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규제기관 일자리' 정부 기관끼리 권한 다툼

머니투데이 오동희 기자 | 2014.03.27 06:11

[기획/규제를 규제해야 나라가 산다(4)]

"규제의 순환고리도 사실 일자리입니다. 규제가 줄어들면 규제기관의 현재는 물론 미래 일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에 규제가 감소하지 않은 채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까지 늘어나는 겁니다."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규제를 위한 규제'의 폐해가 해소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해석했다. 그는 "기업들이 주주총회 시즌만 되면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법원, 검찰, 국세청, 공정위, 금융위나 금감원 등 규제기관 출신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 인사가 전문성을 갖추긴 했지만 영입한 이유는 보이지 않는 규제를 헤쳐나가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여권에서도 "규제기관 밥그릇 챙기지 마라"=지난해 6월 '경제민주화' 논의가 거셀 당시 새누리당의 최경환 원내대표는 내부 회의에서 공정위와 금융위를 향해 "경제민주화 입법을 빌미로 조직확대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극히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무렵 공정위가 '일감몰아주기'를 불공정거래 행위가 아닌 '경제력 집중 억제' 항목에 넣고 '공정위 대기업 전담국'을 신설할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이런 질타가 무색하게도 공정위는 그로부터 10개월 만에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행위를 규제할 과(課)를 신설하고 기존 대기업 관련 조직을 묶어 관련 국(局)으로 키울 계획을 재차 밝혔다. 검찰의 특수부와 같은 성격의 '대기업 전담국'을 세우는 구상이다.

재계 관계자는 "공정위에 대기업 전담국이 생기면 공정위 출신들의 기업행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상장사 1000곳에서 새로 선임된 사외이사 775명 중 장관 등 관료 출신이 전체의 14.4%를 차지했고 검찰 출신을 포함한 법조인은 12.6%였다.

◇규제기관끼리 권한 다툼도=규제가 일종의 '힘'이자 일자리다보니 규제기관들 사이에서도 권한 다툼이 적지 않다. 공정위는 1980년부터 지난해까지 33년간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전속고발권을 행사했다.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하지 않으면 법 위반에 대한 기소 자체가 어려웠다.

그러나 올해부터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서 감사원과 조달청, 중소기업청도 검찰에 고발할 수 있게 됐다.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도 늘어난 셈이다.


최근 자동차연비 개선을 놓고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서로 확보한 권한을 놓고 힘겨루기를 한다. 산업부는 '에너지이용합리화법'에 따라 연비인증부터 사후관리를 맡는다. 국토부는 산하 교통안전공단이 연비를 독자적으로 계산한다. 두 기관이 산출한 연비가 달라 연비개선책도 엇갈린다.

이와 함께 게임산업에서도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외에 여성부와 보건복지부가 규제의 잣대를 들이댄다. 탄소배출권은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서로 관할권을 다툰다.

박정수 서강대 교수(경제학)는 "현행 규제생산시스템을 경제학적 측면에서 보면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은 규제가 곧 '아웃풋'(Output·성과)이다. 다시 말해 법을 많이 만들어야 일을 했다는 증거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규제가 만들어지는 순간 권력의 수단이 된다"며 "규제를 줄이려면 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규제기관 대신 서비스 기관돼야= 규제기관의 이런 관행은 감사 체계의 개편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총리실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공무원들이 일자리를 늘려 국민을 편안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기업들에게 무엇을 해 주게 되면 감사원의 감사 대상으로 꼽혀 선듯 나서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도 "시행령 생산 건수가 공무원 인사 고과를 높이는 현행 구조가 깨지지 않는 한 규제는 개혁 후 4~5년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나 일본은 정부 주도로 성장해 와 정부가 기업을 관리하려 한다"면서 "미국이나 유럽의 정부는 '시빌 서번트(Civil Servant : 국민의 공복)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규제 외에는 서비스 개념으로 접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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