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 2014.02.28 16:01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51>

나를 아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나를 모르고서야 다른 것을 아무리 많이 안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가치 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은 "투자자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이자 가장 두려운 적은 아마도 자기 자신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제자인 워런 버핏도 며칠 전 버크셔해서웨이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서한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가 밝힌다섯 가지 투자 원칙을 요약하면 매일같이 변하는 주가 지수나 단기적인 수익률, 투자기관의 거시경제 전망 따위는 잊어버리고 자기가 하는 행동의 의미를 명확히 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인데, 결국 관건은 투자자 본인이며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는 당장 손실이 발생하면 감정적으로 흔들리기 때문이다. 특히 주식시장에서는 자신이 투자한 종목의 주가가 시시각각 변동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가 더욱 어렵다. 그래서 버핏도 지적했듯 부동산에 투자하면 수십 년씩 기다리면서도 주식에 투자하면 날마다 안절부절못하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근시안적인 리스크 회피라고도 하는데, 그레이엄이 대공황 시기에 목격했다는 사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신문에 가격조차 게재되지 않았던 3류 모기지 채권 투자자들은 대공황 시기에도 그대로 보유한 덕분에 나중에 괜찮은 수익률을 거둔 반면 오히려 이보다 가격 하락폭이 훨씬 작았던 우량 회사채를 보유한 투자자들은 매일매일 가격을 확인하는 바람에 시장이 일시적으로 패닉에 빠지자 채권을 다 팔아버렸다.

합리적으로 행동했다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다. 시장을 움직이는 건 인간이고 나 역시 인간이기에 예외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사례도 있다. 1970년대 중반 뮤추얼펀드에 1만 달러를 예치한 투자자가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10여 년이 지난 1987년 10월 19일 블랙먼데이에 주가가 대폭락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급히 펀드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큰 손실이 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그쪽 직원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이번에 손실이 나는 바람에 고객님 잔고가 17만9623달러로 줄었네요."


이건 윌리엄 번스타인이 쓴 '투자의 네 기둥'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번스타인은 우리가 매일 부딪치는 가장 두려운 적, 바로 자기 자신을 이겨내기 위한 전략을 제시했다.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하면 (1) 군중과 결별하라 (2) 시장이 나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는 점을 인정하라 (3) 과감하게 바보가 되라 (4) 리스크를 제대로 인식하라 (5) 무작위를 즐겨라 등이다.

굳이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투자 리포트 대신 가능한 한 소설을 많이 읽으라는 것이다. 내가 이 칼럼에서 투자와는 별로 관계 없어 보이는 문학 작품들을 자주 소개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인데, 가끔은 논리의 비약도 있었을 것이고 연관성이 부족해 보이기도 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리한 눈을 가진 작가들이 세상과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자세히 관찰한다. 그리고 거기서 중요한 사실들을 유추해낸다. 또 남들이 다 드러난 것만 볼 때 감추어진 이면까지 속속들이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작품 속에서나마 우리는 이들이 어떻게 관찰하고 추리하고 인식하는지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경영학의 그루로 일컬어지는 톰 피터스도 기업인들에게 "읽으려면 소설을 많이 읽고 경영서적은 가능하면 적게 읽으라"고 충고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관계들이 소설 속에 들어있다고 덧붙였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무수히 등장하는 소설 속 군상들의 행동을 통해 비로소 난마처럼 얽혀있는 세상의 실상과 인간의 본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계들을 모르고서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알 수 없고 급변하는 시장에 제대로 대응할 수도 없다.

투자자로서 자신이 결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얼마나 분명히 깨닫고 있느냐가 투자의 성패를 가늠하는 열쇠다. 소설을 읽으면 새삼 이 사실이 더 절실히 와 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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