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금융의 상식' 대구은행

머니투데이 박종면 더벨대표 | 2014.02.24 05:58
훌륭한 리더는 미래를 예측하는 선지자가 아니다. 위대한 리더는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도 아니다. 대단히 혁신적이거나 아주 창의적이지도 않다. 뛰어난 리더는 더 절제하고, 경험에 의존하며, 피해를 입을까봐 전전긍긍하는 사람이다. 현대 경영학계의 스승 짐 콜린스의 지론이다.

하춘수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은 지난해 말 고심 끝에 경남은행 인수 작업을 중단하고 말았다. 인수전이 가열돼 1조2000억원이 넘는 가격으로 경남은행을 인수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경남은행 인수포기로 종합금융그룹 도약이라는 꿈을 접고 말았다는 비난도 받았지만 지금 경남은행을 인수한 BS금융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하회장과 DGB금융의 선택은 상식적이고 타당했다.

BS금융은 1조2800억원이라는 다소 무리한 가격으로 경남은행을 인수해 큰 부담을 안게 됐다. 더 큰 문제는 경남은행을 인수하고도 거꾸로 백기 투항하듯이 경남은행 노조에 모든 것을 양보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경남은행과 부산은행이 영구적으로 투 뱅크(Two Bank) 체제를 유지하고, 인력과 점포 구조조정도 하기 않기로 한 것 등이다. 게다가 현재 부산은행의 80%수준인 경남은행 직원들의 임금과 복지수준을 3년 내 부산은행 수준으로 올려주기로 했다.

이 같은 일들은 M&A의 상식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멀다. 상식에서 벗어나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것 또한 금융의 상식이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 5년간 통합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 때문에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BS금융 경영진은 모르는 것 같다. 광주은행을 인수한 JB금융(전북은행)이 광주은행 노조에 백기 투항하다시피 많은 것을 양보한 것도 마찬가지다. M&A는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가 훨씬 많다.


하춘수 DGB금융 회장 겸 대구은행장은 1년전쯤 3년의 회장임기가 끝나는 2014년 초를 퇴임시기로 잡고 승계 작업에 들어갔다. 하 회장은 은행 안팎에서 자신의 후임자로 거론되던 박인규 수석부행장을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고 대경TMS라는 은행 행우회 출자 인력관리 회사로 내려 보냈다. 그가 어떻게 하는 지 시험을 해 본 것이었다. 박 수석부행장은 다행이 하회장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불만 없이 묵묵히 일만 했다. 은행 일각에서는 수석부행장까지 한 사람을 자회사도 아닌 변방의 관계회사로 내려 보내자 하회장이 마르고 닳도록 혼자 다 해 먹을 모양이라며 수근대기도 했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퇴임 6개월을 앞두고는 아무도 눈치 못채게 하면서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마침내 지난 17일 그는 은행장은 물론 회장직에서도 함께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다음날 그는 이사들을 설득해 차기 회장겸 행장으로 박인규 전 수석부행장을 선임했다. 자신의 퇴진과 후임자 선임을 속전속결로 처리함으로써 조직을 안정시키고 외압이나 청탁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했다.

이는 후임자가 누구에게도 빚을 지지 않고 오로지 DGB금융과 대구은행에만 신세를 지게 함으로써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배려이기도 했다. 하회장은 자신의 퇴진에 반대하는 일부 사외이사들과 대주주들에 대해선 이번에 물러나지 않으면 외부의 낙하산 인사가 내려올 것이라는 말로 설득시켰다.

CEO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훌륭한 후임자를 고르고, 그에게 깔끔하게 승계를 하는 것이다. 이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과 순리를 지키는 금융 CEO를 왜 찾아보기 어려울까. DGB금융의 하춘수 회장은 이번에 금융계 CEO 승계의 전범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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