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선의 유럽여행기]패션의 멋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다

머니투데이 김홍선  | 2014.02.12 07:35

<4>패션의 도시 파리를 거닐다

편집자주 | 필자는 23년간 IT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벤처 기업가로, 전문경영인으로서 종사한 IT 전문가다. '누가 미래를 가질 것인가?'라는 저서도 출간했다. 그는 최근 7년간 몸 담았던 안랩의 CEO를 그만 두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2막을 준비하면서 그는 최근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유럽여행이야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고, 또 전문가들의 여행기도 많다. IT 경영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여행의 단상은 어떨까. 바쁜 일상으로 출장 외에 여유있는 여행을 꿈꿀 수 없는 CEO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쯤으로 시리즈를 연재한다. 여행경로는 로마에서 시작해 나폴리-피렌체-베니스-밀라노-파리까지. 20일간의 여정이다.

피사의 사탑을 가는 도중의 상점가 /사진=김홍선
피사의 사탑을 가기 위해 피렌체에서 기차를 타고 피사 역에서 내렸다. 사탑이 있는 미라콜리 광장까지는 버스를 타면 금방 간다는데, 버스 노선도 잘 모르겠고, 영어 표지판도 안 보인다. 주변에 물어보니 20~30분 정도 걸린다고 해서 날씨도 좋은 김에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마침 상점가를 지나기 때문에 눈요깃거리도 많다. 그런데 목적이 쇼핑이 아니어서 그냥 훑고 지나가다 보니, 오히려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남성 패션 상점이 많구나!”

일반적으로 옷, 구두, 액세서리와 같은 용품은 여성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닌가? 그런데 이 길가에는 남성 상점의 비율이 막상막하다. 순간 로마에서 본 광경이 생각났다.

로마에서 이틀간의 꽉 찬 투어를 마치고, 토요일 하루는 비워놓았다. 오전에는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에 다시 가서 내부를 찬찬히 살펴보고, 오후에는 스페인 광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스페인 광장 앞 콘도티 거리는 유명한 명품 가(街)다. 프라다, 페라가모, 구찌 같은 이탈리아의 대표적 상표는 물론 샤넬, 루이뷔통 등 세계적 명품 가게들이 즐비하다.

프라다 제품 아울렛 /사진=김홍선
마침 새해 연휴는 연중 가장 큰 세일 기간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거리에 나왔다. 그런데 거리 초입에 길게 줄을 서 있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 ‘몽클레어(Montclair)’라는 한국에서도 꽤 고가 명품으로 취급받는다는 옷 가게다. 흥미롭게도 줄을 선 사람들을 보니 남성이 압도적이다. 여성을 따라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옷을 사러 온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남성들이 줄을 서 있다면, 새로 나온 전자제품이나 게임기, 아니면 운동 경기가 아니던가? 자기 옷을 사기 위해 줄을 선 남성들의 모습이 진풍경으로 와 닿았다.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 남성의 패션 감각은 상대적으로 뛰어나다는 인상을 받았다. 색의 배합이나 개성 있는 스타일이 눈에 띄었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중장년 남성분이 머플러나 모자 하나를 쓰더라도, ‘멋지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가죽 제품은 남성용이 많다. 이탈리아 남성들이 유난히 패션을 좋아하는 건가?

파리에서 만난 두 멋쟁이 여성

파리는 패션의 도시다. 허언(虛言)은 아닌 것 같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마주친 일반 시민으로부터 느낀 솔직한 인상이었다. 괜히 ‘파리’라고 하니까 선입견을 품은 건 아닌지 스스로 자문해 보았지만, 전반적으로 옷이나 화장, 머리 모양이 화려하지는 않으면서도 세련미가 있어 보인다. 그중에서도 파리에서 만난 두 여성은 아직도 또렷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파리 오르셰미술관 /사진=김홍선
• 파리 시내에서 택시를 탔다. 운전기사가 중년 여성인데, 그분의 모습을 뒷자리에서 슬쩍 보고 깜짝 놀랐다. 캐주얼한 니트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은색 머리를 단정하게 매고, 이국적인 두툼한 안경을 쓰고, 멋진 팔찌와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배우 ‘카트리느 드느브’ 같다. 아내와 나는 눈짓을 하면서, 찔끔찔끔 바라보았다. 내가 평생 만났던 택시 운전사 중에 가장 멋쟁이였다.

• 파리의 ‘마레’ 지구는 강남의 ‘가로수길’처럼 직접 기획하고 만들어서 파는 작은 부티크 스타일 가게가 많다. 그중에 수제(hand-made)로 보이는 액세서리 가게에 들어갔다. 상점 주인은 영어도 잘하고 활달한 성격의 할머니였다. 그런데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패션이 보통 아니다. 평상복에 젊은이들이 즐겨 신는 부츠, 독특한 액세서리. 할머니가 저렇게 멋진 패션으로 차려입고 밝고 명랑하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이 들수록 화사하게 차려입으라고 하지 않는가?


위의 두 여성분, 길에서 만난 보통 사람들은 사치스러운 명품으로 치장한 건 아니었다. 나도 유명한 명품은 적어도 식별할 줄 안다. 단지 그들은 자신에게 맞는 패션을 했을 뿐이다. 주위 환경, 날씨, 분위기와 어울리는 은은한 패션이 훨씬 고상하다.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피렌체의 두오모성당 /사진=김홍선
파리 공항에서 비행기 출국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어느 젊은 중국 여성이 내 앞을 지나가는데, 언뜻 보아도 명품으로 온몸을 두르고 있었다. 루이뷔통 가방, 샤넬 목걸이, 나머지도 명품처럼 보인다. 유명한 상표는 일단 로고가 크고 번쩍거려서 멀리서도 알 수 있다. 아마도 신 나는 ‘쇼핑 여행’이었나 보다. 그런데 그분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명품들이 머리 모양이나 행동거지와 왜 그런지 안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내 판단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그러나 명품을 두른다고 멋쟁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발견하고 멋을 만들어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특히 개성이 중요하고, 자신의 차별화가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미켈란젤로는 조각 작업을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정의를 내리면서, “형상을 가두어놓고 있는 대리석으로부터 그 형상을 해방한다.”라는 말을 했다. 역시 천재답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멋은 자기에게 내재하고 있는 보석을 찾아내서 드러내는 과정이 아닐까? 그렇다면 비싸고 유명한 명품으로 치장하기 이전에, 자신을 들여다보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파리 사람들이 패션 감각이 있는 이유가 어린 시절부터 미술관에 많이 가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술가들이 표현한 미(美)를 보고 체험하면서, 화장 하나, 옷 하나에도 부지불식간 신경을 쓰게 된다는 얘기다. 멋 내는 것도 많이 보고, 느끼고, 훈련이 필요하다는 의미 있는 지적이다.

솔직히 나는 패션을 잘 모르고 소질도 없다. 그러나 이번 여행 중에 자신의 멋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멋은 돈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가치를 들여다보고 드러내기 위한 노력에 달려있다. 내가 만났던 멋쟁이들은 기본에 충실했다. 멋은 남에게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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