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캔버스에 그린 예술혼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 2014.01.07 20:40

[이언주 기자의 공연 박스오피스] 연극 '레드'··· 세대 간 이야기, 우리시대상 투영해

연극 '레드'에서 마크 로스코를 연기한 강신일 배우 /사진제공=신시컴퍼니
"자식은 아버지를 몰아내야 해. 존경하지만 살해해야 하는 거야." (50대 화가, 마크 로스코)
"선생님과 동료는 입체파와 초현실주의자들을 몰아내셨죠, 그리고 이제 선생님 차례가 되셨으니 그만 퇴장하세요. 왜냐면 팝아트가 추상표현주의를 몰아내 버렸거든요. 지금은 그들의 시대가 왔어요!" (20대 조수, 켄)

서로 한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는 팽팽한 논쟁. 목에 핏대를 세운 두 사람의 대화에 불이 붙었다. 사소한 의견차이가 아닌, 시대와 세대를 대변한 채 항변하고 있다. 1940년대 미국을 대표했던 추상표현주의 화가 로스코는 말로는 아버지를 몰아내야 한다지만, 정작 젊은 세대에 밀려 나는 것이 분하고 억울하다. 동시대 다른 화가들에게 밀리는 것도 화가 난다. 그러던 중 뉴욕 시내의 시그램 빌딩(미스 반데 로에가 지은 대표적 근대건축물) 꼭대기 고급 레스토랑인 '포시즌즈 레스토랑'을 장식할 대형 작품을 의뢰받는다. 압도적인 벽화를 그리고 말겠다고 자신하지만 사실은 선금이 7000달러에 달하는 비싼 제안에 욕심이 난 것이다.

로스코도 소신을 지키며 열정적으로 작업하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덧 화가로서의 자존심보다는 돈과 명예에 굴복하고 마는 부패한 뒷방 노인이 되어버렸고, 조수인 켄을 통해 이 불편한 진실을 들여다보게 된다.

두 사람의 대화가 중심인 연극 '레드'는 문득 '늙음'과 '낡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최근 한 '어른'의 말씀이 화제다. 성찰하는 지성의 면모를 가슴 뭉클하게 느끼게 해준 그 인터뷰기사는 SNS를 통해 2만여 건이 인용됐고, 수 천 개의 댓글이 달리면서 그야말로 뜨거운 공감을 이끌어냈다. 세대 간의 소통 부재,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 데 대한 젊은 세대들의 분노와 이 시대 큰 어른의 부재에 대한 목마름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예술을 소재로 한 이 연극은 궁극적으로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모든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결국 '세대 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연극 '레드'에서 관객을 향해 정면으로 펼쳐진 흰 캔버스 위에 경쾌한 클래식 음악에 맞춰 큰 붓을 들고 두 사람이 빠르게 밑칠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신시컴퍼니
결국 로스코는 치열한 내적 갈등과 고민 끝에 시그램 빌딩의 작업을 그만두기로 한다. 선금을 돌려보내고 스스로 계약을 파기함으로써 자신이 부여한 작품의 순결성과 화가로써의 자존심을 지켰다. 연극은 로스코가 붉은 캔버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서 막을 내린다. 소신껏 자신의 몫을 다하고, 부끄럽지 않은 뒷모습을 보여준 로스코를 보며 우리시대 어른들은 어디로 걷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머지않아 우리도 어른이 되어야 하기에···.

이 작품은 2009년 런던 초연 이후 2010년 브로드웨이로 건너가 제64회 토니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연출상, 무대디자인상 등 6개 부문을 휩쓸었다. 2011년 국내 초연당시 배우 강신일(로스코)·강필석(켄)은 불꽃 튀는 연기로 극찬을 받았고, 이번 앙코르 공연에는 두 사람과 켄 역에 한지상이 합류했다. 오는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일반석 5만원, 자유석 3만5000원. 문의 (02)577-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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