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저녁 9시 승객 476명을 태우고 인천항을 떠나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12시간 정도 항해했을 무렵 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수도'에 들어섰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물살이 빠른 이곳에서 조타 지휘를 맡은 것은 운항경력이 13개월에 불과한 3등 항해사 박모씨(25·여).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는 항로 중 방향을 변경하는 '변침점'인 이곳에서 박씨는 조타수 조모씨(56)에게 방향지시를 명령했다.
박씨가 맹골수로에서 조타 지휘를 맡은 것은 짧은 항해사 경력에서도 처음이었다. 그것도 전날 출발할 때 안개가 짙에 껴 출발이 2시간 30분가량 지연되면서 맡게 된 구간이었다.
맹골수로를 지날 때 반드시 고등 항해사가 지휘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좁은 수로를 지나거나 선박에 위험이 생길 우려가 있는 곳을 지날 때는 선장이 직접 선박의 조종을 지휘해야 한다. 그러나 선장 이준석씨(69)는 이때 침실에 있었다.
조씨는 항해사의 지휘에 따라 조타륜을 돌렸다. 조타륜이 유난히 빨리 돌며 거센 물살의 저항을 받았다. 배가 휘청거리면서 급격히 기울었다.
오전 8시58분 신고를 받은 목포해양경찰청은 승객들을 탈출시키라는 긴급구난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이씨는 "선내 방송시스템이 고장 나 방송을 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선장이 고장 났다고 해경에 응답한 지 7분 뒤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말라"는 선내방송이 나왔다. 오전 9시28분 "선실이 더 안전하다"는 방송이 다시 한번 나왔다.
선체가 기울어 똑바로 앉아있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한 450여명의 승객들은 방송만 믿고 자리를 지키며 침착하게 기다렸다.
승객들이 방송을 믿고 선원들의 다음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재난현장을 총지휘해야 할 선장은 반바지 차림으로 가장 먼저 배를 탈출했다.
비상시 현장지휘를 해야 할 1등 항해사, 구명정을 작동시켜야 할 2등 항해사도 제 역할은 나 몰라라 한 채 침몰하는 배를 빠져나갔다. 배의 구조를 잘 아는 선박직 직원 15명은 모두 탈출에 성공했다.
물이 차오르자 더 기다리지 못한 승객들은 스스로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승객의 서비스를 돕는 승무원들이 이들의 탈출을 도왔다. 하지만 이미 상당한 시간을 허비한 탓에 구조된 인원은 전체 탑승객 476명 가운데 174명에 불과했다.
사고 이후 검·경합동수사본부 조사에서도 생존 선원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선장 이씨는 사고 당시 "선내 방송시스템이 고장났다"라고 말해놓고 합수본조사에서는 "탈출명령을 내렸다"고 발뺌했다.
3등 항해사 박씨와 조타수 조씨는 조사과정에서 서로 엇갈리는 진술을 하는 등 책임공방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합수부는 19일 새벽 업무상 과실치사죄 등의 혐의로 선장 이씨와 3등 항해사 박씨, 조타수 조씨를 구속했다.
합수본은 특히 선장 이씨가 선박 침몰 직후 승객들을 뒤로 하고 가장 먼저 탈출한 점을 고려해 최고 무기징역까지 구형할 수 있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혐의를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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