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녹턴 7번: 절망적인 사랑

딱TV 김민영 한국무역협회 전문위원 | 2014.04.19 08:08

[딱TV]쇼팽의 '녹턴' - Nocturne No.7 in C#-minor, Op.27 no.1

편집자주 | 김민영의 딱클래식 - 피아노 치는 글로벌 마케팅 전문가, 한국무역협회 전문위원 김민영이 딱 찍어 초대하는 클래식 음악

음악이란 무엇일까? 곡은 작곡가의 성품이고 마음이다. 연주는 연주자의 성품과 마음에 더하여 연주 당시의 컨디션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쇼팽의 녹턴 7번 올림 다단조 작품번호 27의 1번을 듣고 있노라면 이상과 같은 필자의 생각을 재확인하는 즐거움을 맛본다.

뉴욕 이브닝 포스트(New York Evening Post)의 음악 편집장으로, 또 네이션(The Nation)의 편집 스텝으로 유명한 하버드대 출신의 비평가 헨리 핀크(Henry Theophilus Finck, 1854~1926)가 1889년 출간한 그의 저서 ‘쇼팽과 음악 에세이’ (Chopin and Other Musical Essays)는 출간 된 지 125년이 된 고서다. 그러나 오늘날 전자도서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크다. 핀크가 이 책의 47쪽에서 쇼팽의 녹턴 7번에 대해 언급한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드라마가 때로 선동적이고 역동적이듯 어떤 녹턴은 격정적이고 비극적인 에피소드의 작은 드라마의 완본과 같다. 4쪽 분량의 쇼팽 녹턴 7번 C# minor에는 인기 있는 오페라 400쪽 분량에 담겨있는 것보다 더 순수하고 드라마틱한 영혼이 담겨있다.”

그가 이렇게 묘사한 배경은 녹턴 연주에 대한 생각에 있다. 계속해서 같은 페이지에 나오는 그의 생각을 옮겨본다.

“녹턴은 쇼팽이 가진 천재성의 꿈 같은 면을 대변한다. (중략)…쇼팽의 녹턴은(중략)… 멜로디가 떠다니는 듯 방해받지 않고 흐르는 물과 같이 연주되어야 (중략)… 대개의 피아니스트는 너무 빠르게 연주한다. 모차르트와 슈만은 자신의 느린 곡들을 연주자들이 감정에 도취한 나머지 빠르게 연주할 때 연주자에게 항의했는데, 쇼팽은 그와 같은 연주자들의 치명적인 연주 습관에 누구보다 더 많이 시달린다.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이나 베버의 ‘오베론’ (Oberon) 서곡은 우리가 꿈나라를 잠깐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반면, 쇼팽의 녹턴은 아편쟁이의 환각보다 더 달콤한 맛의 강으로 우리의 온몸을 내던지게 한다. 그래서 쇼팽의 녹턴은 아주 가느다란 이음 하나라도 전체를 망칠 수 있기 때문에 몽롱하고 고독한 느낌으로 연주되어야 한다.”

핀크의 평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특히 연주 속도에 대한 의견에는 토를 달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강약이다. 그런데도 쇼팽의 녹턴에 담겨있는 드라마에 취하다 보면 연주자는 자신도 모르게 흥분하여 손가락이 빨라지기 일쑤다.

음악은 테크닉이 아니라 성품과 마음이다. 지휘자가 된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한나가 하버드 대학 철학과를 선택한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극히 당연한 일이다. 베토벤이 평소 괴테의 문학을 좋아했고 본 대학에서 철학과 독일 문학을 청강했다. 음악은 성품과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제 쇼팽 녹턴 7번을 들어보자. 이 곡은 A-B-A-마무리(coda)로 구성되어 있다. 곡의 시작부터 오른손은 장조와 단조를 번갈아 짚고 왼손은 조용하지만 실은 계속되는 아르페지오로 분주하다.
이 곡은 올림 다단조(C# minor)로 명기되어 있지만 단조와 장조를 오가기 때문에 정확히 무슨 키인지 혼란스럽다. 그래서 야누스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단조의 그늘과 장조의 양지가 묘한 하모니를 이루는 동시에 하나의 선율을 만들어내는 매력은 가히 천재적이다.


출처 : 직접 촬영

비극적이고 때로 절망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 곡은 ‘한층 더 빠르게’(Piu moss)라고 명시된 29번째 마디에 들어서면서 용암이 분출하는 듯 격렬해진다.


출처 : 직접 촬영, 마디 29~36


‘열정적으로’(appassionato)라고 명시된 부분(45번째 마디에서 52번째 마디)과 ‘활발하게/씩씩하게’(con anima)라고 명시된 부분(65번째 마디에서 80번째 마디)에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의 느낌이 살짝 겹쳐지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우울함이 지배하고 있는 여타 녹턴보다 잠시지만 어쩐지 피아노 협주곡 1번의 긍정의 힘이 느껴진다.


출처 : 직접 촬영, 마디 45~52


출처 : 직접 촬영, 마디 65~76



짧지만 그런 긍정의 힘이 느껴지는 것은 쇼팽이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작곡할 당시에 첫사랑 콘스탄체 글라드코프스카가 있었다면, 녹턴 7번을 작곡할 당시에는 마리아 보진스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은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는 긍정의 힘이 있지 않은가! 곡의 느낌을 좌우하는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성품과 마음이 아니던가! 특히 49번째 마디에 쇼팽은 포르테 포르테시모(fff)를 쓰고 있는데 쇼팽의 녹턴 가운데 포르테 포르테시모(fff)가 등장하는 곡이 또 있던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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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의 세기는 포르테(f, 강하게), 메조포르테(mf, mezzo-forte, 조금 강하게), 포르테시모(ff, fortissimo, 매우 강하게), 포르테 포르테시모(fff, forte fortissimo, 최대한 강하게)의 순으로 점점 강해진다. 그 이상은 악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포르테 네 개(ffff)가 등장하는 곡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말러, 쇼스타코비치, 라흐마니노프, 차이콥스키와 같은 작곡가들의 곡에서 찾아볼 수는 있다. 특히 차이콥스키는 ‘서곡 1812’에서 포르테 네 개(ffff)를 사용한 반면에, 비창 교향곡에서는 피아노(p, 약하게)를 무려 여섯 개(pppppp)까지 사용하기도 하였다. 차이콥스키와 슬라브 음악의 드라마틱한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역시 음악은 성품이고 마음이다.

전체 101개 마디 중 93번째 마디에 이르러서 쇼팽은 ‘슬프게’ (con duolo), ‘점점 약하게’ (calando)라고 명시하고 있다. 마리아 보진스카와의 사랑이 슬픔으로 끝날 것을 예감한 것은 아닐까?


출처 : 직접 촬영, 마디 93~94


쇼팽의 청혼 후의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1편에서 얘기했듯이 쇼팽의 청혼을 마리아는 승낙했지만, 마리아의 부모는 고민에 빠졌다. 마리아는 17세로 너무 어렸고 쇼팽의 건강은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고향 바르샤바에는 쇼팽이 건강 악화로 죽었다는 헛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쇼팽과 마리아는 결혼을 약속했지만, 혼례는 연기됐고 약혼 사실도 비밀에 부쳐졌다. 결국, 쇼팽의 건강 문제와 더불어 그의 불규칙한 생활습관을 탐탁지 않게 여긴 보진스카 백작부인은 쇼팽에게 딸을 주지 않기로 한다.

실연의 아픔은 컸다. 쇼팽은 보진스카 가족으로부터 받은 그간의 편지들을 한 묶음으로 묶어 겉봉에 폴란드어로 ‘Moja Bieda’라고 적었다. 폴란드어로 ‘Moja’는 ‘나의’라는 뜻이며 ‘Bieda’는 가난, 빈곤, 어려움, 걱정이라는 뜻이다. 의역하자면 ‘나의 비애’ 정도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혹자는 ‘나의 고통’으로 해석하고, 영어로는 ‘나의 슬픔(my sorrow)’으로 해석한 문건이 많이 보인다.


녹턴 7번의 마무리 부분에서 레이스를 뜨개질하는 듯한 쇼팽 특유의 섬세한 감성이 느껴진다. 동시에 ‘나의 비애’라는 적은 마리아 보진스카의 편지 묶음이 떠오른다. 쇼팽 녹턴 7번이 단조의 그늘과 장조의 양지를 교차하는 것은 당시 극히 병약한 상태에 있던 쇼팽의 건강 상태와 마리아 보진스카에 대한 사랑이 마주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절망적인 사랑! 누구보다 곡의 정통한 해석을 보여주는 호로비츠의 연주를 들어보자.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의 연주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4월 19일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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