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의사 의거 82주년 기념식 8일 거행

뉴스1 제공  | 2014.01.07 14:45

일왕 폭살 시도, 일제 의열투쟁의 선봉 평가

(서울=뉴스1) 김정욱 기자 =
지난해 열린 이봉창 의사 81주기 추모식. © News1 박정호 기자

국가보훈처는 일제시대에 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투척해 우리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린 ‘이봉창의사 의거 82주년 기념식’을 8일 실시한다고 7일 밝혔다.

기념식에는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독립운동 관련단체 대표와 광복회원, 일반시민, 학생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사보고, 기념사업회장 식사(式辭) 등에 이어 서울지방보훈청장·광복회장 기념사, 헌화분향 등 순으로 진행된다.

1901년 8월10일 서울에서 출생한 이봉창은 1931년 1월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독립운동의 중심지인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그 곳에서 임시정부를 찾아간 그는 한인애국단의 김구 단장을 만나 일본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일왕 폭살계획을 세우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철공소에서 일하면서 거사를 준비하게 된다.

이봉창은 1년여의 준비를 거친 뒤 1931년 12월13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12월말 도쿄에 도착했다.

일왕 히로히토가 1932년 1월8일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봉창은 이날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상하이의 김구 단장에게 전보를 보냈다.

이봉창은 1월8일 도쿄 경시청 앞에 일왕 행렬이 나타나자 히로히토를 향해 폭탄을 투척했다.


폭탄은 일본 궁내대신이 탄 마차 옆에서 폭발해 일장기기수와 근위병이 탄 말 두 필 만을 쓰러뜨리고 일왕은 폭살시키지 못했다.

현장에서 바로 체포된 이봉창은 1932년 9월30일 도쿄 대심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932년 10월10일 오전 9시2분 이치가야형무소에서 순국했다.

그는 비록 일왕 폭살에는 실패했지만 1930년대 한국독립운동사를 장식하는 의열투쟁의 선봉으로 평가받고 있다.

1946년 김구 선생에 의해 일본에 있던 이봉창의 유해는 국내로 봉환돼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됐다. 정부에서는 이봉창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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