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中 꺾고 동아시아 리더가 되고 싶다면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송기용 특파원 | 2014.01.03 10:22

송기용의 北京日記

메이지유신으로 서구의 선진적인 정치법률 제도와 문화를 수용한 일본은 동양 세계에 없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 수 밖 에 없었다. 고심하던 일본의 선각자들은 중국 고전 어휘를 활용하거나 한자어 조합을 통해 단어를 만들었는데 '국가' '사회' '민주' '의회' '신문' '개인' 등 수많은 신조어가 탄생했다.

개화에 뒤졌던 조선은 물론 청나라에도 일본어 어휘들이 대량으로 도입됐다. '한자의 고향' 중국 입장에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지만 서양의 신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다. 청나라 말기 명신 장지동(張之洞)의 사례는 이런 상황을 보여준다. 결재 서류에 적혀있는 신조어들이 마뜩찮았던 장지동이 "앞으로 공식 문서에는 새로운 '명사'를 사용하지 말라"고 지시하자, 듣고 있던 한 관리가 조용히 다가와서는 "'명사'도 일본에서 건너온 단어입니다'"라고 귀띔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에 체류했던 중국인 유학생 수는 5만 명을 넘었다. 중국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쑨원(孫文), 대문호이자 사상가인 루쉰(魯迅), 무술변법의 지도자 캉유웨이(康有爲) 등 당대의 지성들이 모두 일본에서 신중국 건설의 길을 찾고자했다. 이들은 일본이 번역한 대량의 서양서적을 다시 중국어로 번역해 조국에 전파했다. 세계를 지배하던 강대국에서 '병든 노새'로 전락한 중국인들의 낡은 정신을 흔들어 깨우기 위해 일본을 등대로 활용했다. 19세기 말은 이처럼 서양문물을 신속히 받아들여 '개혁'이라는 꽃을 피우고 '근대화'라는 열매를 맺었던 일본이 명실상부하게 동아시아의 '문명리더'로서 한국과 중국을 선도했던 시기다.

하지만 일본의 리더역할은 오래가지 못했다. 자만에 빠진 일본이 스스로 던져버렸다. "우리의 불행은 이웃에 중국과 조선이라는 두 나라가 있는 것"이라며 일본이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 열강을 지향해야 한다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탈아론은 일본의 오만을 대표한다. 일본의 오판은 조선합병, 중국침략으로 이어졌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고 나서야 멈춰 섰다.


50여 년 간 잠잠하던 동아시아의 격랑이 2차 대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잠에서 깨어난 거인 중국의 부상이 갈등의 단초가 됐지만 방아쇠를 당긴 것은 명백히 일본이다. 영유권 다툼이 있는 센카쿠(尖角)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국유화를 일방적으로 선언하더니 총리가 2차 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주변국을 도발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로 대표되는 일본 보수파의 질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아베는 1일 연두소감에서 "강한 일본을 되찾기 위한 싸움이 시작됐다"며 패전국에서 벗어나 이른바 '보통국가'로 가기 위한 정책 전환을 예고했다. 특히 "시대변화를 반영해 헌법개정 논의를 심화시켜야 한다"며 군대 보유와 전쟁 참여를 금지한 평화헌법 개정 의지를 분명히 했다.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센카쿠에서 무력충돌이 벌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양국은 국가안전위원회(중국), 국가안전보장회의(일본)를 신설, 국가위기체제로의 전환에 대비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일본은 멈춰서야 한다. 동아시아를 전란으로 몰아넣은 전과가 있는 국가로서 주변국을 또다시 위기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 게다가 아베가 염원하는 존경받는 '강한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보다는 민주적 가치의 전파에서 보다 경쟁력이 있어 보인다. G2로 성장한 중국과 힘으로 정면승부하기 보다는 100여 년 전 동아시아 문명리더 역할을 재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언론을 탄압하는 등 민주가치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중국의 약점도 거기에 있어 보이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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