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 1등급' 고3, 아버지에 맞고도 "입시 거부" 왜?

머니투데이 이슈팀 이시내 기자 | 2013.11.19 06:46

[아웃사이더 ②] "14학번이 아닌 나로 살아가는 방법"

지난 7일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를 거부한 위영서(왼쪽), 박건진(오른쪽)씨. / 사진=이시내 기자
"수능, 성공적인 인생을 위한 티켓"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 7일 미국 CNBC는 "대학 입시 때문에 한국이 멈춰섰다"며 이 같이 전했다.

그러나 같은 날 서울 청계광장에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하는 이들이 모였다. 대학 입시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한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회원들이다. 올해 수능 응시자 수는 65만명. 청년 10명 가운데 7명은 대학생(69%)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는 사람이 소수자가 된 사회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역 인근 커피숍에서 입시 거부 선언에 참여한 박건진씨(18·남)와 위영서씨(18·여)를 만났다. 박씨는 지난해 4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집을 나와 현재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고 있다. 위씨는 서울 예일디자인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며 내년 1월부터 '아름다운 재단'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 사람 모두 지난 7일 수능을 보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학 입시 거부 선언을 했는데
▶ 박건진(이하 박) 원래는 대학에 가고 싶었다. 1학년 모의고사까지만해도 언어, 수리, 외국어 기준으로 1.5등급을 맞춰 놓고 있었다. 그런데 학내 청소년 인권 활동을 하게 되면서 공부할 시간이 줄어 아버지와 많이 싸웠다. 그러면서 집을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학교를 자퇴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취하고 있다.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수 없어 대학을 포기했다. 포기이자 거부를 한 것이다.

▶ 위영서(이하 위) 저는 별로 예쁘지도 않고 그나마 잘 하는 게 공부였다. 그런데 고2 때 시민단체 등에서 활동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공부 말고도 잘 하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2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것보다 그 1~2년 동안 배운 게 더 컸다. 그런데 내 성적은 곤두박질 쳤다. 내신 1등급을 유지하던 성적이 4등급까지 떨어졌다. 대학을 가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데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제 선언문 제목이 '14학번이 아닌 나로 살아가기'다. 내일 모레 죽을지도 모르는데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인권활동이나 취미 생활은 대학 가서도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박) 청소년 인권 활동을 청소년 당사자 입장에서 하고 싶었다. 또 제가 많이 고민한 게 '과연 대학 간다고 다 끝날까?'였다. 저희 누나도 하고 싶은 거 많았는데 아버지가 대학가서 하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누나가 대학에 입학하니, 이번엔 임용고사 준비해야 한다고 아무 것도 못 하게 하는 거다. 대학 준비, 취직 준비, 노후 준비 등 죽을 때까지 준비만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모두가 자신의 삶을 끝없이 유예하고 있다.

-대학교 안 가겠다고 하니까 부모님이 뭐라고 하시던가
▶ (위) 어머니는 제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 교사나,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삶은 그런 게 아닌 거다.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서 어머니께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왜 대학을 안 가고 싶은지 등등을 말씀드렸다. 처음에는 충격 받으셨는데 나중에는 그렇게 하라고 이해해주셨다

▶ (박) 우리 부모님은 이해 못 하신다. 저희 집이 교사 집안인데 아버지가 고등학교 교사고 어머니는 유치원 교사, 누나는 교대 입학해서 임용 준비 중이다. 아버지는 학교에서는 전교조 활동을 하고 계시지만 집안에서 입시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엄격하다. 제가 학교 안 가고 제주 강정마을,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 등을 다니니까 아버지가 저를 때리기 시작했다. 맞기 싫어서 가출했다. 그러다가 지난 7월에 다시 집에 들어 갔는데 아버지가 공부 안 하고 사진 찍으러 다닌다고 이번엔 DSRL 카메라를 부쉈다. 그거 보고 다시 나왔다.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학생들이 2014학년도 수능시험일인 7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입시 거부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뉴스1
-대학 안 가려면 조용히 안 가면 되지 굳이 선언을 한 이유가 무엇인가?
▶ (위) 세상에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이 세상이 쉽게 바뀌지는 않더라. 하지만 이번 입시 선언으로 내 삶이 바뀌었고 주변 친구들도 조금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결정적으로 우리 엄마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으니까. 거기에 의미를 두고 있다.

▶ (박) 학벌, 입시 제도 문제가 청소년들만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버지가 저한테 대학 가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아버지에게 학벌 컴플렉스가 있어서다. 아버지가 지방대 나오셨다. 가르치는 학생들이 '어느 대학 나왔느냐'고 질문할 때, 가장 곤혹스럽다고 말씀 하시더라. 다른 선생님들은 서연고(서울대·연세대·고려대) 나왔는데 아버지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흔히 말하는 지방의 별 볼일 없는 대학을 나왔으니까. 그게 학생과 동료 교사들에게 알려지면 자신의 입지 자체가 사라진다고 생각하신 거다. 그걸 보면서 대학은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안고 가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시의 어떤 점이 가장 싫었나
▶ (위) 모두 다 공부를 잘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모두가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등급을 받는 사람의 수는 한정돼 있다. 우리 학교는 정원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의 숫자가 8명 밖에 되지 않는다. 시험이 끝나면 누가 그 8명에 들었을까 하는 눈치 작전이 싫었다. 숫자를 세보는 내 모습이 치졸하게 느껴졌다.

▶ (박) 지금 대학교가 계급 재생산의 도구가 됐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강남 메가스터디 가면 공부 잘 되고 성적 잘 나온다는 거 다 알지 않나. 학원비는커녕 당장 내일 급식비도 못 내는 친구들은 어떡할 건가. 그런 사람에게 '공부 열심히 해'라고 말하는 건 얼마나 무의미하고 가혹한 요구인가? 저는 교육이라는 게 계급 재생산의 도구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이런 거에 대한 의식들을 확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저는 수능이 '순응'하라는 것 같다. 자본가는 자본가로 노동자는 노동자로 남게 하는 게 교육인가?"

-사람들은 어딘가에 소속돼 있을 때 안심한다. 대학생도 그 무엇도 아니게 되면 소속되지 못했다는 불안감이 클 것 같다
▶ (위) 불안하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설렌다. 대학 가지 말아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생긴 가장 큰 변화가 시간이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돈이 필요하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고 잠을 자고 싶으면 잘 수 있고. 그 비어있는 시간을 어떤 것들로 채울 수 있을지 상상력이 많이 발휘되니까 좋더라.

▶ (박) 무소속에 대한 불안감? 크게 와 닿지 않다. 왜냐면 저는 청소년 단체든, 시민 단체든 늘 어딘가에 소속돼 있었으니까. 월세랑 생활비 내려고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알바가 좀 고되긴 하다. 콜센터, 고기집, 편의점 등 알바 이력이 엄청나다. 그냥 오기로 사는 것 같다. '대학 못 가면 죽어? 그래 한 번 죽어볼게. 세상이 뒤집히나 보자'라는 생각으로.

-대학 입시 경쟁 자체를 무의미하다고 보는 건가.
▶ (위) 경쟁 자체는 무의미 하지 않다. 경쟁 때문에 더 많은 걸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이라는 타이틀은 어쨌든 노력해서 성취한 것 아닌가. 문제는 대학 이외의 성취에 대해서는 별로 사람들이 평가를 안 한다는 거다. 공부가 아닌 다른 목표를 정해 성취할 수 있는 건데 거기에 대해서는 별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입시 철에 많은 학생들이 성적비관으로 자살한다.
▶ (박) 수많은 학생들이 죽는다. '사회가 이렇게까지 죽음에 무감각해질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 섬뜩할 때가 있다. 나는 사람이 죽어가면서 그가 남기려고 했던 메시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고통의 표현이었건,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메시지였건 간에 거기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 (위) 초등학교 1학년 때 수능 때문에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고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내가 나이를 먹고 고등학생이 되니까 사람들이 왜 자살을 하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한 거다. 어떤 분은 '살면서 대학보다 힘든 게 많은데 고작 그런 일로 죽겠냐'라고 타박한다. 그 말을 100%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12년 동안 대학 만을 위해 달려온 사람이 그 목표가 갑자기 무너졌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상실감이 크겠나.

▶ (박) 공부하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 안 해본 사람 나와보라고 그래라. 저도 시험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하고 싶었던 경험이 있는데. 교육부 관계자나 대통령 등 한번 불러서 4시간 재우고 공부 시켜봐라. 시험 성적 낱낱이 공개하고. 얼마나 스트레스 받겠나.

▶ (위) 시험 하나 때문에 인생을 망친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슬프지 않나. 그냥 아무도 안 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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