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조' 러 보물선 울릉도에 침몰? 정부 "찾으면…"

머니투데이 박광범 기자 | 2014.03.26 14:00

[외교문서]러·일전쟁 당시 침몰 '러 군함' 인양문제로…

/사진=머니투데이DB
정부가 1980년대 전설 속의 '러시아 보물선' 인양 문제를 두고 행복한 고민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머니투데이가 26일 공개된 외교문서 '침몰 러시아 군함 인양문제 민원 검토'(1983년 생산)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됐다.

이 문제는 1983년 러시아 발틱함대 소속 3727톤급 순양함 '스베트라나'호 인양준비 작업이 진행되면서 불거졌다. 스베트라나호와 배에 실린 재물, 러시아 군 유해 등이 인양될 경우,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대한 청원서가 제출됐기 때문이다.

국제법상 외국 정부의 재산일 경우, 소유권은 영구적이기 때문에 러시아 군함의 임의 발굴 인양은 국제법상으로 불가능했다. 다만 침몰선박의 인양은 유실물법에 따라 조치가 가능해 선박 인양 후 소유권자와 접촉을 통해 인양물 인계 및 소유권자로부터 소요경비, 보상금 수령이 가능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외국의 사례를 검토하는 등 관련 계획 수립에 총력을 기울였다.

실제 일본은 1980년 9월 대마도 근해에 침몰한 발틱함대 소속 러시아 순양함 '나히모프호'에서 백금괴 16개(400만 달러 상당)를 인양했다. 그러자 1980년 10월 주일 소련대사는 인양중지 및 인양 관련 소련과의 합의 요구 및 재산 소유권을 주장했고, 일측은 국제법상 전리품이라며 국유재산임을 주장하며 맞서기도 했다.

정부는 시나리오별 전략 수립에 들어갔다. 우선 인양 작업을 계속 추진함과 동시에 소련측과 접촉을 계속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소련측에 유해 및 선박 인수에 따른 소요경비 및 20%의 보상금을 지불 조건으로 내세우려 했다.

다른 방안으로는 인양된 선박을 정부에서 보존하면서 대소련 접촉에 활용하려는 계획도 세웠다. 아울러 해군 수장은 국제적 통례인 만큼, 유해 발굴 시 동일수역에 재수장하고, 해당 건을 대외에 발표하지 않는다는 방안도 검토했다.

정부는 결국 러시아 군함을 인양하더라도 향후 한-소간 분쟁 발생 가능성을 이유로 군함 및 군함내 재산을 국고에 귀속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정부는 소련과의 국교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유해처리 등을 포함한 인양 작업과 관련, 소련측에 교섭을 제의하는 것은 실익이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는 민간에게 재산권을 넘겨준다면 이후 소련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 해결이 까다로워질 것을 우려해 국고에 귀속시키기로 결정하고, 선박인양에 들어간 비용 외에 인양된 재산가치의 1/4~1/2까지 보상금을 인양한 측에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한편 러시아 보물선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금화를 가득 싣고 있는 보물선이 울릉도 앞바다에 잠들어 있다는 것이다.

1905년 러일전쟁 중 쓰시마해전에서 일본에 패한 러시아 군함들이 러시아 군의 군자금으로 쓰일 막대한 보물을 싣고, 울릉도 인근 해안에서 침몰했다는 소문이다. 그 중 핵심은 '돈스코이호'로, 러시아 함대가 패퇴 과정에서 보유하고 있던 금화 200t(현재 가치 약 120조원)을 돈스코이호로 옮겼다는 설이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2003년 우리나라 해양연구원들은 전설로만 전해졌던 돈스코이호의 존재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의 뛰어난 선박탐사 기술을 전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사건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일본 해군의 극비 문서 및 러시아 대외비 문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등의 분석에 따르면 돈스코이호는 울릉도 저동항 인근 수심 400m에 침몰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 러시아 측 기업들이 돈스코이호 인양을 위한 물밑작업에 들어갔다는 소문도 돌았다. 실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러시아 대통령(현 총리)은 2011년 11월 2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돈스코이호의 인양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전문가들 사이에선 돈스코이호에 보물이 있을 가능성은 적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한국에겐 돈스코이호의 존재는 단순히 금화를 싣고 가라앉은 군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분석도 있다. 1905년 5월 러시아 함대가 패퇴하면서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일본의 독도 강탈도 이때 본격화됐다. 특히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측 지도에 독도가 분명하게 우리 영토로 기록돼 있다는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아울러 돈스코이호의 발견은 타이타닉호를 소재로 만든 영화 '타이타닉'처럼 당시 역사적 배경을 담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제작 가능성 때문에 역사적·과학적·문화적·경제적 측면에서 상당한 가치를 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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