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사세요, 계란. 아, 이분은 해마다 공연을 하도 보셔서 어떻게 사야할지 다 아셔. 자~ 몇 개 드릴까요?"
연기력 충만한 여배우의 '완벽한 능청'은 공연 내내 객석의 심장을 쥐락펴락했다. 흰 천을 휙 하고 뒤집어쓰는 순간 다섯 살 난 꼬마가 되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엄마를 연기한다. 갑자기 벽장 속 요정이 됐다가 요정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 노인이 되기도 한다.
1인 32역을 펼치며 2시간 내내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한 주인공은 바로 연극배우이자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인 김성녀(64). 뮤지컬 모노드라마를 표방한 '김성녀의 벽속의 요정'이 올해로 10년째 무대에 올랐다. 10년 전 의상 그대로 입고 펼치는 그의 무대는 세월과 함께 더욱 농익어 가슴을 울리는 '힐링 공연'의 진수를 맛보게 했다.
내용은 이렇다. 한국전쟁 중에 이데올로기 대립에 몰린 한 남자는 비극적인 최후 대신 벽 속에 숨어 요정이 되는 길을 택한다. 모습은 드러내지 않은 채 그저 목소리로만 아내와 딸을 만난다. 어린 딸에게 꿈을 심어주는 진짜 요정이자 둘도 없는 친구로,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는 수호신으로 존재한다. 남자는 마을사람들을 위기에서 구하고 토지를 나눠주었지만 공산당에 협조했다는 죄가 되어 반정부인사로 의심을 받고 수배령까지 내려져 결국 40년간 벽 속에서 살아간다. 스페인 내전 당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원작을 배삼식 작가가 우리 역사와 접목해 각색을, 김성녀의 남편인 손진책 극단 미추 대표 겸 예술감독이 연출했다.
'벽속의 요정'은 '모노드라마'란 무엇인지, '연극'이 무엇이고 '배우'가 도대체 무얼 하는 사람인지를 숨김없이 온전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번 달 꼭 한편의 공연을 봐야한다면 단연코 이 명작을 택하시라. 티켓은 2만~5만원.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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