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백년전 살인사건도 수사하는데…"공소시효 폐지해야"

머니투데이 이하늘 기자, 이태성 기자, 김정주 기자 | 2014.03.26 14:59

개구리소년·화성살인 진범 밝혀져도 처벌불가…형제복지원도 처벌 및 피해구제 요원

#15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 사건. 범인은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한 남자가 '내가 살인범이다'라는 자서전을 통해 자신이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주장하며 범행수법 등을 공개한다. 하지만 이 남자에 대한 처벌은 공소시효 때문에 불가능했다. 오히려 수려한 외모와 언변으로 범인은 스타로 떠오르고 책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2012년 개봉한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 한국의 공소시효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흥행에도 성공하며 공소시효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공소시효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국내 법체계 상 살인을 저지른 중범죄자도 정해진 기간을 넘기면 '면죄부'를 받을 수 있어 이에 대한 보안책이 필요하다는 법조계 안팎의 지적이다.

◇흉악범도 공소시효 지나면 처벌안돼…'관대'(?)한 국내법

국내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는 2007년 법률개정으로 15년에서 25년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는 2007년 이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2006년 살인이 일어났다면 그 공소시효는 2021년에 종료된다. 1999년 발생한 사건들 역시 올해 들어 순차적으로 공소시효가 만료돼 면죄부를 받는다.

실제로 온 국민을 안타깝게 했던 '개구리소년' 사건은 26일 사건발생 23주년이 됐다. 현행 공소시효 만료 25년을 넘지 않았지만 법 개정 전인 1991년 발생했기 때문에 이미 2006년에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다시 회자됐던 화성 연쇄살인사건 역시 공소시효가 끝났다.

최근 한 방송사가 다루면서 세상에 알려진 '형제복지원'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은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1975년부터 1987년까지 3000여 명의 시민을 감금하고 5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다. 그러나 박모 당시 형제복지원 원장은 횡령죄 등으로 2년 6개월의 형을 받았다. 불법구금·폭행·살인 등에 대해서는 재판조차 받지 않았다.

26년이 지난 이 사건은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기형적인' 결과로 끝났다.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커녕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도 기대하기 어렵다.
1984년 당시 9살이던 한종선씨가 부산 형제복지원에 수용됐을 당시의 경험을 그린 그림. 자신을 보러 온 누나가 교관에게 맞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위), 교관이 여성 수감자들을 성폭행하기 위해 손발을 묶어둔 모습을 담은 그림(아래)/사진=한종선씨의 책 '살아남은 아이'

◇美·日·獨 등 국내법 영향미친 해외선 살인죄 공소시효 없어

하지만 해외에서는 무거운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독일은 나치 전범 및 모살죄(계획적인 중범죄) 및 집단살해죄에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

일본 역시 한국과 비슷한 공소시효 체제를 갖고 있지만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죄'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미국도 몇몇 주를 제외하면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없다.


영국은 원칙적으로 공소시효가 없다. 예외적으로 경범죄에 대해서만 이를 적용한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19세기 희대의 살인마인 '잭더리퍼'에 대한 수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역시 내란죄, 외환죄, 집단살해죄, 성폭력 살인, 13세 미만 아동 및 장애인 대상 성폭력에 대해서만 공소시효를 배제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사회를 분노케 하는 옛 사건들이 다시 재조명되면서 그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헌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 대표는 "사건발생 23주년이 된 개구리소년 사건은 향후 특정사실이 더 밝혀진거나 변화상황이 생기면 공소시효를 넘어 수사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해외에서도 특정 중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가 진행되는 만큼 한국도 이런 추세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전하는 과학수사, 공소시효 폐지하면 미제사건도 추후 범인 확정·처벌가능

특히 과학수사의 발전으로 수년 전만해도 해결하지 못한 사건의 수사가 진척을 보이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달 1월에는 강도살인을 한 40대 남성이 범행 9년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사건 당시에는 과학기술이 부족해 지문의 전체가 아닌 조각난 일부 지문인 '쪽지문'만으로 범인을 특정할 수 없었지만, 과학수사 기법이 발전하면서 쪽지문을 통해 범인 검거에 성공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0년 7월부터 지난해까지 총 1266건의 미제사건이 DNA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해결됐다. 이 가운데 성폭력(232건), 살인(5건) 등 죄질이 나쁜 범죄도 상당수 포함됐다.

향후 수사기법이 더욱 정교해지면 시간이 오래 지난 미제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만큼 무거운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역시 더욱 늘리거나 폐지해야 할 이유가 있다.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는 "현행법은 사형이 가능한 범죄에 25년의 공소시효를 적용하고 있지만 반인륜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될 필요가 있다"며 "다만 국가 행정력이 낭비될 수 있고 피의자 인권보장의 측면도 생각해야 하는 만큼 모든 범죄에 대한 폐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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