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과 기술경쟁 이겼는데" 600억 대박 날릴뻔한 사연

머니투데이 강경래 기자 | 2014.01.13 13:47

박희재 에스엔유 대표 "건국 이래 첫 韓기술로 핵심장비 상용화"

"금융권이 계약이행보증을 서주지 않아 600억원 규모의 수주가 물거품이 될 뻔 했죠.“

디스플레이 장비회사 에스엔유프리시젼 박희재 대표는 2013년을 뒤돌아보면 아직도 '당시의 막막함과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하지만 다행히 우여곡절 끝에 2013년은 에스엔유가 그동안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핵심장비시장을 독점해온 일본 업체들의 아성을 무너뜨린 한 해로 갈무리됐다. 박 대표와 에스엔유 임직원들의 열정과 집념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박희재 에스엔유 대표 / 촬영=홍봉진 기자
에스엔유는 박 대표가 1998년 서울대 벤처기업 1호로 세운 업체다. 현재까지도 이 회사는 액정표시장치(LCD) 측정장비 분야에선 글로벌 1위 자리를 당당히 고수하고 있다. 문제는 시장규모였다. 시장이 작다보니 연간 매출액이 수백억원 수준을 맴돌았다.

박 대표는 매출 수천억원 규모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박 대표는 LCD에 이어 OLED시장이 열릴 것으로 봤고, 당시 외산 의존도 100%의 OLED 유기증착장비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던 일본 업체들이 독점하던 시장에 대한민국의 작은 기업이 당당하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말그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시작된 것.

유기증착장비는 OLED가 스스로 빛을 내는 '자발광'을 구현하도록 기판 위에 형광물질을 정밀하게 입히는 기능을 한다. 당시 토키와 알박 등 2개 일본회사가 과점하던 이 장비는 대당 수백억원을 호가했다. 전세계 OLED 시장의 98%를 차지하는 삼성디스플레이도 해당 장비를 일본에서 수입해 써야했다.

예상됐지만, 박 대표의 '무모한' 도전은 만만치 않았다. 에스엔유는 몇 년간 국책 프로젝트 등을 통해 어렵사리 5세대 수직증착방식 유기증착장비를 개발하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일본 장비회사들이 내세운 5.5세대 수평증착방식을 채택하면서 에스엔유의 장비는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빠졌다.

박 대표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사실상 국내시장에서 외면받은 유기증착장비를 들고 이제 막 OLED 투자를 시작하려는 중국으로 향했다. 5세대 수직증착방식 장비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다수의 핵심특허를 바탕으로 중국업체들이 요구하는 장비개발에 착수했다.

중국 최대의 디스플레이 제조사인 비오이(BOE)가 첫 타깃이었다. 비오이에 데모장비를 납품한 이후 전 임직원의 25%에 달하는 50여명의 인력을 투입, 5~6개월동안 양산 안정화작업을 진행했다.


마침내 에스엔유는 지난해 4월 비오이로부터 600억원 규모의 해당장비를 수주하게 됐다. 창사 이래 최대의 수주였고, 바로 일본 업체의 아성을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박 대표는 "건국 이래 한국 기술로는 처음 핵심장비를 상용화한 사례였다"고 말했다. 한 여성 엔지니어가 중국 현지에 가기 위해 결혼을 서둘러 진행하는 등 직원들의 헌신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박 대표는 덧붙였다.

하지만 수주 이후에도 위기는 계속 찾아왔다. 장비 공급계약을 체결한 직후 박 대표는 국내 은행들의 문을 두드렸다. 계약이행보증이 필요해서였다. 하지만 은행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연간 매출액에 가까운 대형 계약을 맺었지만, 어느 은행 하나도 중소기업에 기꺼이 보증을 서주려하지 않았다.

어렵게 어렵게 겨우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보증을 받아 계약을 이행할 수 있었다. 박 대표가 아직도 틈날 때마다 "에스엔유와 같은 중소기업 성공사례가 이어지려면 우리나라 금융권이 변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한번 물꼬가 터지자 수주가 잇따르고 있다. 에스엔유는 바이오에 이어 비전옥스(Visionox)에도 해당 장비를 공급키로 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산된다.

박 대표는 최근 200여명의 임직원 모두의 이름을 담은 동판을 만들고 있다. 유기증착장비 1호기 출하를 기념, 충남 아산 본사에 세우기 위해서다. "회사의 보물 1호가 창업 이듬해 스웨덴에 처음 제품을 수출해 받은 대금 가운데 1달러 지폐를 인출해 만든 표구다. 이 동판은 1달러 지폐와 함께 회사의 또하나의 보물로 간직될 것이다."

박 대표는 지난해 4월부터 국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불리는 '연구·개발(R&D)전략기획단' 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직도 이어가고 있다.

"3개의 명함이 모두 중요하고 의미가 있지만, 그래도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태어나 외국에서 돈을 벌어와 국가에 이바지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 대표의 역할이 가장 힘들지만, 보람 있는 일"이라고 말하며 박 대표의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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