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사찰

로피시엘옴므 김미한 기자 | 2014.04.24 15:55

사찰을 공간으로 바라보니 풍경 소리가 기둥이 되어 서 있었다.

봉정사 만세루.

봉정사 만세루
건축이나 불교는 잘 몰라도 사찰 주변 풍광을 접하면 누구나 가슴이 트이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불교 건축에서 만세루는 사찰로 들어가는 중간 문이자 통로의 역할을 하는 곳. 1층 통로 위쪽
널찍한 마루는 대부분 벽이 없거나 창문이 완전히 열리도록 되어 있고 종과 큰 북을 놓아두기도 한다. 사철 변화하는 ‘사찰경’을 바로 눈앞에서 바라볼 수 있는 관람석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경북 안동 봉정사의 만세루는 조망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투박한 돌계단을 올라 뒤돌아서면 여섯개 기둥 사이로 다섯 편의 파노라마가 극적으로 펼쳐진다.

(위부터 시계 방향)금산사 미륵전, 화암사 우화루, 선운사 만세루.

금산사 미륵전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모티브―수평과 넓은 공간, 그리고 건물 모서리끼리 부딪히지 않는 시선배치―를 모두 갖고 있는 전북 김제 금산사. 사찰 입구 계단 아래에 서면 맞은편 대적광전이 마치 거대한 검은 액자에 담긴 아름다운 건축 사진처럼 보인다. 그 오른쪽에 기와와 기둥으로 탑을 쌓은 듯 하늘로 얼굴을 들고 선 미륵전이 있다. 한국 유일의 목조 3층 건물인 미륵전은 마치 탑처럼 위로 올라갈수록 넓이와 높이가 줄어든다. 내부는 뚫려 있으며 몇 개의 기둥 사이에 14m 길이의 좁고 높은 고주를 세워 균형을 잡았다.

화암사 우화루
전북 완주군 불명산 낭떠러지 옆으로 굽이굽이 올라가면 따뜻한 햇살 아래 새 둥지처럼 들어앉은 화암사가 나타난다. 거친 바위 위에 서 있는 우화루는 1604년에 재건했는데, 한국에 남은 유일한 하앙계 구조 건물이다. 하앙계 구조란 지붕 아래 바로 서까래를 세워 받치는 것이 아니라 처마 끝으로 내려오는 경사진 재료를 놓고 그 위에 서까래들을 올려 지붕 처마를 깊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백제 시대에 강수량이 많은 평야 지대에서 비나 눈의 피해를 덜기 위해 적절한 구조였다.

선운사 만세루
매해 봄이면 전북 고창 선운사의 동백꽃 개화소식이 뉴스에서 빠지지 않는다. 이곳에서 활짝 피는 동백꽃으로 봄의 시작을 가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축학적으로 더욱 중요한 존재가 있다. 책을 펼쳐 놓은 듯 삼각꼴을 이루는 맞배지붕 양식이 바로 그것이다. 보통 입구를 중심으로 건물들이 일직선을 이루는 다른 사찰들과 달리, 선운사는 대웅지전과 만세루가 한쪽에 치우쳐 있다. 특히 만세루는 반복적인 삼각형 지붕의 경쾌함과 다듬지 않은 자연목의 아름다운 곡선으로 유명하다.

(위부터 시계 방향)부석사 무량수전, 내소사 요사, 대곡사 일주문.

부석사 무량수전

학창 시절, 배가 봉긋한 배흘림기둥에 대해 배울 때 항상 두 단어가 따라붙었다. 경북 영주 부석사와 무량수전. 10여 개의 석단을 지나 부석사 경내로 들어서면 건물들이 양쪽으로 첩첩이 쌓아 올리듯 배치된 모양새에 놀라고, 안양루까지 이르면 이러한 건물 배치가 산중턱에 자리 잡은 것 때문은 아님을 알게 된다. 노란 무량수전 앞에 서면 통일신라의 바람을 담은 새가 날아오르는 듯하고, 불교의 화엄 사상을 뜻하는 ‘화(華)’ 자 형상도 볼 수 있다.

내소사 요사
변산반도 전북 부안 석포리 전나무 숲을 따라 1km 남짓 걸으면 널찍한 평지에 크고 작은 건물이 조화를 이룬 내소사가 나온다. 이곳에서 수평에서 수직으로, 건물에서 뒷산으로 이어지는 선을 바라보노라면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느껴진다. 뾰족한 바위투성이 능가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지붕들의 각기 다른 높이에서도 뜻하지 않은 재미를 만난다. 특히 반듯한 박공면과 삼각뿔을 드러낸 요사가 눈길을 끈다. 대웅보전의 애교 넘치는 문살과 내부 장식은 요즘의 인테리어와 비교해도 호화롭기 그지없다.

대곡사 일주문
경북 의성 대곡사는 언뜻 평범해 보인다. 출입문 격인 일주문을 지나 우뚝 선 석장승과 범종루, 살아 있는 사람이 머무는 요사(스님의 기거지)와 죽은 영혼을 기리는 명부전, 정면의 대웅전에 이르기까지 여느 사찰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일주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고려와 조선 중기 건축의 완벽한 구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동쪽을 향한 일주문은 자연석으로 기단을 세웠는데,넘치지 않게 제 역할을 다한다.




글 김미한 기자 (로피시엘 옴므 코리아)
사진 LEE YONG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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