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리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여자가 무거운 서류를 들고 가는데 도와주기는커녕,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자기 일만 하는 김대리가 너무나 매너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김대리가 상사한테 보고할 자료 때문에 힘들어 할 때 도와주었던 것이 새삼스럽게 후회가 되었다.
‘역시 남자들은 여자를 무시하고, 이기적이야. 남자들도 이제는 제발 달라져야 해’ 장대리는 혼자 말을 되뇌며 다시는 상대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낑낑대며 복사실로 들어갔다.
이러한 상황에 심각한 ‘남녀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요구사항을 있을 때, 자신들이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알아서 해결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여성들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여성들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여성들은 그러한 남성들이 답답하다. ‘그걸 꼭 말로 해줘야 아나?’, ‘그냥 좀 알아서 해주면 안되나?’ 상대방이 원하는 걸 파악해서, 최선의 해결책을 찾는데 익숙한 남성들 또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문제도 없는데 답을 찾아보라는 어이없는 상황에 놓인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조직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진다. 회의 시간에 좋은 아이디어를 내도 묵살당하기 일쑤이고, 승진에서도 자기보다 능력이 없는 남자 직원한테 밀려나고, 갖가지 사내 중요행사에서도 배제되는 것 같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려면 남자들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하더라도 자신의 능력과 헌신을 확실하게 믿어주지 않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남자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직장생활에서 비전을 찾기란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남자들은 상대적으로 조직생활이나 일반적인 기업문화가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다. 그러나 여성 동료들과 업무를 하면서 서로 즐겁고 신나게 일하고 싶지만 계속해서 이유도 없이 자신에게 불만을 표출하고, 상대방을 무시한다는 지적을 자주 받기에 무척 당황스럽다.
지난 수십 년간 대부분의 기업에서 남성 위주의 조직문화와 고정관념이 별다른 문제없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직장에서의 근무환경은 당연히 여성보다 남성들에게 더 편안할 수밖에 없다.
남자들 입장에서는 일터의 규칙, 문화, 절차 등 모든 것이 크게 불편하지 않으니, 그걸 바꿔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남자들은 '고장 나지 않은 것을 굳이 고칠 필요가 있느냐'는 성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여자들은 이러한 남성 중심적인 조직환경이 편할 리 없다. 지금까지 남자들이 자신들 위주로 만든 환경에 여자들이 뒤늦게 들어가 적응해야 하는 것이니만큼, 자신이 기꺼이 선택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가치관에도 할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을’의 입장에 서있다고 느껴지는 쪽은 주로 여성들이다. 무시당하고, 소외되고, 시험당하고, 의심받는다고 느끼는 쪽도 주로 여성이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세계경제와 노동시장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여성들이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노동시장에 비슷한 비율로 진출하고, 글로벌경제체제로 진화하면서 여성들의 영향력이 증대되면서 목소리가 점차 커지기 시작하였다. 또한 남성성향의 중앙집권적인 통제시스템이 더 이상 큰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어지고, 보다 다양하고 수평적인 관리체계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여성들도 남자들이 의도적으로 자신들을 배척하고 불이익을 주고 있다는 기존의 선입견에서 벗어나 자신의 요구를 더 명확하게 표현하여, 남성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할 것이다. 남자들은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여자에게 자신의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자신이 여자에게 문제가 아닌 해결책이 되기를 바란다.
"김대리, 바쁜데 미안하지만 이것 좀 도와주세요."
"알았어요. 장대리, 복사실까지 옮겨 드리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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