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배에는 함장인 시드니 세튼(Sydney Seton) 대령 휘하의 젊은 장교와 신병 등 약 500명과 그들의 가족인 아이와 부녀자 등 약 130명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구명정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최대 180명 뿐이었다.
세튼 함장은 즉시 병사들을 갑판 위로 집결시켜 사열했다. 그리고 배 양쪽 구명정을 풀어 부녀자들을 하선시켰다. 구명정들이 배를 완전히 떠날 때까지 장교와 병사들은 부동자세를 유지했다.
구명정이 충분히 멀어지자 세튼 함장은 명령을 내렸다. "물에 뜰 만한 모든 물건을 바다에 집어던져라". 그리곤 최후의 명령이 이어졌다. "전원 바다에 뛰어들어라". 세튼 함장은 배에 남은 사람이 한명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마지막으로 배를 떠났다. 구명정에 탄 아이와 부녀자들은 그들의 아버지와 남편들이 물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보며 오열했다.
이후 구조선이 도착했지만 이미 436명이 희생된 뒤였다. 당시 생존자 가운데 한명인 91연대 소속 존 우라이트 대위는 이후 이렇게 회고했다. "모두가 명령대로 움직였고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 명령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마치 승선 명령처럼 철저히 준수했다"
영국 해군의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 가운데 하나로 남아있는 '버큰헤이드호 사건'을 당시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지금도 영국 해군 뿐 아니라 전세계의 많은 뱃사람들은 항해 중 위협이 닥칠 때마다 "버큰헤이드호를 기억하라!"(Remember the Birkenhead!)라고 서로 속삭인다. 마지막 순간까지 '명예'와 '의무'를 지키자는 다짐이다.
물론 '버큰헤이드호 사건'에 대해 엇갈린 주장도 있다. 당시 생존자 190여명 가운데 아이와 부녀자가 약 20명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증언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생존자들이 전한 세튼 함장의 마지막 모습이다. 최후에 배를 떠난 세튼 함장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판자 하나를 발견하고 매달렸다. 체온만 지킨다면 구조선이 올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세튼 함장은 그때 두명의 젊은 선실 웨이터가 물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작은 판자 하나에 3명이 매달릴 수 없다고 판단한 세튼 함장은 그들에게 판자를 밀어주고 자신은 스스로 물 속으로 빠져들었고, 끝내 배와 운명을 함께 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선장'에게 기대하는 모습이다. 300여명의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400여명의 승객을 내팽겨 친 채 혼자 살겠다고 가장 먼저 구조선에 올라타는 모습이 아니라···. 굳이 '선원법'상 선장의 '재선'(在船) 의무나 인명 구조의 의무 등을 들먹일 필요까지도 없다.
'세월호' 선장 이준석, 그리고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승객들을 불 속에 버린 채 전동차 전원을 통제하는 열쇠를 챙겨 혼자 빠져나간 기관사. 이들은 과연 우리나라의 '국격'이나 '민도'가 이런 수준이라고 말해주는 것일까? 누가 제발 아니라고 말해주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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