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주민만 아는 작은 항구에서 온 국민의 슬픔을 응축한 공간이 돼 버린 전남 진도 팽목항은 24일, 여객선 '세월호' 침몰 아흐레째를 맞았다.
물살이 가장 느려진다는 '소조기'도 이날이 마지막이다. 얼마 후면 다시 거칠어질 바다 속에는 아직도 130여명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내일이면 10일. 두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날은 여기까지다.
"하나라도 살아오는 걸 봤으면 좋겠어요."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원망도 접어두고 마음을 다잡았던 가족들은 시신이 170여구나 인양될 동안 한 명도 살아오지 못했다는 잔인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군용천막으로 마련된 대기실에서 생사여부조차 알 수 없는 피붙이를 떠올리며 제대로 눕지도, 앉지도, 먹지도 못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신원미상입니다. 사망자 특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성, 키 160cm, 긴 생머리, 흰색 티셔츠, 붉은 남방, 운동복 반바지, 하얀 양말…"
이번에도 가족을 찾지 못한 가족들은 조용히 인파에서 빠져 나왔다. '시신으로라도 가족 품에 안겼으면…. 아니야, 살아 있을거야.' 가족들은 자신도 모르게 하루하루 내려놓는 희망과 더해지는 죄책감에 치를 떤다.
"어제부터 시신이 부패하기 시작했대요. 냄새가 나기도 한다는데. 어떡해요. 어떡해." 한 여성은 시신을 확인하고 돌아온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며 가슴이 또 한 번 철렁 내려앉았다.
전날부터 팽목항엔 컨테이너 박스로 된 임시안치실이 마련됐다. 선체 3~4층 객실을 집중 수색중인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희생자들을 뭍으로 옮겨와 신원확인소를 거쳐 이곳에 먼저 모신다.
임시안치실에 있던 시신 중 일부는 신원확인이 늦어져 가족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인근 병원으로 떠났다. 가족 대표단은 어린 학생 시신을 홀로 병원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어 "DNA를 미리미리 채취해 달라"고 가족들에 몇 번이고 당부했다.
어렵게 수습돼 인양된 시신이 신원확인 과정에서 뒤바뀌는 일도 벌써 세 번째. 울다 지쳐 목이 쉰 실종자 가족들이 신원확인소 앞에서 당국자를 규탄하고 나섰다.
"외관상 가족을 확인할 수 있는 명백한 특징이 있는데도 DNA 확인이 안됐다는 이유로 시신을 옮기지 못하게 하는 게 말이 되느냐." 한 실종 가족 지인이 가슴을 치며 성토했다. "담당자에게 7번이나 항의했는데도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한 실종자의 이모는 울먹이며 외쳤다. "내 조카가 어깨부터 발꿈치까지 30cm 정도 수술 자국이 있다. 이것만 확인해도 우리 조카가 맞는데 왜 못 데려가게 하느냐." 당국은 또 다시 시신이 바뀌는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아이들 먼저 구하라.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아이들이 먼저다'라는 메시지가 적힌 종이도 나붙었다. 책임을 묻고 따지기 전에, 아이들을 먼저 생각해달라는 가족들의 절절한 외침이다.
"오늘이 소조기 마지막이라는데, 미치겠다" 한 여성이 외마디 탄식을 내뱉으며 가족 대기실로 모습을 감췄다.
실종 가족들은 어느새 입고 있는 옷이 서로 비슷해졌다. 회색 트레이닝복, 슬리퍼, 초록색 바람막이, 파란조끼, 아이의 사진이 들어간 엄마들의 목걸이. 피붙이를 잃은 가족을 구분하는 '슬픈 표식'이 됐다.
"사랑하는 아들아, 빨리 돌아와." 부둣가엔 4~5명의 가족이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몇 시간째 미동도 않고 있었다. 멀리 앞에 보이는 작은 섬 너머가 사고 현장. 이들은 전날 밤 칠흑 같은 바다 위로 노란 조명탄이 쏘아져 올라오는 것도 똑같이 그렇게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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