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개정, 조용히 웃는 승자는 '중고차 매매상'

머니투데이 세종=박재범 기자 | 2014.01.07 15:10

[박재범의 브리핑룸]

생각보다 조용했다. 한여름 난리에 비하면 12월은 참 고요했다. 세법 개정안 얘기다. 돌이켜보자. 2013년 8월 8일 정부가 세법 개정안을 내놨을 때 온 나라가 들썩였다.

'연봉 3450만원 이상의 근로소득자 세부담 증가''서민 증세'등 비판이 쏟아졌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재검토 방침을 밝히고 수습에 나섰다. 정부 발표가 있은 지 나흘만의 일이었다. 정부는 곧 수정안을 내놨다. 세부담 증가 기준선을 연봉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올린 내용이다. 정부는 그렇게 세수 4400억원을 포기했다.

논란은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아무도 안심하지 못했다. 정기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세법 심의가 진행되면 다시 불거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근로소득세의 근본틀을 바꾸는 문제였기에 정부의 걱정은 더 컸다.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 '자체를 수용하지 않으면 세법 개정 자체가 어긋나는 구도였다. 하지만 그다지 시끄럽지 않았다.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는 "물위의 백조와 같은 모습이었다"고 했다. 겉으로는 순탄한 듯 비쳤지만 물밑에선 치열한 논의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이미 한번 맞은 예방주사 덕이 컸다. 야당의 소득세 최고세율 적용구간 확대 요구를 받아준 것도 한몫했다. 사실 정부 입장에선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었다. 4700억원의 세수를 확보했다. 어찌보면 '비정상화의 정상화'로 포장할 수도 있다. 최고세율이 35%일 때는 1억5000만원 초과였는데 38% 세율이 만들어지면서 3억원 초과가 생겼다. 유예기간을 거쳐 최고세율을 적용받던 기준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반발도 많지 않다. 득실을 따지면 정부는 득이 많다. 누더기 세법으로 비판받는 음식점 의제매입세액공제 한도 설정도 그렇다. 당초 정부안보다 대폭 후퇴하긴 했지만 '한도 설정'을 한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기재부 관계자는 "첫 술에 배부를 수 있냐"고 했다.


물론 이익집단의 힘을 보여준 사례이긴 하다. 하지만 정작 실리를 챙기는 이익집단의 행보는 조용하다. 한여름 월급쟁이의 반발, 가을 음식점 업주들의 반발은 거셌지만 틀 자체를 바꾸진 못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율(15%)을 유지해줬다는 것에 '감사'하는 게 월급쟁이다. 음식점 업주들도 이제 매년 한도 하향 조정 폭이 작게 해 주면 고마워할 뿐이다.

한때 막강 위력을 선보였던 의사들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부가세가 부과되는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과 피부시술 항목을 확대하는 데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대신 실리는 조용한 곳에서 취해졌다. 음식점 업주들의 반발로 시끄러웠던 농수산물 의제매입세액공제과 달리 재활용폐자원 의제매입세액공제 축소는 논란에서 비켜 있었다.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은 재활용폐자원 의제매입세액공제율을 현행 6/106에서 3/103로 낮추고 중고자동차에 대해선 9/109에서 5/105로 축소하는 내용. 2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5/105의 공제율을 적용한 뒤 3/103의 공제율로 가기로 했다. 중고차 공제율은 현행 9/109를 유지한다. 중고차는 아예 빠진 것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번 세법 심의 결과 최대 수혜자는 중고차 매매상"이라고 했다. 이들은 각 지역의 조용한 '유지'들이다. 음식점협회, 의사협회 등이 고공 플레이를 했다면 이들은 근접 마크를 했다. 결국 지역구에 속한 국회의원들 입장에선 지역구내 중고차 매매상, 고물상 주인의 요구를 물리치기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딱히 합리적·논리적 근거는 없다. 좋게 보면 '배려'지만 다른 의미로 '비정상의 정상화'의 실패다. 힘없고 빽없는 월급쟁이들만 정상화를 강요받고 있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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