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선의 유럽여행기]이탈리아에만 없는 것은?

머니투데이 김홍선  | 2014.02.02 10:20

<2>스타벅스 없어도 커피맛은 최고! 젤라토 파는 할아버지 "손님얼굴 보고 예술적교감"

편집자주 | 필자는 23년간 IT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벤처 기업가로, 전문경영인으로서 종사한 IT 전문가다. '누가 미래를 가질 것인가?'라는 저서도 출간했다. 그는 최근 7년간 몸 담았던 안랩의 CEO를 그만 두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2막을 준비하면서 그는 최근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유럽여행이야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고, 또 전문가들의 여행기도 많다. IT 경영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여행의 단상은 어떨까. 바쁜 일상으로 출장 외에 여유있는 여행을 꿈꿀 수 없는 CEO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쯤으로 시리즈를 연재한다. 여행경로는 로마에서 시작해 나폴리-피렌체-베니스-밀라노-파리까지. 20일간의 여정이다.

피렌체에서 유명한 커피 바(bar)/사진=김홍선
정답은 스타벅스(Starbucks)다. 스타벅스 뿐이겠는가? 이탈리아에는 커피 전문 체인점이 없다. 서울 어느 구석에서도 눈만 돌리면 볼 수 있는 커피 브랜드를 발견할 수 없었다.

판교 테크노밸리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가장 빨리 입주해서 경쟁하는 상점이 커피 전문점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한 적이 있다. 식당이 충분치 않음에도 이미 10개가 넘는 커피 브랜드가 들어 왔으니까. 그러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5대 도시를 다녔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익숙한 브랜드의 상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작은 도시에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렇다고, 커피를 마시지 않는가? 그 반대다. 커피를 정말 사랑한다. 곳곳에 카페 혹은 바(bar)가 눈에 띈다. 바(bar)는 우리가 생각하는 술집과는 개념이 좀 다르다. 물론 바에서는 와인이나 칵테일과 같은 주류도 판다. 그러나, 대낮에는 커피 손님이 대부분이다. 저녁 시간에는 올리브 몇 알을 안주 삼아 선 채로 와인 한잔 나누는 사람들이 많다.

바(bar)의 시스템은 다소 생소하다. 커피를 마시려면 일단 카운터에 돈부터 내야 한다. 커피를 주문하면 어디에서 마실 것인가를 물어본다. 자리에 앉기만 하면 몇 배의 테이블 차지(table charge)가 붙는다. 이탈리아 현지인에 따르면 오래 수다를 떨고 싶을 경우, 아예 1-2시간 이상 앉아 있을 각오로 테이블에 앉는다고 한다. 그냥 커피 한잔이 마시고 싶으면 ‘스탠딩(standing)’을 택한다. 커피값은 가장 기본인 에스프레소가 1.30 유로(euro)이니 비싼 편은 아니다.

스탠딩은 말 그대로 서서 먹는 것이다. 한국의 바처럼 혼자 앉는 의자도 없다. 줄도 따로 없다. 자리가 비면 그냥 비집고 들어간다. 바리스타에게 영수증을 보여주고 눈을 맞추면, 바리스타는 차 받침을 내 앞에 놓는다. 내 주문을 받았다는 확인의 표시다. 커피가 만들어지면 내 앞에 가져다 놓는다. 말쑥한 정장이 바리스타의 유니폼이다. 손님들과도 서로 아는 척을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을 보니 단골 고객인가 보다. 바리스타가 커피 문화의 인격적 아이콘으로 느껴졌다.

스탠딩 드링크의 문화가 처음에는 이상했다. 순서도 따로 없어서 무질서한 것처럼 느낄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예 돈을 더 내고 편하게 자리를 차지하든지, 커피만 즐기든지, 손님에게 선택권이 있다. 땅덩어리가 작은 우리 나라에서도 커피 사랴, 자리 찾으랴 눈치보지 않는가? 이제는 테이크아웃(take-out)의 미국식 문화가 익숙해졌지만, 혼자서 커피 한잔 음미하는 이탈리아 식 바(bar) 문화도 다른 느낌이다. 서울에도 그런 상점이 있으면 어떨까?

가장 오래된 젤라토 가게(1890년)/사진=김홍선
이탈리아 커피 맛의 매력

무엇보다 내가 반한 것은 커피의 맛이다. 평소 카푸치노를 즐겨 마셨기 때문에, 나름대로 카푸치노의 맛을 잘 안다고 자부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맛본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에 돌아와서 그 좋아했던 카푸치노를 찾지 않을 정도다.

에스프레소(Espresso)는 평소에 안 마셨다. 양도 조금이고 맛도 쓴 것을 왜 비싼 돈 주고 마시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문외한이었다. 그런데,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설탕을 많이 넣고 먹어 보니, 그 매력이 와 닿았다. 진한 에스프레소를 입에 담았을 때 온 몸에 퍼지는 느낌은 새로운 체험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는 가장 싼 소위 ‘기본 커피’다. 작업복을 입은 분들이 에스프레소 한 잔씩 맛있게 마시고 나서 퇴근하는 광경을 보았다. 마치 우리가 퇴근 길에 포장마차에서 한 잔 하듯이... 우리가 즐겨 찾는 미국식 커피인 아메리카노는 메뉴에서 보지 못했다.


그나저나 도대체 왜 맛이 다를까? 일단 이탈리아 커피는 카페인 함량이 적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저녁 시간에 커피 한 잔을 해도 잠을 자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과연 카페인이 차이점일까? 무언가 비법은 있다. 유명한 가게는 확실히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이에 대해 궁리해 보았는데, 우유가 원인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라테’는 이탈리아어로 우유를 의미한다. 그래서, 커피 주문할 때 그냥 라테 달라고 하면 더운 우유를 준다. ‘카페 라테’라고 정확히 얘기해야 한다. 바로 그 라테 즉 우유가 그냥 먹어도 맛이 있었다. 혹시 우유 자체가 다르거나, 우유를 다루는 기법이 다른 게 아닐까? 아니면 커피 기계나 바리스타의 노하우 차이일까?

정답은 모르겠다. 유난히 이탈리아 커피가 내 입맛에만 잘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커피의 맛이 달랐고 그 매력에 푹 빠졌던 여행이었다. 단순히 커피 맛이 아니라 그 분위기, 역사, 문화를 같이 즐겼다고 할 수 있다.

맛과 인격의 만남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스페인 광장 근처에는 1760년부터 있었다는 ‘카페 그레코(Cafe Greco)’가 있다. 스페인 광장 부근에는 본래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많아서, 같이 어울리곤 했다고 한다. 이 장소에서 괴테, 스탕달과 같은 문인들이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문학을 논했을 것을 생각하니, 커피 향기 속에 그런 인물들의 체취가 담겨있는 것 같다. 단순한 기호식품에 머물렀던 커피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로 받아들여졌다. 색다른 문화 체험이다.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회장은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신화’에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는 행위를 하나의 심포니로 승화시켰고 그것은 너무나 근사했다’라고 회고한다. 이탈리아의 커피 문화에 깊이 심취한 것이 사업적 의지로 작용했나 보다.

한번은 피렌체에서 유명하다는 젤라토(Gelato) 가게에 들른 적이 있다. 눈을 크게 뜨고 찾지 않으면 지나쳐 지나갈 정도로 아주 작은 가게였는데,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자기가 만든 젤라토라며 직접 한 스푼 떠 준다. 그러더니, 우리의 표정을 살피면서, 멋진 말을 했다.

“나는 단지 돈 벌려고 이 장사를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준 젤라토를 먹을 때 손님들의 얼굴을 보면서 예술적 교감을 느낀다. 그런 보람에 이 장사를 평생하고 있다.”
아내가 한 입 뜨고 달콤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 표정은 어떠냐?”고 묻자, 그 할아버지는 싱긋이 웃는다. 먹고 마시는 행위에서 이렇게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니, 진정으로 음식이 고급문화로 승화되어 가는 느낌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맛집을 찾아 다닌다. 그러나, 단순히 미각적 만족에 머무르면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 속에 담긴 역사와 체취, 문화가 합쳐질 때, 차원이 다른 감동을 느끼게 되고, 그것은 비록 세월이 지나도 기억 속에 또렷하다. 세계적 상품 브랜드가 따라오지 못하도록 사람을 사로잡는 비결은, 전통과 자부심이 어우러진 인격적 만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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