고, 놓고 갈 쓰레기를 봉투에 넣었다. 체육관에서 A씨와 가족들의 흔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난 16일 사고가 있기 전 모습으로.

체육관을 나선 A씨 가족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햇빛이 내려쬈다. 앞으로 펼쳐질 운명을 예상하는 듯 발걸음은 무거웠다. 체육관에 남겨진 가족들은 A씨의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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