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패션 상점이 많구나!”
일반적으로 옷, 구두, 액세서리와 같은 용품은 여성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닌가? 그런데 이 길가에는 남성 상점의 비율이 막상막하다. 순간 로마에서 본 광경이 생각났다.
로마에서 이틀간의 꽉 찬 투어를 마치고, 토요일 하루는 비워놓았다. 오전에는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에 다시 가서 내부를 찬찬히 살펴보고, 오후에는 스페인 광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스페인 광장 앞 콘도티 거리는 유명한 명품 가(街)다. 프라다, 페라가모, 구찌 같은 이탈리아의 대표적 상표는 물론 샤넬, 루이뷔통 등 세계적 명품 가게들이 즐비하다.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 남성의 패션 감각은 상대적으로 뛰어나다는 인상을 받았다. 색의 배합이나 개성 있는 스타일이 눈에 띄었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중장년 남성분이 머플러나 모자 하나를 쓰더라도, ‘멋지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가죽 제품은 남성용이 많다. 이탈리아 남성들이 유난히 패션을 좋아하는 건가?
파리에서 만난 두 멋쟁이 여성
파리는 패션의 도시다. 허언(虛言)은 아닌 것 같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마주친 일반 시민으로부터 느낀 솔직한 인상이었다. 괜히 ‘파리’라고 하니까 선입견을 품은 건 아닌지 스스로 자문해 보았지만, 전반적으로 옷이나 화장, 머리 모양이 화려하지는 않으면서도 세련미가 있어 보인다. 그중에서도 파리에서 만난 두 여성은 아직도 또렷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 파리의 ‘마레’ 지구는 강남의 ‘가로수길’처럼 직접 기획하고 만들어서 파는 작은 부티크 스타일 가게가 많다. 그중에 수제(hand-made)로 보이는 액세서리 가게에 들어갔다. 상점 주인은 영어도 잘하고 활달한 성격의 할머니였다. 그런데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패션이 보통 아니다. 평상복에 젊은이들이 즐겨 신는 부츠, 독특한 액세서리. 할머니가 저렇게 멋진 패션으로 차려입고 밝고 명랑하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이 들수록 화사하게 차려입으라고 하지 않는가?
위의 두 여성분, 길에서 만난 보통 사람들은 사치스러운 명품으로 치장한 건 아니었다. 나도 유명한 명품은 적어도 식별할 줄 안다. 단지 그들은 자신에게 맞는 패션을 했을 뿐이다. 주위 환경, 날씨, 분위기와 어울리는 은은한 패션이 훨씬 고상하다.
물론 내 판단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그러나 명품을 두른다고 멋쟁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발견하고 멋을 만들어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특히 개성이 중요하고, 자신의 차별화가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미켈란젤로는 조각 작업을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정의를 내리면서, “형상을 가두어놓고 있는 대리석으로부터 그 형상을 해방한다.”라는 말을 했다. 역시 천재답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멋은 자기에게 내재하고 있는 보석을 찾아내서 드러내는 과정이 아닐까? 그렇다면 비싸고 유명한 명품으로 치장하기 이전에, 자신을 들여다보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파리 사람들이 패션 감각이 있는 이유가 어린 시절부터 미술관에 많이 가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술가들이 표현한 미(美)를 보고 체험하면서, 화장 하나, 옷 하나에도 부지불식간 신경을 쓰게 된다는 얘기다. 멋 내는 것도 많이 보고, 느끼고, 훈련이 필요하다는 의미 있는 지적이다.
솔직히 나는 패션을 잘 모르고 소질도 없다. 그러나 이번 여행 중에 자신의 멋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멋은 돈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가치를 들여다보고 드러내기 위한 노력에 달려있다. 내가 만났던 멋쟁이들은 기본에 충실했다. 멋은 남에게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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