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총알받이 신세" 카드사 콜센터 여직원의 눈물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 2014.01.23 05:48
머니투데이는 22일 오후 각 신용카드사 콜센터를 방문했지만 콜센터의 업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내부 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사진은 22일 오후 서울 시내의 국민은행 한 영업점이 4시 이후에도 카드 재발급을 받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는 모습. KB국민은행은 22일부터 원활한 카드 관련 업무 처리를 위해 전국 모든 영업점의 영업시간을 오후 6시까지 일부 영업점은 9시까지 연장한다고 밝혔다./사진=뉴스1
22일 오후 1시쯤 서울 용산구 한강로의 NH농협중앙회 콜센터. 지난 19일 신용카드 고객정보가 유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이곳은 하루하루가 전쟁터다.

한 층당 150석 이상 마련된 부스에 빼곡히 들어찬 상담원들은 낮은 칸막이로 분리된 좁은 자리에서 헤드폰을 끼고 앉아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 유니폼을 입은 정규직 직원들은 사복을 입을 상담원들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지시했다. 마치 전쟁을 지휘하는 지휘관 같았다.

상담원들은 한사코 인터뷰를 피하면서도 화장실과 복도에 모여 고충을 토로했다. 한 30대 여성은 "원래 내 담당도 아닌데 카드 정보유출 항의전화를 다 당겨 받으라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동료 직원들도 갑자기 늘어난 업무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했다.

비상근무체제로 돌입한 KB국민카드와 롯데카드, NH농협은행의 콜센터는 갑옷을 두른 장수의 겉으로 드러난 맨살과 같다. 고객들의 욕설 섞인 항의와 민원을 오로지 죄송하다는 말로 총알받이처럼 최일선에서 받아내야 한다. 이번 사건이 낳은 또 다른 피해자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카드사 콜센터는 지금 '6.25 피란' 방불케…

서울 종로구 내수동 KB국민카드 광화문점에 위치한 콜센터도 비상사태였다. 본사 정규직원들까지 콜센터에 대거 투입됐지만 쉴 틈이 없다. 상담직원들의 성토대회가 열린 곳은 역시나 '화장실'.

이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허리춤을 쥐어잡고 화장실로 피신해 잠깐의 여유를 누렸다. 한 여성은 "어제에 이어 밤샘 야근이다. 잠 못 자고 야근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다른 직원은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콜 받기 싫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20대 여성은 "딱 봐도 나보다 훨씬 어린 여학생이 '야 내 정보 유출됐어. 책임져. 연체료 네가 내라'는 등 반말을 해대는데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며 "업무시간이 연장돼 밤 10시까지 일해야 하는데 점심시간, 휴게시간도 없어지고 도시락이 배달된다. 다들 다크서클이 심해져서 눈물 글썽이며 도시락 배급받는데 6·25 피란 때 같다. 완전 초상집이다"고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콜센터 상담사들이 이번 사고로 인한 업무 과부하와 감정노동의 고충을 털어놓을 곳은 거의 없다. 개방된 부스에서 상급자의 감시 하에 업무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 대부분의 직원은 "진상고객은 많지만 함부로 고충을 토로했다가 불이익이 올까 봐 조심스럽다. 무엇보다 업무가 폭주해 시간여유가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들의 말 못할 고충은 온라인상에서 익명의 힘을 빌려 드러나고 있다. 20일 한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정보유출된 카드사 콜센터 직원입니다'는 글에서 작성자는 "콜센터라고 해봐야 카드사 정직원도 아니고 그냥 같이 (정보가)유출된 사람일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21일에 게시된 다른 글에서는 "저희 상담사들도 기다리고 계신 분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받고자 거의 쉬지 않고 일을 한다"며 "식사시간도 줄여가면서 마음 편히 화장실도 못가고서 저녁에는 음료나 빵 쪼가리를 전화받는 틈틈이 먹어가며 퇴근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감정노동자에게도 인격이 있고, 소중한 가족이 연인이 친구가 있다"며 "고객님과 같은 사람이란 걸 헤아려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콜센터 노동자들 인권 보장할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금융노동자들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에 소속될 수 있지만 현재 대다수의 카드사 콜센터 상담사들은 파견 비정규직으로서 확고한 노동조합이나 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아 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형편이다.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에서 2012년 실시한 콜센터 상담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담사들이 고객으로부터 받는 폭언은 월 평균 15회, 성희롱 횟수는 1.16회로 나타났다. 조사인원 전체 310명 중 221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그중 80.1%가 고도 우울 증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계 종사자들은 이들 콜센터 직원을 죄인처럼 취급하거나 '화풀이'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성낙조 KB국민은행 노동조합 위원장은 "이번 사태는 낙하산 경영진들의 관치경영과 수익중심의 성과주의 운영, 금융당국의 관리소홀이 불러온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콜센터 상담사와 창구직원이 모든 유탄을 맞고 있다"며 "국민들께 죄송하지만 죄 없는 직원들에게 과도한 상처를 주는 언행은 삼가 달라"고 호소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콜센터 상담사들은 짧은 시간에 긴장된 상태에서 목표량 콜수를 채워야 하고 업무시간 내내 상급자의 감시에 시달리는 한편 고객의 폭언에 무방비하게 노출돼있다"며 "이들의 열악한 업무환경에 대한 개선을 요구할 창구와 노동조합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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