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폭언·폭력으로 대인기피증에 걸린 A씨는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왕따를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자퇴를 선택했다.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입학했지만 트라우마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A씨는 "어린 시절 일상적으로 당한 폭언과 폭력으로 학업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사회생활도 힘들다"며 "마음의 상처가 계속 떠올라 괴롭다"고 털어놨다.
◇ "훈육을 위한 체벌은 괜찮다"?···암 발생률 높여
지난 13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이찬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넘겨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공식 보고된 아동학대는 총 6796건으로 2012년에 비해 393건 늘었다.
안미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사업팀 팀장은 "아동 학대는 '훈육을 위한 체벌은 괜찮다'는 폭력에 대한 관용적인 문화 때문에 발생한다"며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가 때리는 것이 잘못됐다고 교육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 부모가 때리는 것에 대해서는 사회가 허용하는 분위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가벼운 체벌이라도 심리적·신체적 트라우마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영국 플리머스 대학교 보건심리학과의 마이클 하일랜드 교수는 2012년 '행동의학 저널'(Journal of Behavioural Medicine)에 실은 연구 논문을 통해 어릴 때 체벌 등을 경험한 아이는 성인이 됐을 때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일랜드 교수가 암·천식·심혈관 질환에 걸린 성인 환자(40~60세) 700명을 대상으로 폭력과 욕설 등 가정 내 체벌 여부를 조사한 결과, 어릴 적 가벼운 체벌이라도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암 발생률이 70% 높았다. 천식은 60%, 심장질환은 30%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일랜드 교수는 "어렸을 때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일종의 트라우마가 형성돼 성인이 됐을 때 질병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본다"며 "아이를 다룰 때 체벌은 장기적으로 아이가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아동 학대 줄이려면…'원만한 부부 관계'가 핵심
아동 학대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부 관계가 원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부 관계에 문제가 있어 자주 다툴 경우 그 자체가 사실상 정서적인 아동 학대가 될 뿐 아니라 아동이 부모의 화풀이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미영 서울가정문제상담소 소장은 "아이가 인지·정서 발달이 안 된 상태에서 부모가 싸우면 아이는 전쟁터에서 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라며 "아이들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이는 정신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최근 젊은 어머니들 사이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산후우울증도 아동 학대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지난 3월 서울에 사는 주부 정모씨(35)씨는 산후우울증 때문에 생후 5개월 된 자신의 딸 오모(1)양을 베개로 눌러 숨지게 한 바 있다.
김 소장은 "산후우울증에 걸려 아이를 키워야 할 이유를 잘 못 느끼게 되면 자칫 학대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이럴 경우 배우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남편이 육아가 힘든 일임을 인지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며 "아내에게 더 사랑을 표현하고 치켜세워줘야 아내도 아이에게 온전히 사랑을 쏟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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