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에 취임한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대표펀드인 메리츠 코리아 펀드만 주력으로 남기는 등 메리츠자산운용의 체질 바꾸기에 나섰다. 20년 넘게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생활해온 리 대표에게 한국 자산운용사의 시스템은 비합리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는 1980년에 연세대학교를 중퇴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스커더인베스트먼트, 도이치투신운용, 라자드자산운용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리 대표는 경직된 문화를 없애 능력있는 펀드매니저들이 회사에 오래 머무르도록 하는 것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받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이에따라 최고투자책임자(CIO) 위주의 모델 포트폴리오(MP) 시스템과 펀드매니저 평가 시스템, 복잡한 직급체계를 모두 고쳤다.
메리츠자산운용에서는 대리, 과장, 차장 등의 직급은 있지만 팀장이나 본부장이란 직책이 아예 없다. 모든 직원들이 리 대표와 직접 의사소통하는 구조다. 펀드매니저들이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 다른 관점에서 자유롭게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 회사도 서울 여의도에서 종로구 북촌로로 옮겼다.
"스커더 모델을 한국에 심고 싶습니다. 스커더인베스트먼트 시절 권오진 매니저와 21년동안 손발을 맞췄습니다. 다른 팀들도 15~20년 오랜기간 같이 일했죠. 그 회사만의 문화는 다른 회사에서 베낄 수 있는게 아닙니다. 펀드매니저들이 가장 오고 싶은 회사로 만들면 고객들은 저절로 모입니다."
지난해말 리 대표가 부임하기 전까지 메리츠자산운용의 주식형펀드 성과는 자산운용사 중 최하위권에 머물렀지만 올들어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으로 메리츠자산운용의 액티브주식일반 펀드의 연초이후 수익률은 2.13%로 46개 자산운용사 중 1위를 차지했다.
이에 대해 리 대표는 성과가 좋은 것은 다행이지만 펀드 투자를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100미터 앞서가는 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펀드는 5~10년 이상 투자해야 합니다. 저도 장기안목을 가지고 투자해 왔습니다. 스커더인베스트먼트에서 코리아펀드를 운용하는 15년동안 단 한 번도 팔지 않은 주식도 있었어요. 거시경제보다는 거의 100% 기업 자체만 보고 판단합니다."
리 대표에게 주식을 매도하는 이유는 '분석이 잘못됐다고 판단했을 때'와 '주가가 이상 급등해 기업의 가치를 넘어섰을 때', '더 좋을 투자대상이 있는데 자금이 부족할 때' 등 세 가지뿐이다.
리 대표는 월스트리트 출신답게 해외시장 진출도 노리고 있다. 일단 올 1분기 내에 미국에 법인 설립을 완료할 계획이다. "미국은 블루오션이지만 최소 3년의 트랙레코드(운용성과)를 요구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을 유치하는데 시간은 좀 걸릴 겁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여러 면에서 매력적인 시장으로 여기고 있고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진출해 재투자가 이뤄지는 선순환을 이뤄나가도록 해야죠."
리 대표는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세계 최초의 뮤추얼펀드인 '더 코리아 펀드(The Korea Fund)'를 1991년부터 2005년까지 운용했다. 이 기간 동안 펀드 규모는 1억5000만달러에서 15억달러까지 10배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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