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따윈 필요 없어!"…'미소녀 동물원'에 어서오세요

딱TV 윤재식 MTN PD | 2014.04.21 10:19

[딱TV]그들의 상상이 현실로…지역경제를 부흥시키는 '오타쿠 경제'

편집자주 | 윤재식의 '딱타쿠' -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다양한 서브 컬처에 대한 최신 소식과 트렌드를 빠르게 전달하고 일반인은 미처 알지 못한 사이에 우리의 삶 속에 녹아들고 있는 매니아 문화를 심층 분석해 알기 쉽게 풀어준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상속자들'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평범한 여주인공이 재벌가문 후계자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는 '신데렐라류' 작품이지요.

그 외에도 이와 비슷한 클리셰를 보여주었던 드라마는 무궁무진합니다. 드라마가 방영될 때마다 이런저런 비판이 올라옵니다만 그래도 여성 시청자들은 꼭 본방사수합니다. 멋진 훈남들의 아낌없는 애정공세에서 대리 만족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보는 것이 맞겠죠.


남자들의 꿈이었던 '하렘물'

그렇다면 남성들은 어떨까요? 남성들은 한발 더 나아가 '다다익선'을 추구합니다. 서브컬쳐계에는 이른바 '하렘물'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남자주인공의 곁에 항상 있는 소꿉친구, 이것저것 잘 챙겨주는 누나, 귀엽고 애교 많은 동생 등등. 연상, 연하, 동기, 동창 할 것 없이 등장하는 다수의 여성 캐릭터들이 주인공 하나만을 바라보게 되죠. 하렘물은 이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작품은 각각의 캐릭터 성으로 지탱되죠.





하지만 이러한 하렘물을 즐기던 남성들은 무언가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작품 속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던 남자 주인공은 '큰 키에 잘생긴 얼굴, 똑똑한 머리와 재빠른 운동신경'을 갖췄다고요. 남자 주인공과 나는 완벽히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천천히 깨닫습니다.

결국, 작품 속 미소녀들은 '못난'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잘난' 게임 속 남자 주인공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절망합니다. 현실은 하렘이 아니라 지옥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어디론가 도망칩니다. 그리고 그곳은 이른바 '미소녀 동물원'이죠. 남자 따윈 없는 미소녀들만으로 구성된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고자 해서 탄생한 곳입니다.


남성 캐릭터는 미소녀 세계의 파괴자

미소녀 동물원의 세계에는 남성은 배제됩니다. 그녀들만의 아름다운 생활을 파괴할 남성이란 존재가 없다 보니 미소녀 동물원의 세계에서 '연애'라는 단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연애하지 않으면 도대체 스토리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그런 거 없습니다. 미소녀들이 그냥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이를 관찰하는 것이 바로 '미소녀 동물원' 장르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원래 일상물은 '사자에상'이나 '마루코는 아홉살', 우리나라에서는 '아기공룡 둘리'나 최근 유명한 웹툰인 '마음의 소리'와 같은 작품을 칭하는 말이었습니다. 일상물은 등장인물들이 일정한 장소와 시간 아래에 옴니버스식 에피소드를 반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미소녀 동물원' 장르는 위와 같은 일상을 미소녀들만이 반복하는 것이죠. 그리고 일상물은 이와 결합해 조금씩 변질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기존의 일상물과는 다른 이런 식의 작품을 따로 '공기계(空氣系)'라는 이름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만, 그냥 이번 글에서는 구별하지 않고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 사자에상


미소녀 동물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캐릭터가 얼마나 소비자인 남성들에게 호감을 주느냐 입니다.

한 명의 팔방미인 여주인공보다는 다양한 성격과 외모를 가진 여러 명의 캐릭터를 내놓습니다. 어떻게 보면 주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만한 그런 소녀들이 중심에 서게 됩니다.



미소녀 동물원의 시작 '아즈망가 대왕'

미소녀 동물원의 시초로 '아즈망가 대왕'을 꼽고 있습니다.

아즈마 키요히코 원작의 '아즈망가 대왕'은 1999년부터 연재를 시작했으며, 원래 내용은 평범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4컷 개그 만화였습니다. 그런데 연재가 계속되고 인기를 끌면서 작품은 6명의 소녀들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었습니다. 이후 애니메이션화가 되며 이 때 아즈망가 대왕은 주역 캐릭터들의 모에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아즈망가 대왕'에는 남성 등장인물이 의도적으로 배제되어있습니다. 이름이 있는 남자 캐릭터는 단 두 차례 등장하는 단역 학생과 약간 특이(?)한 남자 선생 두 명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녀공학임에도 연애는 배제된 채 여성 등장인물들의 일상사만으로 내용이 전개됩니다. 입학과 시험, 체육대회에 문화제, 수학여행과 방학, 그리고 대학 입시와 졸업까지. 평범한 고교생의 일상이 반복되면서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정립됩니다.

아즈망가 대왕의 히트를 통해 이러한 '연애가 배제된 여성들만의 학원 일상물'은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였고 결국 '미소녀 동물원'이라는 용어까지 탄생하게 됩니다.



미소녀 동물원의 다양화…'미소녀 오타쿠, 미소녀 고시엔'

아즈망가 대왕과 유사한 작품이 난립했지만 그중에서 인기를 끈 작품은 요시미즈 카가미 원작의 '러키☆스타'가 있습니다.

이 작품 역시 여고생 4인방을 중심으로 한 4컷 개그 만화로 시작되었고 그중에 오타쿠 소녀를 메인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요. 오타쿠라면 일상에서 겪어봤을 만한 일반인과의 문화적 충돌을 다룬 에피소드가 내용의 주를 이뤘습니다. 이것이 작품의 핵심 소비계층인 오타쿠 남성들의 공감을 얻고 인기를 끌게 됩니다.

↑ 러키☆스타


그리고 2012년 가을 소리소문없이 방영을 시작한 뒤에 다음해 봄까지 애니메이션 계를 평정했던 공포의 작품 '걸즈&판처'가 미소녀 동물원의 새로운 지평인 '미소녀 고시엔'을 확립합니다.

'고시엔'은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가 개최되는 야구장인데요. 야구 스포츠 장르에서 열혈소년들의 목표가 되는 장소입니다.

'걸즈&판처'는 미소녀 일상물에 스포츠 장르를 결합하면서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는데요. 스포츠를 통해 팀을 이루고 동료와 합심해서 난관을 이겨내고 강력한 경쟁자들과의 경쟁을 통해 우정을 나누는 스토리 전개가 미소녀들의 일상에 잘 녹아 들어가면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작품 속에서 전차를 사용한 무도인 '전차도'가 현실의 다도나 서예, 꽃꽂이와 같이 소녀들의 교양이라는 설정이 있습니다. 이는 너무 전쟁을 희화화 했다는 비판과 함께 구 일본육군 전차와 욱일승천기가 등장해 우익 의혹을 받는 등 논란의 여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십 명의 소녀가 단체로 등장해 남자들의 로망인 탱크를 몰면서 호쾌하게 전차포를 쏴대는 장면에서 오타쿠들은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걸스&판처


'소녀시대'를 누른 미소녀 동물원의 완성체 '케이온!'

폐부 위기에 놓인 여고 경음악부에서 밴드를 결성한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 '케이온! (K-ON!)'은 미소녀 동물원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스즈미아 하루히의 우울'과 '러키☆스타'와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히트시킨 교토애니메이션이 제작했고, 케이온의 TV 애니메이션과 극장판은 어마어마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작품의 제작을 총괄한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여성 특유의 감성을 살리면서 원작의 야한 장면이나 모에성을 배제하고 더욱더 미소녀 관찰기에 들어맞는 작품을 만듭니다.




케이온은 TV 방영 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2011년 겨울에 개봉한 극장판은 누적 관객 100만 명을 가뿐하게 돌파하며 총 수익 19억 엔을 거두었습니다.

여고생들의 밴드생활이 주요 내용이다 보니 관련 음악도 모두 CD로 발매되었는데요. 오리콘차트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여러 싱글과 앨범이 상당한 판매량을 올립니다.


참고로 소녀시대의 일본 데뷔 싱글 'GENIE'가 케이온의 여고생밴드 '방과 후 티타임'의 삽입곡 싱글과 같은 2010년 9월 8일에 발매되었는데요. 결과는 케이온의 싱글이 3위에 오르고 소녀시대가 4위에 랭크되면서 판매량에서 뒤처졌습니다. 오타쿠의 힘이 소녀시대를 눌렀지요.

↑ '케이온!' 오리콘 차트


그밖에 관련 상품들만 천여 가지 이상 발매되는 등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린 '케이온'은 닛케이MJ와 일본백화점협회가 선정한 '21세기를 빛낸 일본의 히트상품 TOP10'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립니다.


미소녀 동물원의 한계와 비판

미소녀 동물원은 기본적으로 스토리를 제거하고 미소녀들의 캐릭터에만 의지합니다. 결국, 강력한 흡입력을 가진 작품이 히트하게 된다면 미소녀 동물원과 일상물은 그 힘을 상당 부분 잃게 됩니다.


위에 언급한 '케이온!'의 히트 기록은 나중에 다른 글을 통해 소개할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와 '진격의 거인'등 스토리와 강한 반전으로 무장한 작품 때문에 깨지게 됩니다.

충격적인 스토리로 인기를 모은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좌), 진격의 거인(우)



서브컬쳐계에서 '모에와 일상'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만 작품을 지탱하는 게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모든 남성 오타쿠가 미소녀의 모에 요소를 좋아하는 것도 아닙니다. 메카닉, 판타지, 스포츠 등등의 다양한 스토리와 캐릭터가 있는 작품들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고요.

‘건담의 아버지’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은 이런 작품들만 조명되는 최근 애니메이션 시장에 대해 "병신같다"면서 일갈을 날리기도 했는데요. 취향이니까 존중해달라고 하기에는 미소녀 동물원과 모에 일상물 장르는 캐릭터 관련 상품의 판매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모델로서의 수단에 묻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성지 순례와 결합한 미소녀 동물원의 미래

위에서 이미 언급한 스토리의 배제, 미소녀 캐릭터 전면 배치 외에도 미소녀 동물원 장르의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가상의 무대 속에 등장하는 주요 장소나 사용 아이템은 현실의 것을 가져다 쓴다는 것입니다. 미소녀들이 뛰어노는 학교와 마을은 대부분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이른바 '성지순례'라는 독특한 문화를 생산하게 됩니다.

'성지순례'란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의 팬들이 작품의 배경이 된 실제 장소들을 탐방하는 것을 일컫는데요. 이를 통해 침체에 빠진 마을의 경기를 일으킬 수도 있고, 작품 내에서 소재가 된 물건들이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나타났던 '치맥 효과'처럼 애니메이션에서는 그 허구와 현실의 결합 덕분에 더 많은 피드백이 발생합니다.




'걸즈&판처'의 배경이 되었던 오아라이 마을은 실제로 있는 곳입니다. 지난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로 크게 파괴되고 관광객 수와 지역 토산품 판매가 급감했으나 이 작품을 통해 마을 인구수의 3배가 넘는 관광객이 몰려오고, 이후 완전히 마을의 경기가 부활하게 됩니다.


△ '걸즈&판처'의 배경이 된 오아라이 마을 성지순례 동영상





바로 이 점이 주목할 포인트인데요. 일본의 많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지방을 배경으로 할 뿐만이 아니라 직접 제작스튜디오도 설립하면서 지역 경제의 부흥을 이끌어내었습니다. 단순한 상품 판매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지역과 조화를 이뤄 쇠퇴해가는 경기를 회복시키고 마을의 경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걸즈&판처'의 제작진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한 공로를 인정받아서 일본 관광성으로부터 표창을 받았습니다. 교토애니메이션이나 P.A.WORKS와 같은 지방 소재 제작사는 스튜디오 건물 자체가 성지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미소녀'라는 강력한 캐릭터를 살려 지역의 상징으로 키우고 이를 통해 관광객 유치와 관련 캐릭터 상품의 판매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이어진다면 단순한 모에 문화를 넘어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4월 21일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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