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우리 메달은 모두 여자 선수들이 딴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여자 선수들의 비중이 크다는 것은 어림짐작하고 있었지만, 그 정도인지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러면서, 드디어 남자 선수들도 첫 메달을 확보했다고 앵커가 흥분한다.
스피드 스케이팅 추월 경기. 한국 남자의 유일한 메달 종목. 나는 늦은 시간 결승전 생중계를 지켜보았다. 처음 몇 트랙은 엎치락뒤치락 했건만, 결국 올림픽 신기록까지 세운 오렌지 군단의 승리였다. 모두 메달리스트인 네덜란드 선수들을 어떻게 당하겠는가? 그래도, 내 눈에는 앳되어 보이는 우리 선수들이 대견스러워서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유난히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네덜란드의 독주가 눈에 띄었다. 네덜란드가 강한 이유 중의 하나로 스케이트를 타는 곳이 풍부하다는 천혜적 환경이 지적된다. 지금은 겨울이 짧아졌다지만 과거엔 집 밖으로만 나가면 주위의 물이 모두 얼어서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나라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
이탈리아 여행 전 가장 궁금했던 곳이 물의 도시 베네치아였다. 영상으로는 보았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잘 상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피렌체에서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데, 갑자기 큰 호수가 나타났다. 뿌연 안갯속을 달리면서 “참 호수가 크다”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다. 그것은 바다였다.
역 근처 호텔을 미리 예약해 두었는데, 한두 사람이 비좁게 지나다닐 수 있는 골목길로 5분가량 걸어 들어가야 했다. 그래도 300년이 넘은 호텔이란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3층까지 무거운 짐을 들고 올라가면서 그 말이 실감이 갔다. 짐을 풀고 나서 호텔 밖으로 나와서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문득 “이 호텔에는 차를 어떻게 대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짐도 나르고 손님이 오가려면 적어도 차가 오가야 하지 않는가?
차가 없는 삶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베네치아에서는 차가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선입관 탓이 크다. 자동차가 보급된 게 언제던가? ‘총, 균, 쇠’에 의하면 제1차 세계대전 전만 해도 말이나 철도에 대한 만족도가 워낙 높아서, 당시 사람들이 자동차로 바꾸어야 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불과 10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자동차 없는 문명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가? 문명의 이기란 일종의 중독성이 동반되는가 보다.
스스로 정체성에 기반을 둔 문명
영국에서 지하철을 탔을 때 많은 사람이 책을 읽고 있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종이책이 많았고, 일부는 전자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보는 경우와는 대조적이었다. 혹자는 영국 지하철에서는 Wi-Fi가 안 터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인터넷이 되면 그 사람들이 책 대신 스마트폰을 볼까?
문명의 이기는 우리의 생활 문화와 관련이 있다. 필요로 새로운 발명이 이루어지고 대중화된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우선이다.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물건을, 단지 동향이라고 해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베네치아도 자동차의 유익함을 왜 몰랐겠는가? 그러나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인프라로 바꾸려면 기존의 살던 방식을 부수고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유용한 서비스와 상품을 업그레이드된 배의 인프라로 바꾸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현대 문명의 요소는 빠짐없이 있다. 몇백 년을 이어온 생활 인프라에 현대 문명을 접목하니, 오히려 호기심과 신기함을 가져다주는 유명 여행지가 되었다.
기술보다 인간적인 삶이 먼저다. 인터넷이 안 되는 300년 된 호텔 로비에서, 첨단 문명의 소용돌이에서 잠시 떨어져 보는 휴식. 베네치아 같은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편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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