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 동료는 입체파와 초현실주의자들을 몰아내셨죠, 그리고 이제 선생님 차례가 되셨으니 그만 퇴장하세요. 왜냐면 팝아트가 추상표현주의를 몰아내 버렸거든요. 지금은 그들의 시대가 왔어요!" (20대 조수, 켄)
서로 한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는 팽팽한 논쟁. 목에 핏대를 세운 두 사람의 대화에 불이 붙었다. 사소한 의견차이가 아닌, 시대와 세대를 대변한 채 항변하고 있다. 1940년대 미국을 대표했던 추상표현주의 화가 로스코는 말로는 아버지를 몰아내야 한다지만, 정작 젊은 세대에 밀려 나는 것이 분하고 억울하다. 동시대 다른 화가들에게 밀리는 것도 화가 난다. 그러던 중 뉴욕 시내의 시그램 빌딩(미스 반데 로에가 지은 대표적 근대건축물) 꼭대기 고급 레스토랑인 '포시즌즈 레스토랑'을 장식할 대형 작품을 의뢰받는다. 압도적인 벽화를 그리고 말겠다고 자신하지만 사실은 선금이 7000달러에 달하는 비싼 제안에 욕심이 난 것이다.
로스코도 소신을 지키며 열정적으로 작업하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덧 화가로서의 자존심보다는 돈과 명예에 굴복하고 마는 부패한 뒷방 노인이 되어버렸고, 조수인 켄을 통해 이 불편한 진실을 들여다보게 된다.
두 사람의 대화가 중심인 연극 '레드'는 문득 '늙음'과 '낡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최근 한 '어른'의 말씀이 화제다. 성찰하는 지성의 면모를 가슴 뭉클하게 느끼게 해준 그 인터뷰기사는 SNS를 통해 2만여 건이 인용됐고, 수 천 개의 댓글이 달리면서 그야말로 뜨거운 공감을 이끌어냈다. 세대 간의 소통 부재,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 데 대한 젊은 세대들의 분노와 이 시대 큰 어른의 부재에 대한 목마름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예술을 소재로 한 이 연극은 궁극적으로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모든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결국 '세대 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이 작품은 2009년 런던 초연 이후 2010년 브로드웨이로 건너가 제64회 토니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연출상, 무대디자인상 등 6개 부문을 휩쓸었다. 2011년 국내 초연당시 배우 강신일(로스코)·강필석(켄)은 불꽃 튀는 연기로 극찬을 받았고, 이번 앙코르 공연에는 두 사람과 켄 역에 한지상이 합류했다. 오는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일반석 5만원, 자유석 3만5000원. 문의 (02)577-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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