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A씨에게 죽음을 강요했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제작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비연예인(일반인) 출연자의 인권을 보호할 제도와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반인' 리얼리티 프로그램 전성시대
'날 것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모토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1999년쯤부터 미국 등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한국에서는 2006년 MBC '무한도전' 등 연예인 예능프로를 시작으로 케이블채널의 Mnet '아찔한 소개팅' 등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이 저렴한 제작비와 화제성을 무기로 우후죽순 생겨났다. 특히 2010년 Mnet '슈퍼스타 K' 등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공은 일반인 리얼리티 프로그램 열풍에 불을 지폈다.
방송은 '양날의 칼'이다. 비연예인들은 카메라에 노출되는 데 두려움을 가지면서도 방송을 통해 자신의 끼를 발휘하고 홍보하고 싶어 한다. 환풍기 수리공이던 청년이 하루아침에 가수의 꿈을 이루고, 매칭 프로그램을 통해 운명의 짝을 찾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일반인의 방송출연 욕망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희망자가 넘치기 때문에 일반인 출연자들은 '을'이 된다. 출연자들은 제작진이 제시하는 '출연 동의서'에 서명한다. 하지만 철저히 방송사 위주다. 출연자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다.
◇촬영부터 방영까지 '인권 사각지대'
문제는 촬영과정 중 동의서에서 논의되는 것 이상으로 돌발 변수가 수시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재미'와 '시청률'을 위해 출연자의 인권은 종종 무시된다. 방송환경에 익숙지 않은 비연예인들은 무방비 상태로 카메라 앞에 놓이게 된다.
출연자는 자신의 촬영분이 어떻게 편집돼 방영될 지 예측할 수 없다. '악마의 편집'으로 네티즌의 악성댓글과 신상털이 등 2차 피해를 입어도 진실을 해명할 방법이 많지 않다. 대부분 참거나 중도 탈퇴하는 등 스스로 불이익을 감수할 뿐 일개 개인이 방송국을 상대로 소송하는 등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김언경 위원은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청소년들과 방송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동의서에 사인했다고 모든 걸 감수해야 하는 건 아니다"며 "제작진들은 이를 알면서도 출연자들에게 사전에 충분히 고지하지 않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간 '출연자 인권'이 논의된 적은 거의 없다. 현재 방송 출연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적 근거나 장치는 전무한 상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 내용'의 공익성 공공성, 민주성 등을 심의할 뿐 방송사의 출연자 인권침해 여부는 관여하지 않는다. 방송사 윤리강령은 예능보다는 보도 부문을 다루는데, 위반 시 제재할 근거도 없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국회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나서 '표준 동의서'를 만들고 인권위에서 동의서를 인권 친화적으로 개선하도록 권고하는 등 방송계의 '인권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언경 위원은 "현재는 방송 제작 과정에서 장애인이나 어린이를 제외한 일반 성인 방송출연자에 대한 인권침해 심의 조항이 없어 신설해야 한다"며 "또 각 방송사는 법무팀 등에서 자사의 인권침해 여부를 심의·감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인 출연자를 예능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한 '도구'로 바라보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리얼리티 촬영 상황에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사람과 스트레스를 관리하지 못하는 이들의 개인차가 크다"며 "솔루션 프로그램을 통해 단기간 관심을 받던 암 환자가 이후 배신감이나 허탈감을 호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언경 위원은 "현재 '리얼리티 프로그램 전성시대'에 누구라도 TV에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사회에서 매장되는 등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며 "서로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제도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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