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들 가운데서도 이런 예는 참 많다. 피에르 가르뎅은 옷을 살 형편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 의상실 앞에 서있는데 한 부인이 지나가며 옷을 어디서 샀느냐고 물었고 그는 자신이 만들었다고 답했다. 그녀는 "당신은 옷을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있나봐요"라고 했고 그에 힘입은 가르뎅은 의상실을 차려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영국의 시인 월터 스콧은 숙제조차 해가지 않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문학을 좋아했던 그는 자신이 지은 시를 한 모임에서 발표했다. 이를 우연히 들은 시인 로버트 번즈는 "꼬마야, 너는 언젠가 영국의 위대한 사람이 될 거다"라고 말했고 이에 힘입어 시인이자 소설가가 되었다. 신경숙씨의 경우 역시 반성문을 본 선생님의 지나가는 한 마디가 계기가 되어 소설가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조언을 듣는다. 우연히 들은 말이 그것 하나만은 아니었을 터. 잠재의식 속에 원하는 것, 이미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귀에 들렸을 때, 그 우연은 비로소 확고한 의미로 각인 되어지는 것이리라.
학창시절,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삶이 괴로워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져있을 무렵 홀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독일 행 비행기 안 내 옆에는 맘씨 좋게 생긴 한 아주머니가 앉아계셨다. 선교사라던 그녀는 근심에 찬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이런 저런 말을 건네시더니 대화의 끝에 "음악 하는 사람은 음악을 떠날 수 없어. 언젠간 돌아오게 되어있지. 너도 예외는 아닐 거야"라고 말했다. 이후 음악에 대해 고민할 때, 바이올린을 잠시 놓았을 때, 그리고 또다시 음악의 길로 돌아왔을 때에도 그녀의 말은 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어떤 말보다 깊이 박혀있는 그녀의 말 역시 내 내면의 목소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의 골프장은 녹록지 않았다. 실수에 실수를 거듭하고 녹초가 되어있을 무렵 파3홀에서 화산모양의 벙커가 보였다. "일부러 저기에 공을 넣는 것도 재밌겠는데요?"라고 말한 내가 공을 떨어뜨린 지점은? 맙소사! 정확하게 그곳이었다. 그린을 겨냥할 때는 그렇게 안 올라가더니. 종일 나와 '성공과 잠재의식'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던 지인은 '하하' 웃으며 "노엘라씨의 잠재의식이 아마 벙커에 집어넣길 원했을 거에요"라는 위트 섞인 말로 나를 위로했다. 아~ 셀 수 없이 많이 날려야만 했던 그날의 샷! '공연이 많아 골프는 피하고 싶어요'라는 내 구차한 변명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내 우연의 조언은 '골프'가 아니라 '음악'이었다는 위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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