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라의 초콜릿박스]시험을 위한 시험을 치르는 나라

머니투데이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 2014.02.05 06:29
처음 미국 피바디 예비학교에 입학을 하고 치른 실기 시험날, 난 한국에서 오랫동안 레슨을 받으며 연습해왔던 곡을 제법 능숙하게 연주했다. 심사위원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시험을 잘 치렀으니 이제 그만 나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내게 악보를 하나 주었다. 그러더니 그 악보를 보고 연주를 하란다. 생전 처음 보는 악보를 보고 난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날 난 초견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에서 낙제점수를 받았다. 그 경험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남아있다. 내가 그 동안 해 온 것은 음악 그 자체가 아닌 당시 내가 연습하고 있던 특정 곡이었다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그 날의 경험. 나는 단지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익히고 외운 곡 하나만을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년 전쯤, 입학사정관인 나는 면접평가에서 학생들을 심사했다. 학생들은 저마다 자기소개서에 수많은 봉사활동들을 기입해 놓았다. 학생들에게는 각자 봉사활동의 진위를 묻기 위한 질문이 주어졌다. 그러데 그 중 한 학생의 대답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봉사활동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해 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봉사'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 이유인 즉 봉사활동을 하면 내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라고. 확신에 차 말하던 그녀의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

한 IT 회사의 CEO를 만났다. 그의 고민은 IT 기술자를 뽑을 때 자격증을 가진 소유자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은 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실제 장비를 만지고 다뤄야 하는 기술자들이 시험에 나올 문제만을 달달 외워서 자격증을 딴다는 것이다. 그래서 취업을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기술자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대학과 취업의 문턱이 높다는 현실이 반영된 왜곡된 사회현상일까? 그럼에도 시험을 위한 시험을 치르고 봉사활동 점수를 따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이들의 눈망울이 과연 봉사활동을 '주는 것이 아닌 받는 것'이라고 표현하던 그 아이의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시험에 나오는 것만 공부한다" "토익은 기술이다" 라는 식의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광고가 참으로 씁쓸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베스트 클릭

  1. 1 유명 여성골퍼, 코치와 불륜…"침대 위 뽀뽀 영상도" 아내의 폭로
  2. 2 선우은숙 친언니 앞에서…"유영재, 속옷만 입고 다녔다" 왜?
  3. 3 "무섭다" 구하라 사망 전, 비밀계정에 글+버닝썬 핵심 인물에 전화
  4. 4 '이혼' 최동석, 박지윤 저격?… "月 카드값 4500, 과소비 아니냐" 의미심장
  5. 5 김호중 "돈도 없는 XX놈"…건물주 용역과 몸싸움, 3년전 무슨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