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취소되면 어떡하지.' 3박4일 일정으로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이모양(17)은 짙게 낀 안개에 수학여행이 취소될까봐 불안했다. 선생님 15명, 10개 학급 325명 친구들이 모두 세월호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렸다.
이양은 여객선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안개가 걷혔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2시간 30분이나 기다렸지만 출발할 수 있다는 말에 즐거운 수학여행이 될 거라고 친구들과 웃었다.
세월호는 전장 146m, 선폭 22m, 총 중량 6825톤, 정원 921명의 대형 여객선이었다. 레스토랑, 샤워시설에 고급 편의시설까지 갖춘 국내 최대 크루즈 선박을 타고 수학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이 마냥 즐거웠다.
#16일 오전 8시50분쯤 전남 진도군 바다.
친구들과 배 위에서 신나는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에도 일찍 눈이 떠졌다. 1~4층 규모의 세월호에서 4층에 있는 8인 객실이나 3층 단체 객실을 이용한 학생들은 바다 위에서 아침을 맞았다.
몇몇 친구들은 방 안에, 다른 친구들은 배 밖에 나가 씻고 움직이는 사이, 갑자기 배가 기우뚱했다.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높은 파도에 오른 것이라고 여겨 금방 진전될 것으로 생각했다.
선내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이 나왔다. 하지만 '침몰' 이야기는 없었다. 4층에 있던 전모양(17)은 안전봉만 잠시 잡으면 배가 다시 돌아올 것으로 믿었다.
같은 시간. 여객선 조리실에서 조리원으로 일하는 김모씨(50·여)도 잠시 풍랑을 맞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번 더 배가 기울더니 조리실 기구들이 모두 떨어져 굉음을 냈다. 갑판 위를 지켜보던 김씨는 바닷물이 오르는 모습을 보고 필사적으로 탈출했다.
#오전 10시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
사고 소식을 언론보도 등을 통해 전해 들은 학부모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학교 임시 비상상황실에 모였다. 처음엔 학생들이 안전하게 전원 구조됐다는 소식이 들려와 침착한 분위기로 상황을 지켜봤다.
휴대전화로 자녀와 연락이 닿은 몇몇 학부모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자녀와 통화하지 못한 부모들도 곧 구조될 것으로 생각했다. 걱정은 들었지만 큰 사고는 아닐거라고 믿었다.
같은 시간 친구들과 해양경찰의 헬기를 타고 구출된 이모양은 하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하룻밤을 묵은 세월호가 바다 깊숙이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방송에서 알려주지 않은 침몰 현장을 눈으로 처음 확인했다.
#오전 11시20분쯤 전남 진도군 바다.
침몰 시작 2시간20여분만에 세월호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탈출하지 못한 승객들이 배와 함께 어두운 바다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오전 11시40분
사고 발생 후 최초로 사망 사실이 알려졌다. 여객선 직원인 박지원씨(27·여)가 병원에서 숨졌다. 구조가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렸지만 서서히 잔인한 사고 여파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망 소식을 들은 학부모들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자녀를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 부모들은 버스에 올라 진도로 출발했다.
#오후 1시
당초 학생 피해가 없었다고 알려졌지만 안산 단원고 학생 중 1명의 사망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정차웅군(17)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오후 2시 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4차 브리핑을 통해 구조자 수를 368명으로 발표했다. 당초 알려진 탑승객 470여명 중 상당수가 구조됐다는 소식에 큰 피해 속에서도 천만 다행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수색을 통해 구조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오후 3시30분 서울청사.
368명이 구조됐다는 브리핑 이후 1시간만에 해양경찰청은 구조자 집계 오류를 정부에 보고했다. 오후 3시30분쯤 이경옥 안행부 제2차관은 "구조자 숫자에 착오가 있었다"고 밝혔다. 구조자 수는 368명에서 164명으로 대폭 줄었다.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대형참사였다.
#오후 5시30분 진도실내체육관.
안산 단원고에서 출발한 학부모가 진도에 있는 체육관에 도착했다. 부모들은 놀랐을 자녀의 어깨를 다독이고 포옹했다. "아이고 우리 아들, 살아있었구나" 눈물겨운 상봉이 진행됐다.
하지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자녀가 구조되지 못한 학부모들은 절망 섞인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곳곳에서 늦은 구조에 대한 울분과 원망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현장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한 부모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자식을 떠올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진도군 바다에서는 침몰한 세월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승객 등 293명에 대한 구조 작업이 진행중이다. 오후 8시 현재 164명이 구조됐고 사망자는 당초 2명에서 4명으로 계속해서 늘고 있다.
해양경찰 등은 조명탄 등을 이용해 수색작업을 계속 진행할 예정이지만 빠른 조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