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電, 패스트팔로워→트렌드세터 변신…"너 자신있니?"

머니투데이 미래연구소 강상규 소장 | 2014.01.04 09:15

[i-로드]<15>애플의 밥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편집자주 | i-로드(innovation-road)는 '혁신하지 못하면 도태한다(Innovate or Die)'라는 모토하에 혁신을 이룬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살펴보고 기업이 혁신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알아보는 코너이다.

/ 그림=김현정 디자이너
# “갤럭시 기어(Galaxy Gear)로 삼성전자가 스마트워치 출시에서 애플을 이겼다.”

지난해 9월 삼성전자의 갤럭시 기어(이하 갤기어) 출시 당시, 사람들은 삼성이 스마트워치 경쟁에서 애플을 앞섰다며 상당히 놀라워했다. 특히 뉴욕타임즈, CNET 등 외신은 그동안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였던 삼성이 이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고 평했다.

하지만 많은 비평가들이 이 변신에 대해 회의적이다. 삼성의 변신 시도가 놀랍지만 확신이 가지 않는다는 태도다. 그 이유는 퍼스트 무버로서의 첫 제품인 갤기어에 대해 실망했기 때문이 아니다. 솔직히 이제 겨우 1세대 스마트워치일 뿐인 갤기어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폄하한다면, 이는 상당히 왜곡된 삐딱한 시각일 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삼성의 변신 시도 그 자체에 있다. 왜냐하면 삼성은 지난 20여년간 이건희 회장의 지휘 하에 모든 시스템을 ‘최고의 팔로워(ultimate follower)’가 되도록 구축해 왔기 때문이었다. 소위 수직적 통합(vertical integration)이라 불리는 삼성의 시스템은 전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삼성의 이런 시스템을 애플과 비교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디자인할 뿐,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의 조립은 아웃소싱으로 해결하고 관련 부품은 삼성 등으로부터 구입한다. 이에 반해, 삼성은 반도체 칩부터 LCD까지 관련 부품을 모두 생산하고 스마트폰과 TV 등 완성제품을 모두 조립한다.”

수직적 통합 전략이 삼성만큼 잘 적용된 곳은 전세계 어디에서도 찾아 보기 어렵다. 뉴욕타임즈는 서구에선 수직적 통합이 효과 대비 비용이 크고 운영하는데 무겁기(unwieldy) 때문에 적용하는데 실패했지만, 이건희 회장은 이를 삼성의 경쟁우위(competitive edge)로 판단해 삼성에 성공적으로 구축시켰다고 평가했다.

결국 삼성전자가 패스트 팔로워로서의 명성을 얻은 것은 그걸 가능하게 한 시스템 덕분이었다는 것을 뚜렷이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이 패스트 팔로워로서 얼마나 효과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뉴욕타임즈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만약 삼성이 어떤 트렌드를 포착하고 경쟁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전 세계 어떤 기업보다 더 많이 투자하고(outspend) 더 빨리 움직인다(outpace). R&D부터 제조, 마케팅까지 수직적으로 통합된, 모든 것이 갖춰진 삼성의 시스템은 경쟁 자체를 아예 없애 버린다.”

그런데 이처럼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팔로워였던 삼성이 어느날 갑자기 트렌드세터(trendsetter)로 변신하겠다고 나서자 “과연 그럴 수 있을까?”라며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 “지난 10년간 애플은 MP3 플레이어, 스마트폰, 태블릿 등 세 개의 카테고리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애플은 이 세 시장에서 초기에 결코 지배적 주자(dominant player)가 아니었다. 심지어 시장에 진입조차 하지 않았다.”


USC대학의 제라드 텔리스(Gerard Tellis) 경영학 교수는 애플이 혁신을 통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세 개의 시장에서 각각 대박을 냈지만 결코 퍼스트 무버였기 때문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애플 이전에 세 개의 카테고리엔 이미 소니(Sony)와 블랙베리(Blackberry), 휴렛팩커드(HP)가 각각 리더로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초기 리더들은 이들 카테고리가 성장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주목을 기울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은 퍼스트 무버 단계에서 멈추고 도약단계(takeoff)에 이를 때까지 지속적인 투자를 포기했다.

하지만 애플은 후발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세 개 카테고리의 미래 성장성을 충분히 인식, 지속적인 혁신과 투자를 통해 도약의 열매를 맛 본 기업이 됐다. 결국 이들 초기 리더들은 이 세 카테고리에서 경쟁에 밀리며 각각 애플의 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텔리스 교수는 애플이 새로운 카테고리에서 초기 리더들을 제칠 수 있었던 비결은 초기 리더들에겐 결여된 참을성(patience), 뚝심(persistence), 혁신성(innovation) 등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삼성에겐 속도(speed), 효율성(efficiency), 그리고 생산비용 절감(cost cutting)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특성들은 창조성(creativity)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Sony vs. Samsung: The Inside Story of Electronics Giants’ Battle for Global Supremacy』의 저자 장세진씨는 패스트 팔로워로의 시스템을 갖춘 삼성에겐 퍼스트 무버에게 요구되는 창조적 특성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한다. 마치 정교하게 잘 짜여진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던 로봇에게 이제부턴 “네가 알아서 움직여라”라고 명령하는 것과 마찬가지고나 할까.

최고의 팔로워에게 필요한 완벽한 시스템과 특성을 갖춘 삼성이 트렌드세터에게 필요한 특성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묻는다. “삼성, 너 자신 있니?”라고.

이제 삼성이 그 답을 보여줘야 한다. 갤기어에 대한 여러 혹평에 위축되지 말고 참을성과 뚝심, 혁신성을 가지고 '갤기어 II'를 출시해 도약단계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 비평가들이 예견하듯 삼성전자는 소니나 블랙베리, 휴렛팩커드의 전철을 밟으며 애플의 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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