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책보면 안돼요?"··· 대한민국 학교 디자인 다시 하기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 2014.02.08 06:48

[Book] '공간이 아이를 바꾼다'··· 21세기 아이들, '소통하는 공간'서 가르치자

'학교건물' 하면 떠오르는 것은 직사각형 콘크리트 건물에 시멘트 바닥, 통로의 기능만 하는 좁고 긴 복도다. 한국의 보통 학생들이 하루 4~5시간, 많게는 10시간도 넘게 지내는 학교의 모습이다. 초·중·고교 12년 시절을 이런 곳에서 보내게 된다.

초등학교 6년을 그렇게 보내고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교실환경은 똑같다고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아주 똑같지만은 않았다. 기자가 다닌 중학교는 무척 작은 편이었지만 교문을 들어서면 바로 잔디가 펼쳐져 있었다. 부잣집 너른 앞마당정도 크기였지만 3년간 마주한 그 정원은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 정겹고 고마운 존재였다. 우리학교가 자랑스러운 여러 이유 중에 이 정원은 내게 늘 우선순위였다. 사람이나 사물이 아닌 '정원'이라는 '공간'이 준 정서적 위안은 그렇게 컸다.

언제부턴가 집안 인테리어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인체공학적 가구나 친환경 공간, 안락한 카페 등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런데 유독 변화가 더딘 곳이 있다. 바로 학교다.

근대 교육의 목표는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길들여 표준화시키는 것'이었다. 국가는 교육과 법을 통해 사회를 통제했고,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은 학교, 군대, 감옥이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푸코는 "공간을 구분하고 규율을 강제하는 학교는 군대나 감옥과 같이 피감시자와 감시자 사이에 '권력의 불균형'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간 학생들은 죄수처럼 온갖 감시와 통제 속에서 규율에 길들여지고 순응하게 만드는 교육을 받았다. 그 결과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선생님이,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현실'에 이르게 된 것이다.

마침 고마운 책 한 권이 나왔다. 경관·색채 디자이너이자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인 김경인 저자가 쓴 '공간이 아이를 바꾼다'이다. 이 책은 바람직한 양육과 올바른 교육의 해답을 '공간과 디자인'에서 찾는다. 대한민국 교육 공간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는 공간에서부터 행복과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2008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문화로 행복한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한 저자의 경험을 중심으로 풀었다.

책 내용 가운데 '학교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보통 학교 도서관을 생각하면 '읽을 책이 없거나 딱딱하고 엄숙한 곳'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런 곳에서 만약 누운 채로 뒹굴면서 책을 보는 학생이 있다면 사서는 분명히 똑바로 앉아서 보라고 야단을 칠 것이다. 그런데 부산 신선초등학교는 정반대다. 누워서 책 보던 아이들이 교장 선생님이 들어오자 벌떡 일어난다. 그 모습을 본 교장선생님은 웃으며 "괜찮아, 누워서 봐"라고 말한다.

저자는 "아이들이 책과 친해질 수 있게 하려면, 도서관이라는 공간과 먼저 친해져야 한다"며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은 생활 속에서 독서습관이 자리 잡도록 환경이 조성되지 않아서일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창의력을 발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소통'이다. 그리고 소통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공간'이다.


토론과 논쟁을 통해 소통하는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도서관 '예시바'(Yeshivah)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활기차고 시끄러운 도서관으로 유명한데, 책상이 두 명 이상 서로 마주 보도록 놓여 있어, 혼자 공부할 수 없는 구조가 특징이다. 우리가 도서관에서 홀로 '조용히' 공부하는 것과는 달리, 유대인들은 책상 위에 책을 쌓아놓고 여러 사람들과 토론하고 논쟁하며 배움을 확장시킨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빌 게이츠,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 세계적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발명왕 에디슨,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페이스북의 CEO 마크 주커버그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 역시 유대인이다.

이처럼 공간과 환경이 사람을 완성시켜 간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하지만 그런 환경을 조성하는 데는 더디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아이들의 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해야한다고 강조한다. "학교 디자인은 하나의 '작은 사회'를 디자인하는 것과 같다"며 "기존 환경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각 공간에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 철학을 고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험을 잘 치는 요령이 아닌, 일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기술일 테니까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환경의 지배를 받고, 공간 속에서 삶의 근본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공간이 아이를 바꾼다=김경인 지음. 중앙북스 펴냄. 264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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